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누구나 처음이 될 수 있다

글 입력 2023.05.0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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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한 지 벌써 한 달이 됐다. 요즘처럼 긴장의 연속인 날이 없었다. 인생 최초의 신입은 무려 7년 전이었는데 또다시 신입이 된 셈이다. 배운 적 없는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다시금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사무실. 새로운 출근길에서 바라본 새로운 풍경들. 그래,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출근이었다. 2호선 끝으로 다소 여유롭게 향했던 출근길이 벌집처럼 빽빽한 사람들 틈에 이리저리 떠밀려 혼잡스러웠다. 목 끝까지 단추를 잠근 단정한 오피스룩은 멀미를 유발할 것처럼 답답했고 익숙하지 않은 골목마다 발에 차이는 담배꽁초를 피해 걸으며 그들이 담배 연기와 함께 토해냈을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침들이었다.


나는 단체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첫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 깨달았다. 특히 회사라는 집단은 사회생활이라는 명목하에 모두에게 친절할 것을 강요하면서 모두에게 선을 그을 것을 당부하는 앞뒤가 안 맞는 곳이다. 물론 내게는 둘 다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거머쥔 꼴이라니. 나라는 인간은 남에게 별 관심이 없는 주제에 한번 마음을 주면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줄 기세로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


서점에서 2년 동안 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책이었지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이전 직장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동료애와 팀워크를 느꼈기 때문에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새롭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를 찾아 헤맸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신입은 배울 게 많았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건 나 자신뿐이라 힘든 건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여유를 뒀다고 생각했는데 긴장으로 굳어진 몸이 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 탓에 꼬박 한 달이 피곤했다. 부지런하지 못한 아침 습관 대신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무려 출근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 워밍업을 했다. 예전 모습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 분명하다. 경기도민으로서 장거리 출근에는 늘 자신 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게으른 성정으로 살아왔다.


삼십 분 전에 미리 도착하고 편의점에 들러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사서 사무실로 향한다.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동시에 텀블러를 세척하고 따뜻한 물을 마시며 힘겨운 아침을 버텨낸다. 유리벽에 둘러 싸여 홀로 먹는 점심 식사와 쥐 죽은 듯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는 예전의 그것과 다르다. 코로나로 인해 닫혀버린 소통을 피부로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오히려 바이러스가 완화된 지금에야 비로소 느끼고 있다.


일을 배우기 앞서 분위기를 배우는 중이었다. 최초의 신입이었던 나는 무려 5년의 시간을 버텨냈지만 그곳에서 사회생활을 배웠다고는 장담 못하겠다. 분명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으나 전혀 성숙하지 못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나를 어필하고 스며들게 하는 방법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방법을 알고 있나? 정든 회사를 퇴사하고 서점에서 일하는 2년 동안 성격도 많이 쾌활해졌고 사람을 대하며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회사에 비해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미약하여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것이다.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과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사무실 책상, 탕비실과 복사기마저도. 최초의 신입이라면 겁을 내며 위축됨이 분명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곳에 내 몫의 잘못은 티끌만큼도 없다. 다름 아닌 내가 회사를 시험하고 있는 단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지금도 나는 그 방법을 확신하지 못한다. 서투른 실수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스스로를 채찍 하며 구석을 찾아 웅크리지 않는다. 걱정의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신입 주제에 건방진 사고일까.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최고의 마음가짐이 아닌가. 삼 일간의 꿀 같은 연휴를 마무리하며 내일이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처음이니까. 새로운 환경에서는 누구나 처음이 된다. 나는 그 사실을 명백히 머리에 새겨 넣었다.



[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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