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관에 간 텍스트 [미술/전시]

언어는 어떻게 미술이 되었을까?
글 입력 2023.04.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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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전시회를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쉬는 날은 잠시 일이나 공부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의 작품을 향유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색다른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그런데 아름다운 그림이나 조각품 대신 글자로 가득한 전시회를 본 적이 있는가? 미술관에서까지 읽는 수고를 하도록 만드는 이런 불친절한 예술가가 있다니. 미술관에 간 텍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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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발데사리, <회화란 무엇인가>, 1966-1968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회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서술한 텍스트만이 보이는데, 사실 이것은 캔버스로 물감으로 그린 말 그대로 회화다. 이전까지의 일반적인 견해로는, 캔버스란 '그림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그런데 이곳에 텍스트가 위치한다면? 텍스트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개념 미술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개념 미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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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샘>, 1917

 

 

미술 교과서에서 모두가 보았을 작품,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이다. 이전까지의 작품은 예술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여 제작한 것들이었지만, 여기서 예술가가 한 일은 변기를 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구입해서 서명한 것이다. '이런 것도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개념 미술은 이렇게 시각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들보다 작품 안의 개념이 중요한 미술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개념 미술은 작품의 형식과 양식에 관심이 있었던 모더니즘에 대항하여 생겨났다. 그래서 개념 미술의 주요한 특징은 '미술 대상의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였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언어가 사용된 것이다.

 

한 예시로, 로런스 와이너(Lawrence Weiner)는 1968년에 <진술들(Statements)>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짧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진술들을 책의 형태로 만들고 이 개념 작업을 '조각'으로 간주했다.

 

이 당시부터 미술관은 미술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이루어지는 담론 공간이 되었다. 이전의 미술관에서는 작가가 만든 작품을 관객이 관람하는 일방적인 소통만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관객 참여형 미술이 등장하는 등 적극적인 상호 소통의 장이 되었다.

 

전시 공간이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미술이 무엇인지 논하는 공간'으로 변화하자 파격적인 전시회가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멜 보크너(Mel Bochner)는 '미술로 보일 필요가 없다'라며 드로잉과 작업 노트를 묶어 전시회를 구성했다. <미술로 보일 필요가 없는 종이 위의 작업 드로잉과 그 밖의 다른 시각적인 것들(Working Drawings and Other Visible Things on Paper Not Necessarily Meant To Be Viewed as Art)>가 바로 그것이다.

 

 

 

순수하게 개념적인 미술


 

개념 미술가들은 아예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의 작품 <제목(생각으로서의 생각으로서의 미술) 단어 "정의">가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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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Kosuth, Titled (Art as Idea as Idea) The Word "Definition", 1966-68

 

 

코수스는 '미술이란 의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미를 만드는 것이 바로 기호이고, 언어는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의미를 만드는 미술이 언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다.

 

 

1969년 코수스가 주장했듯이 그의 작품은 '순수하게 개념적인 미술'이다. 이 무렵 그는 "개념 미술에 대한 '가장 순수한' 정의는 그것이 의미하게 되는 것으로서의 '미술'이라는 개념의 기초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개념 미술, 토니 고드프리> 134p

 

 

 

언어는 투명하지 않다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은 1967년에 Language to be looked at and / or things to be read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 언어를 바라보아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밖의 것들은 읽어야 할 대상이 된다는 생각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기표와 기의의 반전과도 맞닿아 있다.

 

이와 함께 멜 보크너(Mel Bochner)는 언어를 예술의 한 매체로 소개했다. 그림이나 조각처럼 언어도 예술에서 하나의 매체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중 다수에 'language is not transparent(언어는 투명하지 않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물질성에서 떼어내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예술은 비물질화하고, 물질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언어는 물질화한 것이다.

 

이런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아직 완전한 비물질화에 이르지 못했다. 언어로 된 문장 하나를 전시하더라도 종이와 잉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멜 보크너는 "발설된 말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그것을 지탱하는 사물 없이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미술의 완전한 비물질화를 실현하기 위해 이안 윌슨(Ian Wilson)은 언어로 된 내용을 텍스트의 형태로 전시하는 대신, 갤러리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방법을 택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전시 공간 자체를 비우는 시도들이 있었다. 로버트 배리는 전시회 Closed Gallery에서 잠긴 문 앞에 "전시 기간 동안 갤러리는 닫혀 있습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다. 이브 클랑(Yves Klein)은 Le Vide라는 이름으로 빈 공간을 전시했다.

 

근대에서 현대, 동시대로 넘어오면서 미술은 언제나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위치한 지금 이 시점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이만 마친다.

 

 

참고 자료

토니 고드프리, <개념 미술>, 한길아트, 2002

조주연, <현대미술 강의>, 글항아리, 2017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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