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약하지만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
책 한 권으로 만나는 브론테 자매의 이야기
글 입력 2023.03.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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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브론테 자매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설사 브론테 자매를 모른다고 해도, 그들의 명작인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등을 통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브론테 자매의 글을 누구나 한 번은 접해보았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브론테 자매를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지만 그들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에 들어온 이후였다. 그마저도 원해서 읽은 것은 아니었고, 교양 수업에서 발표를 위해서. 어떻게 보면 반강제적으로 읽었다. 당시에 내가 다룬 책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인데, 당시에 나는 이 책의 감성들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랑했던 사람인데, 한 순간의 말(심지어 오해한 것이었다)로 큰 복수를 꿈꿀 수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현재의 나로서는 공감되지 않는 대목들이 더러 있었다.그럼에도 브론테 자매의 작품은 과거부터 오래 전해 내려오는 명작이고, 이 작품들의 왜 명작이라 불리우는지를 나는 꼭 이해하고, 내가 잘못 읽고 있는 부분들을 고쳐 제대로 읽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삶부터 이해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 계기는 거기에 있다.
브론테 자매를 이야기하면 나는 그들이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조금은 고요한 곳에서 그들끼리의 삶을 살고, 어떤 병을 가지고 있어 오래 살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는 책에서 브론테 가계도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브론테가의 자녀들은 모두 마흔을 넘기지 못했으며, 여섯 남매 중 슬하에 자녀를 남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책은 브론테 자매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 그들의 아버지(패트릭 브론테)와 어머니(마리아 브랜웰)의 만남의 순간부터,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의 이야기까지 조금은 상세하게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접한 나는 점점 탐구하듯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장을 마구 넘기며 책을 읽던 중 그 속도가 느려진 구간이 있다. 바로 '코완브리지 학교' 이야기다. 코완브리지 학교는 '딸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책은 설명하고 있다.
역사, 지리, 지도 읽는 법, 문법 외에도 여러 교양 수업도 들을 수 있는 이 학교가 내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학교가 좋은 곳이었어서가 아니다.
브론테 자매들은 코완브리지에서 비극적이고 쓸쓸한-제일 큰 두 언니가 죽음에 이르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샬럿은 20여 년 후에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제인 에어>의 로우드 학교를 탄생시켰다.
<제인 에어>를 읽은 사람들은 로우드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 테니, 위 대목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제인 에어>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코완브리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학교라는 것이 어찌 이렇게 운영되는가. 게다가 설립자가 목사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적잖이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된 패트릭 브론테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그들은 코완브리지를 떠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목사관 안에서 가정 교육을 받으며 그들이 창조하는 세상을 향유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바느질, 그리스어, 그림, 산수 등을 배우기도 한다. 또 무엇보다 책 읽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했던 것은 더 있다.
현실에서 아무것도 갖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샬럿은 스스로 흥밋거리를 '지어내는' 습관이 아주 강했다. 가족 모두가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지어내고' 등장인물과 사건을 창조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어내기'는 브론테가 아이들에게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특히 샬럿은 추후 커서 직업을 가진 후에도 이(지어내기나 상상)에 대한 열망을 친구들과의 편지에 드러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브론테가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그들만의 세상, 저마다의 왕국을 만들며 놀았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어느 작품의 세계관을 만들고 배경을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개성적이며 독창적이고, 조금은 신비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에밀리와 앤은 4년에 한 번씩 일기 소식지라는 것을 작성하게도 했는데,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나 쓴다는 것은 브론테가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큰 가치였으리라 짐작해 본다.*이 책이 브론테가 아이들이 향유했던 글의 세계에 대해 달콤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해야 하는 '직분'으로 인해 고립감에 빠진 이야기, '로버트 사우디'라는 시인으로부터 문학이 여성의 필생의 사업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이야기, 방탕하게 살아 브론테 자매를 힘들게 했던 남동생의 이야기 등 다소 어둡고 안쓰럽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드러나 있다.
위인전보다는 섬세하고, 그러면서도 자세한 이 책은 브론테 자매들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그들이 직접 쓰고 나눈 편지나 일기는 그들 생활을 직접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고,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들은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브론테 자매가 가진 생각들(가령 제인 에어에서 '여성들이 관습상 그들의 성별에 필수적이고 강제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배우려 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거나 비웃는 것은 몰지각한 행동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을 그때부터 하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은 경이롭게 보이기도 한다. 누구보다 그들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지으려 했던 모습 자체가 그들의 작품에서 나아가 배울만한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알 수도 있었을 이야기지만, 꼭 브론테 자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점이 큰 장점인 책이라고 생각한다.[박수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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