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50년대를 호령한 ‘매란국극단’ 관객이 돼보실라요? [공연]

호외요 호외! 한 번 보면 빠져드는 국극 보러 오세요!
글 입력 2023.03.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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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디 인제야 보러올라 한다믄 쪼까 어렵당게요. 시방 모든 회차 모든 좌석 매진이어서라. 최고의 여성 국극단 ‘매란국극단’이 올리는 극을 못 봐서 우짠다요. 아유 놀리는 건 아니고 내 이 극을 못 봤을 당신들을 위해 <정년이> 본 내 눈을 공유할라 그라지요. 내 며칠 전 50년대로 날아가 매란국극단 공연을 (거의) 1열에서 보고 왔지라. 박수치느라 손뼉이 아스러지는 줄 알았서라. 소리로 들려줄 수 있으면 좋을 텐디 아쉽게도 그런 재주는 없당게. 글로 한번 잘 풀어볼텡게 소리로 듣는다 생각혀고 눈, 귀 활짝 여시라. 보기 편하도록 잠시 2023년으로 돌아와 말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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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부닥치고 굴러서 일어나는 ‘정년이’


 

<정년이>는 소리를 하겠다며 호기롭게 매란국극단을 찾아 상경한 목포 소녀 ‘정년이’의 성장 서사가 중심이다. 목포 시장에서 소리로 돈을 깨나 벌자, 서울에서는 돈을 가마니로 벌 수 있겠다며 국극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맹랑한 소녀다. 운 좋게 국극단에 들어온 정년이는 짝 선배 ‘백도앵’의 후배로 수련하고, 우등생인 ‘허영서’의 의견에 따라 첫 공연부터 ‘춘향전’의 ‘방자’라는 큰 역할을 맡게 된다. 큰 배역으로 부담을 줘서 정년이가 무대에서 망신당하길 바랐던 영서의 계략이었던 것.

 

그러나 아뿔싸, 우리의 대찬 정년이에게는 어림도 없는 모략이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던 정년이는 다방에서의 아르바이트, 고사장과 부용이와의 만남을 통해 남성의 행동거지를 익히고, 시장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연기는 내 몸을 내어주고 사람들의 사연을 담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방자를 완성하며 첫술에 배를 빵빵하게 불린다. 1호 팬 부용이도 생긴다. 허나 탄탄대로일 것 같던 정년이의 국극 인생은 시작하자마자 만만치 않다.

 

“너처럼 국극단에 들락날락하는 애는 처음 본다, 얘.” 여기서 ‘얘’를 맡은 정년이는 매란국극단을 두 번이나 나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한다. 첫 번째 이탈은 다방에서 몰래 아르바이트하며 슬금슬금 노래를 부른 사실을 단장님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다방에서 정년이의 노래를 들은 방송국 PD와 신문기자는 정년이가 은둔한 전설의 소리 천재 ‘채공선’의 딸임을 알게 되고 그를 스타로 만들기로 공작하지만, ‘여성스럽게’ 가요를 부르던 정년이는 또다시 깨닫는다. 자신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국극에는 그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었기에 국극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두 번째 이탈은 소리를 하기 위한 목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본가로 돌아가 어머니와 지내며 국극은 소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국극단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부용이가 쓴 ‘자명고’에서 호동왕자 역을 맡아 극을 올리며 극중극의 커튼콜과 실제 극의 커튼콜이 뒤섞인다.

 

“소리는 내 바닥 내 하늘 나의 전부여. 최고만 된다면 심장이 뚫려도 상관없어.”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머리를 들이미는 정년이의 모습은 철없어 보이기도,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밉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의 모습의 어느새 우리가 잃어버린 어린 야망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랬기에 대담한 정년이의 선택과 이를 재치 있게 그려낸 대사들에 웃음과 박수갈채를 보내면서도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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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한 건 오직 아름다운 것인데, 왜 그걸 할 자유도 없나”


 

여성 소리꾼들이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며 시작된 여성국극은 195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소리와 몸짓, 무예, 무대 연출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당대 예술성의 결정체로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또한 다양한 캐릭터들을 모두 여성이 연기했던 만큼 현대의 ‘젠더프리’ 캐스팅의 시초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젠더’에 갇힌 연출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젠더 역할에 갇혀 있던 관객들의 한을 풀어주는 극. 이에 걸맞게 <정년이>는 당대 여성들이 겪던 비합리를 토로한다. 비록 영화 및 텔레비전의 성행과 국가 지원으로부터의 배제로 인해 여성국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정년이> 속 여성주의적 요소에서 여성국극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당대 여성들에게만 주어진 제약들과 그들에 대한 차별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표현된다. 정년이가 가요를 부를 때 여성 가수답게 살랑살랑 여리게 부르라는 지시에 따라보지만 되려 우스워 보이기만 할 뿐이다. 강인함이 강조되는 ‘남성 시점’의 가사에서도 ‘여성스럽게’ 부르라는 ‘남성’ PD의 피드백은 이 우스움을 배로 만든다. 곡의 내용과는 관계 없이 ‘여성’으로서의 가치만을 내세워 스타를 판매하려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도 충분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소위 남장을 하고 다니는 ‘고사장’은 온몸으로 여성을 향한 차별에 저항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경험은 그가 남자’처럼’ 살도록 이끌었다. 고사장은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남자처럼 행세한다. 효과가 있겠나 싶지만 여성에게는 강하고 남성에게는 약한 자들에게는 제법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성별이라는 하나의 특성에 얽매여 자신을 펼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인물이 아닐까.

