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등대를 둘러싼 낭만의 재정의 - 세상 끝 등대

굴곡이 있기에 아름다운, 나는 낭만을 더욱 확장된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글 입력 2023.04.0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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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 ‘세상 끝 등대’.

 

책의 제목이 등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등대에 대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야기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웬걸 없어져가는 등대의 현실, 등대에 얽힌 이야기, 등대지기들의 즐겁고도 쓸쓸한 일상이 담담하게 풀어져 있었다. 낭만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여겼던 내게는 다른 전개로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다 읽어갈 때쯤 낭만이 새롭게 정의되었다. 그 자리를 지키며 본인의 맡은 바를 해내는 것,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등대의 역사, 그럼에도 끝이 보이는 유한한 등대의 일생.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인생 같았고 우리가 인생을 낭만적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등대의 일생도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굴곡이 있기에 아름다운, 나는 낭만을 더욱 확장된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낭만적인 이야기들은 총 3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34개의 등대가 소개된다. 책의 한쪽엔 삽화, 한쪽엔 등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등대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느끼면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등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다면, 맨 앞쪽의 등대 지도를 참고하면 된다. 등대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어 각각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등대의 삽화를 보며 등대에 담긴 이야기들을 상상해본다. 혼자 우뚝 땅이 끝나는 지점에 서있는 등대는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기도,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그 곳에서 일어난 모든 이야기들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는 등대의 존재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주어진 이야기와 삽화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곁들이다 보면 한 챕터를 읽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책은 따뜻하고 섬세한 삽화와 짤막한 이야기들이 간결하게 함축되어 있어, 짧은 호흡의 ‘등대 사전’ 같기도 하다. 그림과 글의 정확한 분배, 잘 정돈된 구성이 이 책의 소장가치를 더욱 높인다. 책의 미적 구성이 그 가치를 더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책 한권을 들고 곳곳의 등대들을 보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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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살때에 비해 내 몸이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섬 생활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매번 외로움과 권태를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감각을 깨어 있게 만들다 보면 온몸에 힘이 솟구친다.” -p.96. [21. 마치커 등대]


이 등대가 위치한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거친 땅이다. 일주일에 5일 비가 내려 유리창도 쉽게 부셔지고, 전기 공급을 끊기게 하는 악명 높은 곳이다. 사람들은 등대지기 존 쿡에게 어떻게 그곳에 살 수 있냐 묻고, 모두가 그 곳에서 근무하기 꺼려하지만 존 쿡은 마치커를 사랑하고, 이 등대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존 쿡은 위기에 처한 배를 구하고, 긴급 시 소통을 돕고자 비둘기에 쪽지를 보내고,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20분에 한 번씩 펌프질을 하는 것에 불평을 하지 않았다. 노년에는 등대에 대한 회고록을 남겼고, 마치커섬에서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그는 진실로 마치커섬과 마치커 등대를 사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등대지기들에게 어떻게 이곳에서 살 수 있냐고 묻는 것에 대한 대답은, 그들이 정말로 등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등대지기 일을 하며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을 소화할 수 있는 자만이 등대지기를 하는 것 같기에 더욱 그들이 멋지게 보인다.

 

이들이 등대에 쏟은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등대의 존재가 더욱 유일무이하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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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18일 밤, 4천 리터의 휘발유와 프로판가스가 폭발을 일으키면서 등대의 창고가 대파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 위층에서 자고 있던 윌터 스코비는 그 충격으로 침대에서 튕겨 나갔다.” -p.128 [29. 스태너드록 등대]


가만히 있다가도 사고가 날 수 있는 등대. 갑작스런 사고로 등대지기들이 즉사했다. 이 사건 이후로 스태너드록에서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고, 이 등대는 더욱 황량하고 쓸쓸하게 변해갔다고 한다. 


이 밖에도 등대를 둘러싼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된다. 구조를 받지 못해 시신과 동침해야했던 이야기, 미끄러운 바위섬에 미끄러져 파도에 휩쓸려 시신조차 찾지 못했던 이야기, 불가사의한 마약, 사망 사건과 연루된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등대는 저 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동화 속 아름다운 존재가 아님을 확실하게 체감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인적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니 오히려 무섭고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등대의 이면을 알게 되어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이 또한 등대가 품고 있는 이야기니 오히려 등대와 가까워지고 잘 알게 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

 

책을 덮고 등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등대가 가진 다양한 모습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저 아름답기도 무섭기도 한 등대들을 되돌아보았다. 다각적인 모습과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점차 사라져가 역사에 남게 될 등대지기와 등대의 존재가 애틋하다. 함께 했던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빛을 건네 수많은 이들을 구했고, 한 사람의 업이 되어 인생의 큰 부분이 되어주기도 했으며, 무수한 비밀들을 기꺼이 묵묵하게 품어주기도 했다.


한걸음 물러서서 등대에 얽힌 이야기들을 쓱 되돌아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낭만적이다.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어 마치 우리의 인생과 닮은 부분이 많기에, 이 역할을 다한 등대들에 자꾸만 관심이 가져지는 것이 아닐까.

 

등대가 품은 낭만에 함께 젖어들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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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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