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록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글 입력 2023.05.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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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빠가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인생은 넓은 폭의 길을 따라 걷는 일인데, 아이가 그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바깥에서 안으로 넣어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고. 내 걸음이 언제나 올곧을 수는 없고, 가끔은 그 길을 이탈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그렇다면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지금은 어떨까. 스스로 길의 가운데로 걸어가는 수밖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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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쯤, 폐와 심장 사이에 있던 물혹을 제거하기 위한 흉강경 수술을 마쳤다. 수술 날짜가 가까워지자, 부모님의 전화가 번갈아 가며 걸려 왔다. 생각보다 많이 아픈 수술이라던데 괜찮겠냐고. 장담하건대, 아마 내가 찾아본 수술 후기가 부모님께서 찾아본 후기보다 열 배는 많을 거다. 평소 아픔을 크게 느끼지 않는 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리통이 심한 편이라 고통에 익숙하기도 하여서 괜찮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입원 당일, 1시에서 2시 사이에 입원 수속을 마치라던 병원은 3시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수속을 밟으라는 얘기를 하였다. 3시에만 들어갔어도 좋았을 텐데 결국은 6시 반이 되어셔야 병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원 당일 대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를 받긴 했지만, 5시간이 넘게 무거운 짐과 함께 방황할 줄은 몰랐기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채로 병실에 들어가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갖은 검사를 했다. 수액까지 꽂자 드디어 수술이 코앞이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까지도 수술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의 수술이 많이 늦어지면서 하염없는 기다림이 또 시작됐다.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너무 밝고 시끄러운 병실 덕에 잠은 2시간 정도 잔 것 같다.


내가 첫 타임 수술이었기에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이동용 침대 위에 누웠다. 수술을 처음 한 사람의 감상은 수술실이 굉장히 춥다는 것이었다. 마취가 들어가니 바로 잠들었고 흐릿한 정신으로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겨진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버티는 것의 연속이었다. 폐 한쪽의 바람을 모두 빼고 진행하는 수술이었기에 폐 기능 회복을 위해 6시간 동안 잠에 들 수 없었다. 왼팔에는 무통 주사가 달려있었는데, 아파서 주사를 누르면 진통제와 함께 졸음이 몰려왔다. 아파서 잠에 들고 싶지만 잘 수는 없고, 버티기 힘드니 주사를 누르면 잠이 오고. 6시간을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누워있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디에 기대지 않고 앉는 자세를 통해 잠깐씩 지옥을 맛보았다. 회복하고 있을 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지금 아픔을 1부터 10까지 표현해 보라고 하셔서 누워있는 건 3, 숨 쉬는 건 6이라고 대답했는데, 화장실 가는 건 9나 10 정도였을 거다.


그래도 수술이 빠르게 끝났고, 내가 젊고 회복이 괜찮은 편이라는 판단하에 그날 밤에 몸에 꽂혀있던 관을 빼고 다음 날 퇴원이 결정되었다. 그렇지만 당시에 똑바로 눕거나 정자세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기에 아빠와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이틀 정도 머무르며 생활에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본가로 돌아갔고, 정말로 집에 혼자 남겨졌다.


일주일 정도는 요리를 전혀 할 수 없었고 식욕도 바닥이라 배달이든 간편식품이든 당기는 게 있으면 가격에 상관없이 구매해서 먹었다. 밥을 많이 먹으면 숨이 찬데 수술 부위가 아파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4~6번으로 나눠 먹길 권장받았지만, 한 번 몸을 일으켜 밥을 먹는 것 자체가 굉장한 체력 소모로 다가와서 약을 먹어야 하는 횟수인 3번에 맞춰 밥을 먹었다.


뭘 차려 먹은 것도 아닌데, 밥을 먹고 조금 앉아있다가 침대로 돌아가는 것만 반복해도 하루가 끝나더라.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을 때쯤 날짜를 보니 열흘이나 지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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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로 산책은 조금씩 하고 있었지만 외출이라 부를만한 외출을 안 하다 보니 조금씩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눈이 시릴 만큼 파랗거나 초록으로 가득 찬 자연이 보고 싶었고, 마침 적절한 곳이 있어 다녀왔다. 지금까지도 딱딱한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것이 힘든데, 푹신한 소파가 있어 편하게 앉아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불과 사흘 전에도 1시간을 걷고 2시간 동안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회복 중이다. 이제 요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고, 팔을 힘껏 뻗는 것은 힘들지만 물 주전자를 들 수도, 방 청소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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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면서 느끼고 있는 것은 요리가 내 일상에서 생각보다도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평소에 해서 먹는 요리는 당장 먹으려면 돈을 주고도 못 구하는 경우가 많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평소에 먹던 걸 내 마음대로 먹지 못해서 우울해지는 기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2주가 지나고 외래를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다른 부위 수술보다 더 아픈 것이 맞으며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하셨다. 아직은 폐 기능도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라 밥을 해 먹고 외출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가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중이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나아지는 스스로를 느끼며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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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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