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거울로 비춘 과거와 현재의 '나'를 이야기하다 : 아티스트 Narr.i(나리)

글 입력 2023.04.1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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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끊임없이
. 자신에 대한 물음표를 쉼 없이 던진 사람이 있다. 한 번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시간 갈등과 융화의 과정을 거쳤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아티스트 Narr.i(나리)와 만났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보다 삶의 본질적인 철학에 대해 탐구해온 Narr.i는 3월 24일에 첫 EP [소녀,N]을 발매했다. 앨범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최소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인생의 한복판에 우뚝 서서 홀로 치열하고 뜨겁게 고뇌할 시간이 그만큼 필요했기 때문이다. Narr.i는 이번 앨범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드러냄으로써 자신만의 역사로 우리를 초대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Narr.i의 순도 100% 자화상이자 고뇌의 산물인 [소녀,N]의 다섯 트랙을 만나보았다. 인생의 중요한 페이지를 넘기며, 소년과 소녀를 동시에 품은 깊은 두 눈에는 총명함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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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N] 발매를 위해 긴 시간 아낌없는 열정의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아요. 첫 EP 발매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감개가 무량합니다.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생 때부터 했는데 정말 그 목표가 실현이 되었네요. 기분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동시에 뿌듯하기도 합니다.   

 

 

아티스트명을 ‘Narr.i’로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시절에 '나리'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당시 또래 친구들이 <개나리> 노래를 부르면서 갑자기 이 별명을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솔직히 그때는 이 별명이 너무 싫었어요. 제 본명에 '나'자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뚱맞은 별명으로 불리는 게 싫었거든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때 힙합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무대에 서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지을 때 문득 '나리'가 생각나더라고요.  

 

이후 대학교에 진학해서 영상에 관심이 생겨 관련 전문용어를 알게 됐어요. 그때 내레이션의 약자를 'Narr.'라고 쓰는 걸 알았죠. [소녀,N]은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앨범이고, 나라는 존재를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내레이션을 뜻하는 용어인 'Narr.'와 소문자 'i'를 붙여 이름을 지었어요. 즉 '작은 나(i)를 이야기하다(Narration)'의 뜻을 지녀요. 

 

 

그렇다면 [소녀,N]를 발매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이 앨범을 만들기 전에 짧은 소설을 쓴 적이 있어요. 소설을 쓸 때부터 내면의 자아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던 거 같아요. 줄거리는 현실의 나와 과거의 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집에 가면 맨날 우는 아이를 보는 '나'에 관한 소설이었어요. 이야기가 전개되며 '나'는 자신의 집 신발장 앞에 거울이 있던 것을 발견하는데, 사실 아이라는 존재는 과거 어릴 적의 상처 입은 자신이라는 걸 깨달아요. 


이 소설을 계기로 3가지 다른 형태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소설을 쓴 이후에는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요. 그다음으로 [소녀,N] 발매를 통해 음악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3부작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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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은 ‘거울’을 모티브로 하여 과거와 현재의 자아가 등장하는 일련의 이야기가 담겨있죠. 곡의 이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칭을 이루고 있는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각 트랙들의 작명 과정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드려요. 


궁극적으로 앨범의 모티브인 거울을 기준으로 트랙명을 대칭으로 지어봤어요. 대칭 이미지를 주려면 트랙 개수가 홀수여야 했고요. 이 앨범이 음악의 형태를 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다양한 언어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트랙명에서 우리말과 한자어, 숫자 그리고 영어까지 모두 쓰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언어유희를 굉장히 좋아해서 처음부터 이름을 지을 때 발음이 똑같은 제목으로 작명하길 원했어요. 생각하고 있던 키워드가 두 개였는데,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발음이 '아이'와 '밀어'였어요. '아이'는 우리말로 어린 사람을 뜻하고 영어로 I는 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잖아요. '밀어'의 경우 push의 뜻과 연인 사이의 달콤한 말을 뜻하는 한자어 '蜜語(밀어)'가 있었어요. 

 

 

앨범 전반적으로 윽박지르는 소년과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데요. 두 개의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녹음 및 기획 과정의 에피소드도 궁금하네요. 


원래는 음성을 변조해서 남자 목소리를 연출할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랩 파트를 녹음해 보니까 이미 노래 부르는 것과 랩을 하는 목소리의 차이가 꽤 크더라고요. 그래서 변조를 안 하고 혼자서 랩과 노래를 모두 완성했어요. 특히 2번부터 4번 트랙까지 피처링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고민을 거듭해 보니 앨범의 주제 자체가 '나'라는 한 명의 인물이라는 것을 상기했어요. 만약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넣으면 주제의 전달이 잘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앨범 내내 자아끼리의 대화가 이어진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고 최대한 소년과 소녀의 목소리가 구별되게 노력했던 거 같아요. 다행히 원래 노래를 부를 때 고음을 잘 낼 수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더불어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어서 목소리에 힘을 빼고 가성으로 노래 부르는 방법도 확실히 익히게 됐어요.    

