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발레에 담긴 한국의 정 - 유니버설 발레단: 코리아 이모션 정情

글 입력 2023.03.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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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2023 정기공연 코리아이모션 포스터.jpg

 

 

발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발레를 볼 때마다 한국무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발레가 그리는 선과 한국무용이 그리는 선이 어딘가 모르게 비슷해 보인다. 발레가 곧은 직선이라면 한국무용은 둥근 선이라고 해야 할까.

 

그 선들이 모여 그려가는 그림을 봤을 때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사전에서 본 적이 없는 단어들을 갈망하게 된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싶은데 정작 그 마음을 그려낼 붓이 없다. 바로 이점이 발레와 한국무용, 더 크게 말하면 예술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발레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표현할 수 있는 무기가 부족하다. 동작의 이름과 발레 속 이야기, 그리고 음악 등 나와는 다소 낯설다. 발레를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전까지 tv 프로그램에서만 접했다. 발레를 봤을 때 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느끼고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이번 유니버설 발레단이 기획한 공연은 발레에 한국의 정서를 담은 퓨전 발레 작품이다. 발레의 곧은 선과 한국무용의 둥근 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궁금했다. ‘선’에 있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 많이 존재한다.

 

먼저 선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발레는 어깨를 펴며 감정을 표출하는 강도가 강하지만, 한국무용은 어깨를 굽는 등 다소 감정을 억제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무용을 생각했을 때 발레에 한국 고유의 정서인 ‘정情’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흥미를 자아낸다.

 

 

[크기변환]2021( Korea Emotion 2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64).jpg

 

 

공연은 총 9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단체, 여성 4인, 남성 4인, 여성 2인, 남성 2인 등 다양한 구성으로 한국의 정서를 표현했다. 맨 처음 시작을 알린 ‘동해 랩소디’는 단체 군무로 이뤄졌는데 빠른 장단과 탈춤을 연상시키는 안무가 인상적이었다.

 

둥글게 돌며 잔치를 연상시키는 군무에서 한국무용의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났고 발레 동작을 통한 직설적인 감정 표출을 통해 흥이 극대화됐다. 발레는 차분하고 조용한 영역인 줄만 알았지만 빠르고 신나는 노래와도 잘 어울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기변환]2021( Korea Emotion 1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5.jpg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남성 4인으로 구성된 ‘찬비가’이다. ‘찬비가’는 말 그대로 차가운 비를 표현한 노래로 씁쓸하고 슬픈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노래로 시작해서 점층적으로 폭발하는 무대가 감동적이었다.

 

한국적인 표현으로 시작해 감정을 억누르다가 점차 동작이 과격해지며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데, 한국의 정서와 발레의 특징이 가장 조화롭게 연출되었다고 생각한다. 발레리노들의 큰 동작과 힘은 감정의 무게를 더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무대를 계속 보다 보면 ‘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이라 하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공동체적인 감정이지만 무대에서 보여주는 정이 모두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슬픔과 쓸쓸함, 그리고 한이 서린 원망과 그리움도 느껴진다.

 

정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정이란 건 한국의 고유하고 특이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를 봤을 때 그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이라는 하나의 공 안에는 따뜻한 사랑뿐만이 아니라 슬픔과 원망도 존재한다.

 

고운 정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수많은 관계에는 미운 정도 자리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바로 미운 정도 정이라는 선조들의 생각이 담긴 말이 아닐까 싶다.

 

 

[크기변환]KakaoTalk_20230323_143540684.jpg

 

 

정의 종류도 다양하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부부, 가족, 친구, 연인 등 나에게서 뻗어진 수많은 가지 사이에서 정을 느낄 수 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바로 그런 점을 무대에 녹여냈다. 모녀 또는 자매간의 정, 형제간의 정, 부부간의 정 등 다양한 관계에서 정의되며 달라는 정을 발레와 융합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발레와 한국무용 등 무용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냥 동작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이번 작품을 보고 무용에 대해서 한 발작 더 다가가며 깨달았다. 무용이 아름다운 이유는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릇이 음식이나 물을 담듯이 무용은 감정과 정서를 담는다.

 

어떤 감정을 담느냐에 따라 같은 동작도 분위기가 달라지고 이를 보는 관객의 생각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릇이 되어 모든 걸 담아내고 표현하는 무용수들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높이 뛴 만큼 도약하길 바란다.

 

 

 

박성준-컬쳐리스트.jpg


 

[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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