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온 세상, 살아갈 세상 - 도서 '미래과거시제'

글 입력 2023.04.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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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단언컨대 드라마나 영화로 비유하기엔 너무도 길다. 아무리 긴 장편 시리즈라고 하여도 365일 내내 시청해야 끝이 나는 이야기는 없다.

 

사람은 세상에 던져진 채로 태어나 삶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운명을 시험받고 고난에 직면하는 존재다. 수백 번의 행복과, 수천 번의 고난과, 수만 번의 시도로 삶의 열차는 제 운명에 의해 연료가 다할 때까지 달릴 것이다.


또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울러 통합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 측면에서 SF 소설은 사람만이 지닌 사유의 능력을 가장 아낌없이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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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그리고 공유하는 사람들. 바로 SF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다. 경험하지도 않은 그것을 떠올리고, 사람들에게 “이러한 세계도 있을지 몰라”라며 함께 감응하길 요청한다. 이러한 요청을 기꺼이 승낙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독자들이다. 독자들은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상상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현실의 물리적 한계와는 관계없이 거침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의 밀도와 깊이에 푹 빠져 침잠한다.


배명훈 작가의 신작 <미래과거시제>를 읽고 이 작품이 가진 여러 매력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홀로 내린 대답은 이 작품이 사람의 속성을 뚜렷하게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배명훈 작가는 작품을 통해 시공간과 기술이 달라져도 사람이 지닌 특성들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을 증명했다.

 

SF 소설은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전히 사람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어 소통하고 교류하기를 원하는 ‘사회적 동물’인 사람의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한편 작품 속에서는 감히 한계라고 할 만한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머나먼 우주 저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이미 목성에 다녀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성을 향해 항해중인 우주선에서는 잊혀진 영혼이 3차원으로 다시 빚어지기도 한다. 또한 파열음이 완전히 사라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사람의 입에서 침을 튀기며 말하는 모습은 일체 찾아볼 수가 없다.

 

SF 소설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는 어쩌면 멀리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과 역병이 사라졌다고 믿을 뻔했던 21세기의 어느 날 불현듯 전세계가 동시에 멈춰버린 날이 도래한 것처럼.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 파열음이 없어진 세계를 그린 것은 어쩌면 100년 후에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마치 한글이 최초로 만들어졌을 때 훈민정음을 읽고 썼던 사람들이 21세기의 언어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채 한 참을 해석하느라 진이 빠질 것이 분명한 것처럼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작품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래과거시제’다. 언어를 통해서 만나는 또다른 시공간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에 따라 상대방과 나의 세계가 때로 엇갈리게 된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추억의 상대성’을 비유한 것이라고도 느꼈다. 가령, 누군가와 함께한 사건이나 경험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것을 회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다른 이는 시간이 마모됨에 따라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미래과거시제’는 새로운 언어 규칙의 사용을 통해 시공간의 주관성에 대한 차별화된 인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경험과 추억의 상대성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오로지 ‘상상’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을 불러일으키기도, 재앙을 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명훈 작가의 <미래과거시제>를 보며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지만 그것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우리가 살아온 세상, 살고 있는 세상, 살아갈 세상은 마찬가지로 ‘사람’이 있는 곳이라고. ‘사람’이 없어지지 않은 한 우리가 지닌 태초의 본질이 완벽히 제거되진 않을 것이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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