 

 

거울 속 대화가 담긴 3번 트랙 ‘ISBN 9781406309140’의 제목도 인상적이고, 관계의 의미에 대해 고찰한 가사가 참 인상적이에요.  

 

앞서 두 곡의 '아이'와 '밀어'에서는 소년과 소녀가 극심한 갈등을 경험해요. 두 차례의 갈등을 통해 이제 두 자아는 힘이 다 빠진 상태가 되었죠. ‘ISBN 9781406309140’에서는 이들이 조금은 힘을 풀고 서로 진솔한 대화를 하기 시작해요. 

 

이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내가 서로를 인정하게 되죠. '역시 내 생각은 나 자신이 제일 잘 알아준다'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하고요. 아무리 스스로의 과거를 미워해봤자 그마저도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고 두 자아가 사랑에 빠지게 돼요. 과거부터 쭉 해온 생각들에 대해서 현재의 나도 기꺼이 동의를 한 결과죠.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트랙명으로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차용하게 된 과정과 고유한 숫자를 부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터넷에 'ISBN 9781406309140'을 검색하면 외국 작가의 'Mirror'라는 동화책이 나와요. 이 번호를 통해 앨범의 모티브인 '거울'을 암시했어요. 1번부터 5번 트랙까지 두 개의 자아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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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N]은 들으면 들을수록 중의적인 의미의 표현들과 언어유희가 참 매력적인데요. 작사를 할 때 특히 심혈을 기울인 포인트들도 많을 것 같아요.  


소년과 소녀가 가진 생각의 차이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과거의 자아인 소년의 경우 사회성과 솔직함은 반비례 관계로 생각을 하는 반면에 현재의 자아인 소녀는 가식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거든요. 솔직하지 않은 현실의 소녀에게 소년이 크게 화를 내는 것으로 앨범의 이야기를 시작해요.  

 

1번 트랙의 '아이'의 가사 중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는 소년이 소녀에게 하는 대표적인 경고로 해석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곡의 경우 마지막 단락들의 가사를 쓸 때 맨 앞에 있는 글자들로 일종의 세로드립을 했어요. 자세히 보시면 '거울 속의 나', '거울 속의 너'라는 조합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2번 트랙 ‘밀어’에서는 "정 없이 깨져 내 모남이 이유"라는 가사를 썼어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활용한 말인데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가사예요. 한 마디로 ‘정 없다’ 또는 ‘정도 없이 깨지는 것’이죠. 저는 모든 상황에서 빠르게 해결책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예전부터 "말을 쉽게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매 고난이 쉬워서 짊어지네 너의 미움"이라는 가사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거울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소리, 심장박동이나 무전기 소리 등 다양한 소리도 들려요. 앨범 속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끝나는 동시에 거울이 산산조각 깨지는 소리가 들려요. 소년이 거울을 깨고 나와 버린 걸 암시하죠. 그래서 '밀어'의 배경음을 유심히 들어보시면 소년이 코마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뒤에서 바이탈 사인과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요. 과거의 자아가 현재의 자아 영역으로 들어왔기에 두 개의 자아가 같은 시간 안에 있다는 걸 표현했어요.   

 

 

'蜜語'에서 "너의 존재, 나를 위해"라는 가사에는 특히 큰 따옴표가 붙어있어요. 특히 강조하고 싶은 의미가 있었나요? 

 

소년과 소녀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가사예요. 소녀를 위해 과거의 자아인 소년이 이제 자리를 내어주기로 결심하죠. 노래가 마무리될 쯤에는 '너의 존재 나의 위에'라는 가사가 나와요. 과거보다 현재가 더 우위에 있다는 걸 암시하는 말인데요. 결국 과거의 소년이 현재의 나를 인정하며, 소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가사에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저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를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계속 생각해 왔어요.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일 뿐이기에 각자 독립적으로 가치가 있는 시간이라고 느껴오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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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EP에서 ‘Narr.i’가 보여준 색깔과 특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음악 너머의 또 다른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이 이번 EP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닌, 소설을 썼다고 느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흔히 말하는 '듣기 좋은 앨범', '좋은 음악'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빠짐없이 다 넣은 앨범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일련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정성의 손길이 깃든 EP 발매를 통해 음악에 대해 새로이 깨달은 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의 음악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습니다.(웃음) 저는 EP 발매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거든요.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을 한번 잘 만들어보자는 목표였어요. 직업으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음악을 감상하는 거랑 직접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에요. 음악을 통해 생각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요. 음원 안의 배경음, 목소리, 가사, 박자만으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잖아요. 음악이 종합 예술 그 자체라는 걸 깨달았어요.  

 

 

마지막으로 [소녀,N]의 리스너들께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누군가를 위해 만든 것보다는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바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앨범이라, 노래를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소녀,N]은 소설처럼 흐름이 있는 앨범이니 만약 관심이 생기신다면 트랙 순서대로 곡들을 감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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