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없는 욕망, 연극 '아마데우스' [공연]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다시 보는 연극 <아마데우스>
글 입력 2023.04.0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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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연극 <아마데우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해당 대사로 잘 알려진 연극 <아마데우스>는 늙은 살리에리의 방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관객을 미래의 유령들이라고 지칭하면서, 단 한 번의 공연,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작품, <누가 그랬을까 모차르트는 살해당했다!>의 관객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연극은 살리에리의 시점에서 모차르트를 바라보면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1막에서는 살리에리가 왜 신을 적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2막에서는 구체적으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통해 신에게 어떻게 복수하는지가 나온다. 이 작품은 살리에리의 시점에서 진행되기에 그의 욕망과 충동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막



라캉에 따르면, 욕망이란 사람의 마음속에서 채워질 수 없는 근본적인 결여이다. 그것은 하나의 대상에서 또 다른 대상으로 끝없이 이동하면서 변화하고 새로운 한계와 금지를 설정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그 타자의 욕망으로서 인간의 욕망이 형성되는 주체적인 공간이 바로 ‘환상’이다. 작품 속에서 살리에리의 욕망은 라캉의 설명처럼 계속 변화한다.

 

 어린 살리에리는 신에게 기도한다. 자신의 성실과 금욕, 근면을 바칠 테니, 음악을 통해서 당신을 찬양하고, 자신 또한 영원히 찬양받게 해달라고 말이다. 살리에리는 신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믿는다. 며칠 뒤, 아버지의 지인이 찾아와 살리에리가 빈에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리에리의 욕망은 신의 음성을 음악으로 만들어내고, 그 음악으로 자신이 영원히 추앙받는 것이다. 이때 살리에리의 환상은 신이 자신을 신의 도구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환상은 모차르트의 등장 전까지는 계속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살리에리는 왕실 작곡가의 자리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살리에리는 작은 바람들로부터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직 살리에리의 환상은 유지되고 있다. 살리에리는 볼프강 모차르트보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 연극이기 때문에, 배우에 따라 살리에리가 무엇을 더 욕망했는지 확실하게 해석할 수는 없으나 살리에리가 처음 욕망한 것은 모차르트의 재능보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에 더 가까워 보인다. 살리에리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자기 아들에게 힘을 쏟은 것처럼 음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또한 그의 신학적 아버지(신)는 그에게 그를 지나친 수많은 천재만큼의 재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음악에 더 온 힘을 쏟을 수 있도록 도와줄 아버지를 욕망한 것처럼 보인다. 


살리에리는 발트슈테텐 남작 부인의 저택에서 모차르트를 처음 만난다.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 음탕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살리에리는 숨어서 그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그때, 갑자기 모차르트 없이 다른 방에서 연주가 진행되고, 모차르트는 서둘러 지휘를 하러 다른 방으로, 무대에서는 장막 뒤로 나간다. 음악이 시작되자 살리에리는 황홀경과 동시에 충격에 휩싸인다. 


 

“이 음악은 날 뚫고 지나갑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대상 a를 본다. 이때 모차르트의 음악은 살리에리의 상징계에 침입하는 실재다. 상징계를 이루고 있는 상징적 질서가 작동하려면 실재적 대상인 대상 a는 은폐되어야 한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그가 추구하던 신의 음성―완벽한 아름다움을 보고 만다. 

 

라캉은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 완벽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던 상태를 ‘상상계’라고 한다. 아이는 언어를 배우면서 금지와 통제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욕망이 발생해 충족감은 분할된다. 이때 ‘상징계’가 시작된다. 아이가 인간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숙지해야 하는 규범을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부르는데, 살리에리의 경우 이 ‘아버지의 이름’이자 ‘대타자’가 바로 ‘신’이다. 

 

살리에리는 신과 거래했다. 그는 신에게 금욕과 근면 등을 약속했다. 살리에리는 상징계의 질서대로 금욕과 근면, 성실을 이행하고 있다. 실재는 모차르트의 비언어적인 요소―경박한 웃음소리, 성적인 농담,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를 통해앞서 말한 신이 살리에리 자신을 선택했다는 환상이자 상징 질서로 침입한다. 살리에리는 그 순간 충동의 차원에서 자신도 모르게 음악에 푹 빠져 만족을 경험함과 동시에, 상징 질서에 균열을 느껴 고통스러워한다. 살리에리는 저택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무릎 꿇고 신께 기도한다. 왜 신이 저런 ‘천박한’ 모차르트에게 그런 재능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을 제발 신의 도구로 선택해달라고 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악보를 구한다. 그러나 살리에리가 구한 악보들은 저택에서 들었던 모차르트의 음악이 모차르트가 어쩌다 운이 좋게 얻게 된 것처럼 느껴질 뿐, 대단하지는 않았다. 살리에리는 저택에서 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음악가에게 평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행운 정도라고 여기며 환상을 다시 만들어낸다. 신이 아직 자신을 신의 도구로 선택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환상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악보 원본을 보면서 완전히 깨진다. 


