[Opinion]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마음 [음악]

추억을 듣다
글 입력 2023.05.0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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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첫 만남



토니 베넷. 그를 처음 보게 된 건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힘에 이끌려서였다. '95세 재즈 가수의 노래 실력'이라는 간단한 제목의 쇼츠였지만, 그의 음악 인생 70년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음을, 그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쌓아 올린 것임을, 그가 첫 소절을 내뱉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그 쇼츠는 그가 마지막 은퇴 무대 'One last time an evening'에서 그의 대표곡인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그는 2016년부터 알츠하이머병을 앓았고, 심지어 영상 속 공연을 했다는 사실조차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카메라에 비친 그의 표정과 눈빛은 결코 95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차고 또 생경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라는 노래에 대한 첫인상은 벅차오르는 드라마다. 언제 어디서나 이 노래를 재생할 때면 그 맑고 초롱초롱한 토니 베넷의 눈빛이 함께 떠오르곤 했다.

 

 

 

 

 

나의 독서 메이트


 

지난해 가을은 유독 책을 많이 읽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이라기보단, 휴학생 신분이었던 데다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근무했다는 독서에 최적화된 환경 덕분이었다.

 

나는 점심시간을 가장 좋아했는데, 항상 도서관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햇살 아래서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광만큼 책을 읽기에 좋은 조명은 없기에, 원할 때마다 추위나 더위를 신경 쓰지 않고 햇살을 양껏 즐길 수 있는 봄과 가을이 좋다.

 

그때마다 함께했던 음악 역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였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적절한 배경 음악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가사가 너무 잘 들리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노랫말로 온 신경이 집중되는데, 그렇다고 음악이 없으면 왠지 심심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로 가사가 없거나 혹은 영어와 같은 외국어로 된 노래를 듣는다.

 

책에 집중하기 좋은 노래라는 점을 떠나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는 그때의 날씨와도 어울렸다. 친구는 이 노래를 두고 낮에 듣기 좋은 재즈라고 말했는데, 정말이지 그 말이 정확하다. 샌프란시스코의 햇살과 굴러다니는 귀여운 바다사자들이 떠오르는, 그리고 지금 와서 다시 떠올려 보면 통통한 바다사자 옆에서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상상되는, 한낮의 태양에 어울리는 그런 재즈다.

 

 

 

여름 나라로의 여행을 기억하며


 

그 후 휴학 기간이 끝날 때쯤 친구와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십 대 때 이후로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기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긴 비행시간 동안 어떤 음악을 들을까 하다가 다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찾았다. 내가 향하는 곳도 그리고 고향도 샌프란시스코가 아니지만, 한국에서 베트남 가는 길 내내 심장을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왔다는 이 노래가 심심함과 복잡함을 달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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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작년의 일이라니. 한 노래를 듣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니다. 점점 그 가속도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처음 토니 베넷의 쇼츠를 봤던 그해 여름도, 도서관 앞에서 점심시간을 즐기던 가을도, 더운 나라로 아무런 걱정 없이 떠났던 추운 겨울도, 어느새 지나 새로운 해의 봄이 찾아왔다.

 

그 모든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음악은 그 시간의 정수를 조금이나마 붙잡아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 한때 즐겨 듣던 음악을 들으면 그때 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험도, 사진으로도 글로도 남길 수 없던 추억을 음악에 담아 둔 결과다.

 

추억은 지식이 아닌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몸에 새겨야 하는 체험이다. 그러니 음악을 포함하여, 나의 오감을 곤두세워야겠다. 흘러가는 이 시간을 담아서 간직할 수 있도록.

 

 

 

김채영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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