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환멸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가장 따뜻한 현대철학 가이드 - 도서 '현대철학 매뉴얼'

글 입력 2023.03.2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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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사회에서 현대철학 읽기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우리 사회가 객관성이라는 판타지를 숭배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권력 시스템을 그럴듯한 자격과 수치로 이해하고 그것들에 편입되기 위해 그것들에 익숙해지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달콤한 속삭임에 따라 어느 곳에서 어딜 향해 달리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마음은 지지대를 잃고 무너진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 끔찍한 불안과 분노가 스스로나 외부 세계를 향해 투척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기술발달은 분명 더 많은 자유와 생각을 약속하고 그것들을 누리게 해줬지만, 다양한 생각은 남성과 여성, 인간과 사물, 나와 너는 파편화되어 소통 없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파편화된 조각은 성찰 없이 타인과 나를 찔러대고, 그 근거를 어떤 객관적이고 진보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해왔다.

 

과학적 방법론이 인간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은 맞지만, 과학이 우리 정신에 남긴 것들이 정말 그토록 객관적이고 근거가 될만했는가? '측정 가능'하고 '비교 가능'하며,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혹은 다른 수식어로 우리의 사상을 보호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로 부조리의 보조장치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최소한 나는 이러한 질문에 긍정하지도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최소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뚜렷한 어떤 패러다임이 있고, 그 패러다임을 의식 없이 나의 일부로 만드는 편리함에 환멸감을 느낄 뿐이다.

 

개인의 생각은 언제나 세계를 겨냥하는 동시에 나를 겨냥하기 때문에,내가 느끼는 이 환멸은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감히 현 20~30대를 휩쓸고 있는 공허감이 내가 느끼는 환멸과 많은 부분 비슷하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환멸을 느끼면서 살아가지만, 풍부한 정보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이었다. 병적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하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담론은 개개인들이 인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되었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구별 짓기나 시대적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집단적 방어기제처럼 뭉개져서 굴러다닌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는 사회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사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기-검열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자기-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리뷰할 책 <현대철학 매뉴얼>은 여러 생각을 뻗어나갈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후술하겠지만, 이 책은 니체부터 시작해 버틀러까지 이어지는 현대철학가들의 짤막한 인생과 그들의 사상을 요약한 책이다. 책을 완독한 입장에서-독자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묶일 수 있지만- 내가 잡아낸 현대철학의 주요 흐름은 세계 2차대전 이후 포스트모던의 개념이나 현상학의 탄생이다. 나는 상호주관성이라는 키워드 아래에서 오래 고민했다.

 

GPT가 인간에게 '인생을 잘 사는 방법 45가지'를 가르치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 인간성과 발전의 원동력과 자유는 언제나 인간 개개인의 깊은 내면에서 발생해왔다. 그런 원동력으로 인간은 나, 우리, 사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고민해왔다. 인간의 정신을 이끌어 왔던 철학은 우리 자신의 존재와 학문의 방향을 결정하는 뿌리였고, 앞으로도 그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2. 현대철학계의 메이저 타로카드


 

책 <현대철학 매뉴얼>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현대철학사의 중요 인물의 역사와 사상을 짤막하게 요약한 책이다. 13명의 철학자를 9명의 저자가 나누어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각 섹션의 분위기나 구성은 약간 차이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철학자 개인의 삶을 사상의 발전과 함께 엮는다는 원칙은 지키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현대철학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도 각 철학자의 이미지를 쉽게 그리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엮어 철학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철학의 미로에서 길을 잃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라는 뒷면의 설명처럼 기획단계에서 생각한 예상 독자에게 적절한 서술 방식이었다.

 

서술방식과 더불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부제목을 통해 각 철학자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를 요약한 것이다. 예를 들어, 존 롤스의 경우 원초적 상황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가상적 상황을 통해 기본적 자유의 원칙을 세우는 데 초점을 두는 철학자다. 존 롤스의 주장은 '자유'와 '평등'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였고, 분석철학에서 밀려있던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의 부활로 이어졌다. 이 섹션의 이름은 '존 롤스, 정치철학으로 가는 길'이다. 롤스라는 철학가가 현대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요약한 것이다.