문란하고 방탕한 생활로 인해 모차르트는 연주회가 거듭 성공을 거뒀음에도 그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없어 곤란을 겪는다. 씀씀이가 큰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궁핍하다. 콘스탄체는 살리에리에게 엘리자베스 공주의 교사 자리를 부탁한다. 살리에리는 콘스탄체에게 모차르트가 없는 시간에 다시 와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한다. 콘스탄체는 망설이지만, 결국 모차르트의 악보 원본을 들고 살리에리의 저택을 방문한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복수하기 위해 콘스탄체를 유혹하려고 한다. 살리에리가 좋아하는 그의 제자 카발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모자라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의 주연 자리를 맡았기 때문이다. 살리에리는 약혼자가 있는 모차르트와 카발리에리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해 복수를 결심한다. 그러나 유혹은 실패하고 살리에리는 콘스탄체를 협박한다. 살리에리는 그런 자신의 추한 모습에 괴로워한다. 

 

그는 수정 흔적 하나 없이 일필에 휘갈긴 모차르트의 악보 원본을 본다. 살리에리가 악보를 편 순간 모차르트의 음악이 극장 전체를 채운다. 커튼처럼 쳐진 장막 너머로 모차르트가 지휘하는 모습이 보인다. 살리에리는 고통스러워하며 전율하고, 무대를 굴러내려 온다. 


 

“나는 알았습니다, 내 운명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에 수치심을 느꼈듯이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공허한 내 음악에 치욕스러운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오늘밤 이 도시의 어느 술집에선 그 어린애가 깔깔거리며 한 손엔 당구 채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생각이 나는대로 그냥 음표를 써재끼겠죠. 하지만 그 음악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될 것이고 내가 두 손으로 신께 기도드리며 몇 날 며칠을 고치고 또 고치며 써 내려간 내 음악은 한낱 보잘것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리겠죠.”

 


모차르트의 음악은 살리에리의 존재를 뒤흔든다. 실재는 음악을 통해 상징계에 침입하고, 살리에리의 상징질서는 와해된다. 커튼 너머에서 지휘하는 모차르트는, 마치 살리에리가 절대 가닿을 수 없는 실재계처럼 보인다. 살리에리의 삶 속에서 많은 천재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극 중에서의 언급대로 그들은 문제를 일으켜 저물어버렸다. 살리에리는 천재를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 그들만큼의 탁월한 재능을 주지 않은 신을 원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원망하고자 하는 충동은 살리에리의 환상을 부수는 것인 동시에 상징질서를 흩트리는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살리에리는 금욕과 근면, 성실을 지켜왔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살리에리는 자신이 절대로 가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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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제게 당신을 음악으로 섬기려는 욕망은 주셨으면서, 재능은 주지 않으셨네요! 당신은 제게 당신을 찬양하려는 욕구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절 벙어리로 만드셨죠. 아 그런 제게도 딱 한 가지는 주셨습니다. 당신은 제게 타인의 재능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재능을, 그 유일한 재능으로 저는 제가 영원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체는 자신의 충동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며, 욕망은 충동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환상은 깨지고 살리에리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임을 자각한다. 살리에리는 신이 모차르트를 신의 도구로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틀은 또 다른 환상으로 신을 원망하고자 하는 살리에리의 충동을 욕망의 차원으로 끌어올 수 있게 한다. 살리에리의 욕망은 이제, 음악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아버지의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적입니다.” 

 


살리에리는 묵주를 집어던진다. 그는 자신의 대타자인 신을 적으로 규정한다. 이제 그의 욕망은 모차르트를 방해하여 신에게 맞서는 것이다. 모차르트가 선택받았다는 프레임으로 인해 살리에리의 충동은 욕망의 층위로 내려오고, 이제 살리에리는 신을 원망할 수 있게 된다. ‘신이 모차르트를 자신의 도구로 선택했다’는 환상은 살리에리의 욕망을 지탱한다.

