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 영화 '리턴 투 서울'

글 입력 2023.04.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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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때 내가 사람이 아닌 줄 알았어. CCTV처럼 내가 사람들을 관찰하는, 이걸 뭐라 해. 한 시점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어쩌다 친구 입에서 저 말이 나왔을까. 아마 카페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던가.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자아'라는 개념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터득하게 되는 것이지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나라는 감각이 없기에 나와 너 사이에선 구분선이 없다. 게다가 인간의 생김새는 제각각이라고 한들 우리는 최소한 종(種)이 같다는 건 알지 않나. 엇비슷해 보인다는 느낌은 착각을 공고히 만들어, 세상 모두가 나와 똑같으리라는 생각을 기저에 깔아 둔 채로 말하고 행동하고.


거울에 비친 내가 '나'이고, 타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개개인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달으며 자라난 우리. 그런데 이 감각을 여즉 활성화하지 못한 어른이 있다면, 그의 삶은 어떨까. 나를 나로 만드는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떤 가지들을 뻗어내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그런데 몸뚱이는 성인인지라, 그리고 여태껏 삶을 살아내긴 했으니 겉보기엔 그다지 문제가 없다. 되레 삶의 근간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로 비쳐 흥미롭고 매력적인, 독특한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런 '프레디'가 예정에도 없던 서울에 오게 되었다. 전형적인 한국인처럼 생긴 프랑스인의 2주 서울 여행. 프레디는 예상했을까. 자신을 미국으로 입양 보낸 친엄마, 친아빠의 흔적을 스스로 찾게 되리란 걸. 이십몇 년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을 만한 혼란과 변화를 이때 다 겪게 될 줄은. 자신의 삶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그가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테나'가 첫 동행인이 되어주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

내용 스포일러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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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쟁이일 때 머나먼 프랑스로 떠나 지긋한 나이대의 새로운 엄마 아빠와 자라난 프레디. 영화에서는 그가 프랑스에서 살아온 삶을, 그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전혀 조명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지명이나 그 문화권만 지닌 고유한 특징도 드러내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아이러니한 느낌을 자아냈다. 분명 프랑스어로 대화가 이어지는데 배경은 너무 한국이라서. 눈을 감고 들으면 프랑스 영화이고, 소리 없이 이미지만 보면 한국 영화고.


그가 살아온 지난날들이 꼭 이런 느낌이었을까? 외양만 보아서는 '전형적인' 한국인 상이라 모두가 낯설 게 느끼는데, 정작 프레디는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상태였을 테니. 숱한 오해를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며 한편에 의문을 쌓아뒀을까. 나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애인지. 무엇이 나인지. 나는, 버려진 걸까. 그렇다면 왜?


'나'라는 자아를 확립하게 된 계기는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근간이 될 이유이기도 하므로 시간의 문제이지 프레디는 언젠가 한국에 왔을 것 같다. 전혀 알지 못하지만 프랑스에서보다 훨씬 친숙한, 나와 비슷한 생김새를 공유하는 사람들. 왠지 모를 친밀감을 예상했을지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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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것도 서울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내게 그의 여정은 상상의 연속이었다. 언제나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걸어온 나의 지난날. 닮은 구석 하나 없는 듯한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려면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영화에서 담지 않은, 앞서 나열한 그의 과거를 유추했는가 보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뿌리를 찾는 여정은 발단이지 결과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와 한국,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한 자신을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할지. 어디서나 이방인 신세인 자신이 어디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지. 2주 간의 짤막한 여행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구축하고자 한참 헤매는 것 같아서. 평균 100년짜리 인생 여행에서 '내'가 걸을 길 찾기 말이다.


이런 고민이라면 우리 대부분이 대부분 겪어보았을 거다. 지금도 고민 중에 있을 테고. 내가 걷는 길은 남들과 같은 길인지, 각자만의 길이 있다던데 그럼 이 길은 얼마나 괜찮은 길인지, 가다가 방향을 틀어도 될지, 새로운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진 샛길로 빠지는 일을 지양하는 게 좋을지.


'나'라는 자아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길을 걸어야 하는 이 숙명 같은 일은 고독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선 이방인 같다.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인데도, 나는 나에게 소외감을 들게 한다. 별 수 없다. 나도 이 길을 걷는 건 처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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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건 어느 시기에든 함께해 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만난 테나가 그랬다. 언제나 첫 발이 가장 어려운 법인데 내딛음을 기꺼이 도와준 사람이기에. 프레디가 그에게 고마움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느꼈을진 미지수다. 영화는 지극히 사실의 인과만 듬성듬성 보여줄 뿐, 인물 간의 관계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 프레디의 감정 상태엔 집중하되 프레디가 어떤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까지는 명확하지 못하다.


그래도 하나 알 수 있는 건 테나 또한 프레디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 선의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베풀되 상대가 선을 넘는 순간 모든 것을 끊어낸다. 이게 매몰차다고 느껴지지 않은 건 그가 얼마나 애썼는지 보여서겠다. 게다가 프레디는 상대방의 경계는 쉴 새 없이 넘어서면서 스스로 정한 바운더리엔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보호하는 면이 있으므로, 배울 필요가 있었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만큼 상대의 선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단 걸.


프레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핏줄 또한 같은 말을 전하는 듯했다. 자신의 선은 아주 잘 방어하면서 상대의 선은 끊임없이 넘어서며 요구하는 사람. 나와 외형도, 이런 면도 닮은 사람. 성가시게 구는 면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고 화를 표출하지만 어느 순간 알았을 거다. 타인은 자신의 거울이란 걸. 그래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나와 아주 다른 타인(테나), 그리고 나와 아주 닮은 타인(내 핏줄). 양극단이 모두 필요하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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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내내 양극단을 보여주며 저울질했다. 프랑스와 한국, 오지랖과 배려, 통역 과정에서 배제한 감정과 그럼에도 전해진 진심, 저항하고 싶은 두려움과 마주할 용기, 유예한 희망과 깨닫는 현실. 시간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영화는 때마다 달라진 그와 그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스쳐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얼굴을 비추는 사람도 있고, 드디어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어그러질 때도 있고.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그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예정되지 않은, 외부 변수 때문에 별 수 없이 택했던 서울행에서 온갖 소용돌이를 겪은 그. 이젠 자신의 뿌리, 즉 생을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생일날을 그렇게까지 거부할 이유를 못 느끼지 않을까?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기에 딱 적당한 옷차림에 짐을 이고 다니는 어느 시기에 닿은 것을 보면.

 

어설프게 짙은 립스틱을 바르고 여기저기를 배회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감추고 숨겼던, 자신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 뿌리를 솔직히 마주하길 꺼렸던, 그가 어엿한 한 명의 성인으로 자라난 게 아니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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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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