 

물론 '칼 포퍼, 야만과 광기의 시대에 비판적 합리주의를 외친 철학자'와 같이 시대적 배경과 연관된 경우도,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분쟁과 숭고의 철학자'와 같이 철학자의 중요 개념을 중심으로 한 경우도, '도라 헤러웨이, 인간은 이제 사이버그로 정의되어야 한다'와 같이 가장 대표적인 구절로 선정된 경우도 있다. 부제목에서 드러난 미묘한 차이처럼 각 철학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주요 개념을 위주로 쓰건, 시대적 사건을 중심으로 쓰건 각 철학자들의 삶의 흐름에 따라 각 철학적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각 철학자들의 순서도 시간적 흐름에 따라 배치된다. 그래서 나치의 사상적 기반으로 이용당했던 니체부터 시작해, 나치당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하이데거, 참혹한 전쟁에서 고뇌했던 칼 포퍼, 나치에 가담했던 아이히만 재판을 다룬 한나 아렌트, 미국정치철학의 슈퍼스타였던 존 롤스, 오늘날 뜨거운 감자가 된 도라 해러웨이와 주디스 버틀러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그래서 각 섹션을 읽을 때마다 그 시대 상황에서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책은 분명 현대 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기획 아래에 완성되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철학책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역사책처럼 읽혔다. 이 책의 몇몇 부분은 칸트, 쇼펜하우어, 아리스토텔레스 등 현대철학 이전의 선행지식 없이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저자들은 최대한 쉬운 언어로, 역사의 시간 속에서 철학자들이 했던 고민을 함께 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각 철학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거의 끝에 배치된 도라 해러웨이나 주디스 버틀러는 시대적 격차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각 철학자들이 하나의 캐릭터로 잘 자리 잡고, 그들의 사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자리잡힌 상태로 요약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마치 타로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처럼 느껴졌다. 좀 웃긴 말이지만, 타로카드는 점술도 구라기보다는 어떤 자유연상의 도구로 쓰일 때 더 가치가 있다. 각 카드는 특정한 키워드에 따라 하나의 카드 그 자체로 완성되고, 그 안에 들어간 다양한 요소들은 우리의 마음 깊은 속에 있는 어떤 상징이나 메시지를 건든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다양한 고민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서 다시 읽힐 수 있는 책이다.

 

 

 

3. 나가며


 

여기까지 쓰고 보니 너무 좋은 말만 쓰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정말 좋은 책이다.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관련된 전공도 아니고 그와 관련된 독서 가이드라인도 쉽게 얻을 수 없는 평범한 대중인 나로서는 정말 가뭄의 단비 같은 책이었다. 고전 철학은 관련된 논문도 많고 몇 년 전에 리뷰했던 책-데카르트 성찰 입문-처럼 실제 수업처럼 따라갈 수 있는 책들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현대철학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런 책들이 적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이미 철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탓에 이전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내 생각인데, 현대철학은 너무 난해하게 작성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대철학에 막연한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유명하다는 현대철학 책을 들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더 찾아가면서 읽어야 했다. 이 과정은 정말 짜증나는 일이고 효율도 낮다. 그런 반면 <현대철학 매뉴얼>은 현대철학을 위한 아주 재밌는 현대철학책의 목차와 같다. 전체적인 인상을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도 매우 재밌다. 오늘날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것은 정말 반길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주고 읽히길 바란다.

 

지금 이 시대에 현대철학을 만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 최소한 나라는 독자한테는 참 통하는 일이었다. 내가 이 사회나 스스로 느끼고 있는 어떤 환멸이 어떤 형태 없이 떠다닐 때, 책은 그것들을 학문의 위기나 시대적 문제로 본 것이 너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철학이라는 키워드가 주는 어떤 번드르르한 오만이 아니라, 치열한 시대적 고민을 먼저 했던 사람들의 따뜻한 공감처럼 느껴졌다.

 

이 책이 더 멋지게 느껴졌던 것은 이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치열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고뇌하는 것이 인류의 과제였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자아가 자신과 세계를 해석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고민이 어떤 학문체계로 정의되면 철학이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파리통에 잡힌 파리처럼 그 안에 갇힐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 근원적인 고민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인간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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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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