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둠으로 세상을 밝히는 기적, 파벨만스 [영화]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
글 입력 2023.03.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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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잘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공간에서 거인을 맞이해야 하는 장소가 있다. 아이는 겁을 먹고 어른은 즐거워하며, 거인들 없이는 절대 밝아지지 않는다. 바로 영화관이다.

 

<파벨만스>는 세계적인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개인사를 ‘새미 파벨만’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재구성한 전기 영화다.

 

이 글 가장 첫 문장을 이유로 어린 새미는 영화관에 가기를 거부하며 <파벨만스>는 시작한다. 아빠 버트는 말한다. 영화는 잔상효과를 이용해 영사기로 보여주는 허구일 뿐이라고. 엄마 미치는 말 한다. 영화는 절대 잊히지 않는 꿈이라고.

 

우리는 어둠 속에서 허구의 거인들을 바라보고, 어떤 거인들은 우리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쉰다. 그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다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갑자기 삶이 살만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줄기 어둠이 선사한 아름다운 빛의 기억, 영화.


<파벨만스>는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빛과 어둠이라는 두 성질을 이야기의 원천으로 삼아 비극을 아름답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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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작 <지상 최대의 쇼>의 기차 탈선 장면을 보고 어린 새미는 영화에 매료된다. 정확히는, 기차가 탈선하는 장면에서의 불안감과 공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하고 싶어 했다.

 

아이가 단순히 기차를 갖고 싶어 하는 것으로 해석한 버트는 새미에게 장난감 기차를 선물해주었지만, 미치는 아이에게 카메라를 쥐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다 찍자고.

 

미치는 새미에게 있어서 인생 최초의 이해자이자, 자신만의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게끔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이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었듯, 빛을 포착하는 카메라라는 기계를 그녀가 새미에게 가져다줌으로써, 아이의 영화 인생이 시작된다.

 

필름을 보겠다고 밥을 먹지 않아도, 집 안에 있는 휴지를 모조리 뜯어내 동생들을 미라로 분장시켜 공포영화를 찍을 때도 미치는 새미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녀의 애정이 담긴 자유로운 돌봄은 새미의 유년 시절을 햇살에 반짝거리는 호숫가처럼 아름답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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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릴 때뿐이다. 자라다 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고, 또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순간들이 온다.

 

미치로부터 전달된 카메라는 새미의 유년기를 마냥 따뜻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비춰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가장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잔혹한 플래시를 터뜨리고야 만다. 그녀의 배신이었다.

 

그러나 새미는 아픈 티를 낼 수가 없다. 연이어 미치의 어머니, 새미에게 있어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새미는 어머니의 어두운 면을 혼자 끌어안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위한 짧은 영화를 만든다. 분명히 존재했던 불륜이라는 아픈 배신을 찍어낸 필름이 새미의 손에 의해 분리되자 남는 것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기록뿐이다.

 

영화 촬영 현장에는 무수히 많은 조명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조명들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숨겨야 하는지 제작자에 의해 철저히 계산되어 위치된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편집이라는 서사의 조명을 통해 이야기의 명암까지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영화는 그것을 만드는 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철저히 계산해 만들어내는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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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불륜 장면을 포착한 장면 앞뒤로 배치된 새미의 2차 세계대전 영화와 자식이 무엇을 알아차리게 되었는지 어머니에게 필름을 통해 알려주는 장면은 치밀하고 효과적이다.

 

불륜을 포착하기 전, 새미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화를 보이스카우트 친구들과 찍으면서 이야기한다. 경악에 찬 배우의 얼굴을 아주 오랫동안 보여주다가,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어야 더 극적이라고 말이다.

 

캠핑을 다녀온 이후로 자신을 무시하고 화를 내는 새미에게 애원하던 미치는 그로부터 진실을 듣는다. 정확히는, 자신이 아이에게 영화의 꿈을 안겨주었던 집안의 작고 어두운 옷장에서 자신의 작고 어두운 비밀이 들켰다는 것을 ‘보게’ 된다.

 

수치스러운 비밀을 아이가 알게 되었다는 것을 미치가 깨달았을 때, 우리는 새미가 그녀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천천히 클로즈업되는 미치의 얼빠진 얼굴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고, 이후로 이어지는 새미의 필름을 통해 더 극적으로 상황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새미가 보이스카우트와 찍었던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ESCAPE TO NOWHERE.

 

미치는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새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직장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듯 도착한 새집과 학교에서 새미는 웃을 수 없다. 오히려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닫고 만다. 새로운 학교엔 덩치가 산만 한 금발의 운동부 녀석들이 그를 괴롭히는 데다, 유대인이라곤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은 이혼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왜 나는 왜소한 유대인이란 이유로 얼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고 기죽어 살아야 할까, 애초에 왜 이사를 와야 했을까, 자신이 괜한 것을 찍어버려서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망친 것일까…. 죄책감과 미움, 답답함 등 온갖 어두운 감정이 새미를 목 졸라 온다.

 

이렇게 우울과 좌절에 빠진 새미를 구해내는 것은, 우습게도 불운의 원흉이 되었던 카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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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는 졸업반의 즐거운 한때를 담은 <땡땡이의 날>을 찍게 되면서, 자신을 괴롭혔던 로건을 아이러니하게도 ‘영웅’처럼 그려낸다. 카메라의 시선 속 로건은 탄탄한 몸을 가진 만능 스포츠맨에,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슬픔의 눈길을 지우지 못하는 마치 헐리웃 무비 스타 같다.

 

로건은 그 영화를 보고 새미에게 화를 낸다. 자신은 저렇게 대단한 놈이 아닌데, 네가 그렇게 만들어버린 덕분에 자신이 얼마나 못난 놈인지 깨닫게 된다고 말이다. 그를 가장 빛나게 보여준 것이 그의 어둠을 깨닫게 한 것이다.

 

그러나 새미는 반대다. 로건이 어떻게 느꼈건, 그들의 관계는 영화를 통해 변했다. 둘은 그것을 통해 나름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 사이의 긴장감이 사실상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로건이 자신을 영웅처럼 그려낸 이 영화를 통해 전 여자친구에게 다시 사랑받게 되는 해피엔딩을 얻어냈고, 이는 새미가 부모님의 이혼으로부터 받았던 충격과 아픔을 일정 부분 해소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새미에게 있어서 영화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는 예술이 어떻게 개인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어머니의 불륜을 발각한 후로 카메라를 쥐지 않으려 애썼던 새미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다. 그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어둠을 포착하고 싶고, 어둠을 밝히고 싶다.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까지 촬영하고 싶다고 욕망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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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는 스필버그 개인의 아픔을 치유하는 작품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를 끌어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영화는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든다.

 

“인생은 어차피 한바탕 꿈, 이렇게 말하는 나는 도사 전우치요.”

 

영화 <전우치>의 대사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의 뜻이겠지만, 대사 자체는 <파벨만스>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어차피 한바탕 꿈, 이렇게 말하는 나는 감독 스필버그요, 라고 말이다.

 

가장 마지막 장면 속 존 포드 감독의 대사가 떠오른다. 영화는 네 삶을 갈가리 찢어버릴 거다. 그렇지만 만들고 싶거든 지평선을 잘 보아라. 지평선이 가운데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을 테니까!

 

인생을 찢어버리게 되건, 재미가 있건 없건. 영화는 꿈이다. 잊어버릴 수 없는 기적 같은 꿈.

 

꿈에 매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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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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