 

‘부용이’는 얼핏 보면 무색무취한 정년이의 조력자 정도로 보일 수도 있지만 부여된 서사가 많은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가 밤새워 쓴 극본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는 사실을 폭로하고, 관습적인 결혼을 거부하며, 빗장 밖으로 나가 제 발로 선 극본가로 성장한다. 여기서 ‘빗장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곧, 정년이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벽장 밖’으로 나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여성주의 서사에 퀴어 서사를 더하면서 그동안 숨죽여왔을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준다.

 

“왕자가 없는 시대에 새로운 왕자들이 나간다”

 

‘여성’국극에서 ‘왕자’가 웬 말이냐 싶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극단이라는 자부심과 배치되는 선언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왕자와 공주의 역할을 모두 여성이 연기하며 일부분 ‘젠더프리’를 이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상 역할의 성별은 고정되어 있기에 성별에 따른 역할 특성을 강화했다는 지적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분명히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다만, 대부분 극에서 ‘왕자’가 시대를 호령하고 지키는 역할을 해내는 인물의 표상이었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성별의 특성은 제쳐두고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예술을 현대의 연출로


 

한국 문학, 하면 ‘해학’이 떠오를 만큼 해학성은 대표적인 한국의 미(美)이다. 주인공 정년이는 해학의 인간화라고도 볼 수 있다. 시련이 닥쳐도 익살스럽게 상황을 타개해나갈 힘이 있는 인물말이다. 정년이의 유쾌함이 두드러지기도 했지만, 다른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해학성이 충분히 드러났다. 덕분에 관객들은 한마음으로 같은 장면에서 깔깔 웃는 경험을 했다. 과거의 좌판과 극장에서 가깝게 이뤄지던 객석과 무대의 교감이 2층까지 있는 극장에서도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정년이>의 관객들은 많은 역할을 맡았다. 관객들은 <정년이>의 관객이기도 했지만 ‘매란국극단’이 올리는 공연의 관객이기도 했다. 시대와 공간이 달라지는 이 두 역할의 경계는 명료하지 않았다. 일부 관객들은 <정년이>의 관객으로서 배우들이 하는 소리에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매란국극단’의 관객으로서 극중극의 커튼콜에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매란국극단’ 공연의 커튼콜와 <정년이>의 커튼콜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단체로 시대이동을 하는 진기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매란국극단' 공연의 커튼콜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 뻔했다.)

 

2023년 <정년이>의 관객으로서는 현대적인 연출들이 눈에 띄었다. 주로 영서와 정년이는 무대 양 끝에서 대비되어 묘사되었다. 영서는 자신의 공연을 보러와 줄 단 한 명, 엄마만을 원하지만, 정년이는 그 한 명의 팬인 부용이가 있었다. 그리고 계산적이지만 완벽한 연기를 해내는 영서는 진심을 담지만 어딘가 투박한 정년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웹툰 원작에서만큼 둘의 라이벌 구도가 중점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조명과 노래 가사에서 둘의 대비를 강조한다는 게 느껴졌다.

 

또한 ‘자명고’의 결론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이야기에서는 낙랑공주가 사랑을 위해 자명고를 찢지만, 부용이가 쓴 ‘자명고’에서는 낙랑공주가 끝까지 자명고를 지키다 세상을 떠나는 결말로 바뀌었다. 사랑을 위해 조국을 버리는 서사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여성으로 낙랑공주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낙랑공주가 국가의 위험을 알리며 자명고를 치는 행위는 연출적으로도 아름다웠다. 실제 자명고를 치듯 벽이 일렁거리며, 북의 진동이 시각적으로 묘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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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게 아니라, 뿌리내리고 있었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백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극, 무대 속 수많은 박수갈채가 아깝지 않은 극이었다.

 

조명되지 못한 여성국극을 소재로 해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인물의 성장 서사로 눈물짓게 하는 귀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를 다양한 소리로 표현해낸다. 관객들을 과거와 현재에 번갈아 툭 툭 부드럽게 던져놓고 함께 호흡하는 친근한 연출은, 관객들을 여성국극이 쇠퇴하기 전의 시점으로 데려가 지금이라도 국극이 더욱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소망이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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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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