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너에게 보내지만 너만 못 읽는 내가 안쓴 이별 편지

글 입력 2023.04.14 14:4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1) 너에게 보내지만 너만 못읽는 내가 안쓴 편지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신을 진지하게 믿어본 적은 없어.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근데 요즘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다음 기도 비슷한걸 해.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 책을 읽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넘어선 일들을 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나도 공감해. 그래도 심각하게 뭔가를 풀어 헤치거나 거칠게 몰아치는 상상력을 가진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야. 어차피 이 세상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걸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거든. 그래도 가끔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때 어떤 절대적인 삶의 가치의 뭉치로 만들어진 우상에게 특정 행위를 하는거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

 

이 글을 쓰는 것은 그거랑 비슷해. 내가 가지고 있는 폭풍같은 감정을 여러갈래로 찢어서 흘려보내는 거지. 난 너 에게 이 서간문을 쓰지만, 막상 너는 이 글을 읽지 못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만 읽게 될거야. 좀 아이러니하긴 한데 이런 형식자체가 이 글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봐. 이 글을 쓰는 나는 익명에 가려지고, 너는 다수의 사람들로 치환되는거야. 나도 없고 너도 없다면 이건, 어 뭐라하지? 앞서말했듯이 종교없이 기도를 하는거랑 똑같다는 말씀.

 

그래, 다시 돌아와서. 나한테 너라는 존재도 사실 좀 비슷한 것 같아. 의지처의 틀을 쓰지 않은 의지대상. 사랑의 틀을 쓰지 않은 사랑. 너한테 가끔 편지를 쓰니까, 너라면 이 의미를 알겠지. 기도건, 이 글이건, 이 병신같은 말장난이건 공통적인건 아무런 틀도 없지만 그 핵심적인 속성만큼은 유지한다는 거야. 기도의 초월성, 이 글에서 드러나는 어떤 과시적 배출, 의지의 기반이 되는 어떤 안정성, 사랑의 합일감.

 

나는 그런 너에게 상당히 안정감을 느끼고 합일감을 느끼고 있다는거겠지. 난 너를 사랑한다는걸 인정하고, 그것이 얼마든지 과장되고 팽창되어 이런 언어적 삽질이 된다는걸 상당히 긍정해. 물론 내가 이렇게 느낀다고 해서,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난 널 가진 적도 없으니 내게 너한테 집착한다는 공포에 시달리지 말길 바란다. 난 그냥 너를 바라볼뿐. 네가 그러하듯이.

 

요즘 사실 좀 힘들었어. 아니 사실 이 병신같은 직업을 가지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평생 그럴것 같긴한데, 신입 생활이 좀 개같잖아. 내가 내 삶을 바라볼 때 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좀 들어봐(어차피 대답도 못하고, 텍스트는 일방향이지). 

 

나는 조각도를 하나 가지고 서있어. 그 앞엔 살점으로 만들어진 원통이 있는거야. 나는 어떤 충동으로 그걸 파내고 찢으면서 조각하기 시작하는거지. 조각하는 나는 고통받지 않지만, 그 원통은 상처입은 짐승처럼 피를 흘리면서 살점을 떨어뜨리지. 내 앞치마랑 얼굴에 잔뜩 피가 튀고, 불쾌한 피냄새도 진동해. 완성되는 작품은 늘 내 안에 있는것이지만 바뀌지. 내 안에서는 매일 그런 장면이 반복돼.

 

고통와 상처가 주는 환희, 어떤 해방감. 나는 그것 때문에 이 '개 병신같은 작업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내가 가진 가학성과 피학성은 끝에 만들어지는 인간성의 폭발을 위해 끝까지 내달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미학자라고 생각해. 어떤 나르시즘 때문에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충동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설명할 수 밖에 없어. 그리고 난 진심으로 이런 짓들이 정말, 진심으로(두번 반복한다. 부정은 아니야)개 병신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나는 이걸 끊을 수 없어. 뭐 어쩌겠어, 이게 내 팔자인가보지. 네가 그러한 방식으로 살 수 밖에 없듯.

 

여기까지 읽은 너라면 대충 상상하듯이 난 이 짓 하는걸 상당한 레전드 삽질이라고 생각해. 반드시 그 끝에 현자타임과 짜증이 동반하게 돼. 애당초 내가 조각하지 않고 그것들을 바라본다한들, 사람이 언제나 하늘을 날 수 는 없잖아(다시 생각해봐도 이거 정말 병신같은 문장이야).

 

넌 나한테 잠깐 쉴 수 있는 어떤 공간같은거야. 넌 나에게 어떤 적극적인 표현을 못하지. 넌 너로서 존재해. 너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네가 나한테 하는 행동들은 내게 별로 다를게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내가 너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네. 이 '타고난 미학자'께서는, 살면서 정말로 휴식을 바랬단 말이야. 조각칼 써봤냐? 그거 상당히 존나 힘든 일이거든. 팔이 얼얼하고 피튀기는 곳에서 오래 있는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야. 고기로 된 원통은 비명을 지르지 않지만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야.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이 온통 그렇게 느껴진다니까. 나한텐 이 세상이 비명이랑 환호성이 동시에 들리는 곳이라고.

 

근데 너는, 그냥 너로 존재해. 내가 아무리 병신같은 말을 해대도 너는 그냥 그걸 들어. 그냥 너로 존재하면서 듣는단 말이야. 내가 네게 갖고 있는 애착은 너가 너라는 사실에서 기인해. 아니 근데 이거 읽으면서 "ㅋㅋ그럼 이새낀 내가 좀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싫다 이거냐"라고 생각하지마라. 개 빡치니까. 어떻게 존재하든 좋아한다는 말이지 마조히스트처럼 네가 무뚝뚝하게 존재하는걸 즐기는건 아니거든. 오랜 시간동안 너와 지내면서 내가 찾아낸건 그래, 그런거야.