 

1막까지 모차르트가 이드(id)적인 인물이라면, 살리에리는 초자아(superego)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2막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초자아였던 신을 적대하면서 자신을 그와 정반대의 방향성을 띠는 이드(id)의 자리에 놓고 끝없이 욕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2막



살리에리의 충동은 욕망의 층위로 내려온다. 살리에리는 신에게 약속했던 금욕과 성실, 근면을 모두 벗어던진다. 그는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던 모임에서 탈퇴하고, 카발리에리와 불륜을 저지르며, 파티를 연다. 살리에리가 금기시했던 모든 충동은 욕망의 차원으로 내려와 완전히 충족되지 않고 끝없이 모습을 바꾼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새로운 스타일의 모자처럼” 청중들을 놀랍게 했지만, 사람들은 모차르트 음악의 뛰어남을 알아보지 못한다. 살리에리만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이해한다. 그와 달리, 살리에리는 내놓는 작품마다 대중의 찬사를 받으며 궁정 악장의 자리까지 올라선다. 그는 모차르트가 발표하는 모든 작품의 공연을 방해하면서 모차르트에게 친구인 척 다가간다. 

 

충동의 차원에서 머물러있던, 모차르트의 공연을 향유하고자 하는 그의 충동은 그가 신을 적대하게 되면서 이제 욕망의 차원으로 내려온다. 신이 그를 선택했다는 환상은 이미 부서졌으며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이 자신의 상징질서를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모차르트의 공연을 단 5회만 가능하게 막으면서, 그 모든 공연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그의 음악을 듣고 감탄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대타자가 ‘아버지’라는 점이다. 모차르트의 대타자는 생물학적 아버지이지만, 살리에리의 아버지는 신학적 아버지(신)이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그를 억압하며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콘스탄체에 대한 비난을 일삼는다. 모차르트는 레오폴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콘스탄체와 결혼한다.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죽자, 모차르트는 그를 방치한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그렇게 <돈 조반니>의 ‘고스트 파더’가 탄생한다. <돈 조반니>에서 기사장 귀신은 검은 망토를 입고 죽음에서 부활한다. 그는 방탕한 돈 조반니를 지옥으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살리에리는 그 모습에서 모차르트와 고스트 파더에게서 그의 아버지를 본다.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함으로써, 자신을 징벌하고자 한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그는 심부름꾼을 시켜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처럼 검은 망토를 입고 찾아가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한다. 모차르트는 레오폴트 모차르트를 미워하지만, 동시에 애정하기 때문에 그의 죽음에 크나큰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 심부름꾼의 모습과 레퀴엠 의뢰는, 모차르트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아버지의 죽음은 모차르트에게 어떤 외상적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모차르트는 계속해서 죽음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꿈을 꾸며 쇠약해진다. 이때 모차르트의 꿈은 소원 성취적 목적에서 일탈하여 자기 학대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꿈은 불안의 부재로 나타난 외상성 신경증을, 불안을 촉발함으로써 그 자극을 소급하여 다스리고자 노력한다.


모차르트는 <마술피리>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자라스트로의 모습으로 담아낸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자신의 대타자인 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였음을 깨닫는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모두 ‘아버지’를 대타자로 하고 있지만, 모차르트는 끝내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레퀴엠 의뢰는 이제 모차르트에게 아버지를 상기시키지 않는다. 다만, 그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모차르트는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레퀴엠을 작곡해낸다. 몸이 쇠약해져 곡을 써낼 수 없는 모차르트를 대신해 살리에리가 곡을 받아적는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경이로운 발상으로 레퀴엠을 떠올려낸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토록 갈망하던 신의 음성을 받아 창작하는 듯한 환상을 경험한다. 모차르트는 잠시 쉬자며 피아노 위에 드러누우며 이렇게 말한다. 


 

“고마워요. 아무도 날 찾지 않는데 선생님만이 내 유일한 친구예요. 난 선생님이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용서해주세요.”


 

살리에리는 깨닫는다. 그가 작곡한 레퀴엠이 바로 타락해 죽어가는 자신의 영혼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것을. 모차르트는 영원히 남으리라는 것을. 살리에리에게 신은 이제 모차르트만을 선택한 잔인한 자가 아니다. 모차르트와 자신을 둘 다 버린 신이다. 한번 사용한 자는 다시 사용하지 않고 잔인하게 등 돌리는 자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모조리 찢어놓으며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며, 동시에 용서를 강요한다.  

 

살리에리는 회상을 마치고 스스로 목을 긋는다. 이때 살리에리의 욕망은 영원히 남는 것이 된다. ‘모차르트를 죽인 자’로.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는 자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 살리에리는 자신을 ‘평범한 자들의 수호자’ 자리에 놓으며,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끝내 신의 적대자의 위치에 자신을 놓고 사람들을 용서하고 구원하려고 한다. 당대 종교적 믿음을 가진 이들의 상징계에서 그들이 욕망하는 것은 ‘영생’이었을 것이다. 살리에리는 그러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여 환상을 만들어냈다. 살리에리는 끝내 자신을 신의 적대자 위치에 놓음으로써 대타자의 욕망을 간파해내고 그와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상징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참고 문헌

서영채, 『인문학 개념정원』, 문학동네, 2013


사진 자료

페이지원 컴퍼니 공식 트위터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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