 

여기까지 쓰고나니까 뭔가 마음이 편해진다. 너를 생각하는건, 기도를 하는거랑 비슷한데 좀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네. 너를 바라볼때마다 네 병신같은 모습과 내 병신같은 모습이 보여. 속으로는 '나니까 널 만난다. 복받은줄 알아라'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발견한 네가 언제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뭐 그렇다고 해서 너랑 언제까지 사귀어야지~결혼해야지~같은 병신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건 아니야. 나한텐 삶의 모든게 ing 같은거고 난 거기에 휩쓸릴 뿐이야. 그런 내가 너와의 관계의 미래같은걸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겠냐.

 

이런 농담도 잘 받아줄거란거 알아. 넌 뭐 그런 새끼니까. 여기엔 네 상상이상으로 많은 애정이 들어있다는걸 알아줘. 너한테 전생에 몇십억 빚지고 평생 노예로 써먹었나보지. 내 병신인생. 아무튼, 난 이제 이거 끝내고 다시 일하러 갈거야. 난 오늘만 살고, 너도 오늘만 살아가. 시간과 공간을 어디 대충 버려놓고, 지금 난 너를 바라보고, 넌 나를 바라보고 있지. 네가 행복하길 바래. 가끔 너는 나보다 더 답답한 싸움을 하는 것 같거든. 그런 의미에서 난 어차피 평생 행복할테니까 걱정 안해주셔도 됩니다. 이 타고난 미학자님께서는 비명이 난무하는 거리에 나앉더라도 천국을 찾으실 수 있거든요. 농담같지? 진짜다.

 

 

 

2) 너에게 보내지만 너만 못읽는 내가 안쓴 이별 편지


 

이건 서간문에서 이어쓰는 글입니다. 아니, 독자 여러분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위 글의 주인공께서 저를 뻥 차셨답니다. i was car이었답니다. 아잇싯팔 그것도 엎드려 이별받기라고(레전드 병신 문장), 내가 집요하게 그에게 이별을 얻어냈답니다. 왜냐면 앞서 말했듯이 전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어떤 감정이든 억지로 발생한 것들에 대해서는 발작버튼이 눌리거든요. 아니, 뭐, 거 어쩌겠습니까? 제가 모든걸 분노로 치환하는 약점이 있고, 그것이 또 조절이 잘 안되는 걸.

 

진짜 웃긴건 뭔지 아십니까? 그 말을 듣고 눕는데 "이제 놓여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겁니다. 나참, 대체 저는 그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었던걸까요? 하지만 저는 다시한번, 제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지 않았다고 회고하더라도, 그 사이에 흐르던 것이 사랑이라고 저는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다만 제가 그를 놓은 것은, 그리고 그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는 그에게 떠나갈 자유를 주었던 것이고, 그의 해석이 맞건 내 해석이 맞건 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둔 것입니다.

 

아, 떠나갈 자유라고 해야할까, 제가 어느정도 쫓아낸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안의 거친 뱃사람이 "어이, 익명씨! 그 지랄할거면 나가!" 라고 외친거고, 걘 내린 걸지도 모르겠네요(시발새끼 아직 얕은 물인걸 감사하게 여겨라). 하지만 그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편안함을 느꼈으리라 확신합니다.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었던 보물들을 잘 받아갔는지나 모르겠네요. 

 

가식이 아니라, 그가 너무 많은 땀을 흘리면서 전봇대 옆에서 담배를 피지 않길 바랍니다. 그와의 만남은 굉장히 뚜렷하지 않고 확정되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그가 싸워왔던 것도 아마 이런 것이겠지요. 저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확정짓지 못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야"라고 외쳤습니다. 사실 근데 그건, 정말로 그의 안식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또 '그'에 대해서 줄줄 말하는 것은 너무 열받는 일입니다. 따지고보면 내가 내쳐진 입장인데 뭐 어디까지 이래야합니까? 제가 '타고난 미학자'로서 다른 사람을 기깔나게 구경하는 재능이 있다곤 합니다만, 나는 나의 마음을 작업해야해요. 저는 미친듯이 회오리치는 감정의 파도를 타는, 이성과 언어로 잘 주조한 배를 탄 괴팍한 뱃사람이니까요. 이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제멋대로여야하고, 또 미쳐있어야 하죠.

 

그래요. 어제 잠에 들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와 귓가에서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이별과 상처에서 상실과 고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이 본질인데 왜 중요하지 않다는걸까요? 그것에 답하기 위해 제가 이렇게 두 번째로 앉아서 서간문을 열심히 보충하고 있지 말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그래요. 사랑하고 잃고, 솟아오르고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는단 말이예요. 공즉시색같은 말로는 부족하고, 쇼펜하우어의 회의론으로도 부족해요. 그냥 그것은 존재하고, 인간의 마음을 다층적으로 결정할 뿐이예요. 인간은 그 앞에서 어떤 의무도 없고, 결정해야하는 것도 없어요. 그냥 그걸 즐길 뿐이예요.

 

쓰다보니까 왜 그와 이런 관계를 이어갔는지 알 것 같네요. 그는 확증되기 피하고, 저는 확증되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그 중간 지점에서 만났으니, 이제 각자 세상에서 다시 한번 실험해야겠죠. 하, 시발 이제야 단단히 잡고 있었던 당신을 보낼 수 있겠습니다. 

 

 

[이승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