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감각의 힘, 감각을 이끄는 것의 이야기 – 감각의 박물학 [도서]

우리 감각에 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
글 입력 2023.03.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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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각을 채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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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fill up my senses, like a night in a forest,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like a walk in the rain, 

like a storm in the de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그댄 내 감각을 채워줘요. 마치 밤의 숲처럼, 

봄철의 산처럼, 빗속을 걸을 때처럼,

사막의 폭풍우처럼, 졸음에 겨운 푸른 바다처럼,

그대 내 감각을 채워주니, 다시 와 나를 채워줘요.”

 

 

감각이라는 단어, 정확히는 sense라는 영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위의 노래를 떠올린다. 컨트리 음악의 황제라 불리는 존 덴버의 대표곡인 “Annie’s Song”은 사랑하는 이에게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경험할 때 느끼는 감각과 똑같은 느낌을 그대로부터 받고 있다고 고백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않던 시절, 스키를 타다가 콜로라도 에이젝스 산꼭대기에서 10분 만에 완성했다는 이 노래는 한밤중의 숲속,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봄철 산의 모습, 뺨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촉, 사막에서 맞이하는 폭풍우 소리 그리고 더없이 고요한 바닷가에서 가만히 있어도 자연히 맡아지는 바다 냄새, 이처럼 자연이 주는 우리 몸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사랑의 황홀함에 비유한다.


대체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 몸 감각들의 명확한 역할을 능숙히 인지하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잘 알지 못한다는 정도를 넘어 각 감각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한정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매일 똑같은 일상으로 점점 한정적으로 고착화되는 생활 속에 특별한 자극이나 즐거움을 누릴 경우의 수가 감소하며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 아닐까.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몸의 감각을, 삶이 끝나면 함께 사라질 그 힘을 우리는 평소에 인지하지 않은 채로 인생의 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러나 존 덴버의 노래처럼 찰나의 순간에 자연으로부터, 뜻밖의 인연이 주는 설렘을 통해, 또는 생각지도 못하게 항상 마주하던 익숙한 매개체로부터 갑작스럽게 우리 감각은 자극 받기도 한다. 이런 순간은 정신적인 즐거움과 자극을 주는 계기로 이어지지만, 때론 그 원인을 알지 못하거나 분명히 정의하지 못한 채 그 순간들은 우리를 스쳐 간다. 그리고 아주 잠시나마 이 불명확한 느낌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 고심하는 듯하다가도 대다수 사람들은 끝끝내 답을 알지 못한 채로 그 순간을 흘러보낼 것이다.

 

 

 

감각의 박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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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감각을 토대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박물학(natural history)"이라고 명명한 만큼 저자는 책에서 사람의 감각만 중점을 두지 않고, 이에 비롯한 과학, 역사, 철학의 이야기를 넘어 이 지구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의 감각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이 책은 “하나의 작은 축제”가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주제로 이어지는 책의 내용은 방대한 규모의 박람회에 온 것 같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다양한 대상과 주제가 가득한 이야기들의 중심은 결국 우리 모두 감각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어쩐지 과거보다는 더 차가워지고 단순해진 세상에서 진실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삶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을 들려주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책의 구성은 우리 몸의 오각인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그리고 공감각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제인 감각은 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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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다." 


우리의 감각 중에서 외부의 자극에서 가장 피할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것이 후각이 아닐까 싶다. 눈은 감고, 귀는 막을 수 있고 촉각이야 최대한 멀리 자극을 주는 대상으로부터 피한다면 그뿐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코는 신체 구조상 숨을 쉬어야 하는 기관이기에 귀처럼 계속 손으로 덮거나 막을 순 없다. 저자의 말처럼 냄새는 명확한 이름이 없어 그저 뭐뭐 같은 것, 무엇무엇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추상적인 표현들로 불려 왔다. 그렇게 불분명하고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감각이 주는 즐거움을 따라 사람들의 돈과 욕망이 오가던 시간은 향수의 역사로 남겨지기도 했다.


언젠가 누군가 여행을 떠날 때, 특정 장소마다 다른 향수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집에 있을 때도 당시 뿌렸던 향수를 사용하면 거짓말처럼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생생히 떠오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데 필요한 신체 기관에서 주어지는 감각인 만큼, 후각은 우리가 인자하는 중요성보다도 더 크고 강렬한 역할을 한다.

 

"촉각은 가장 오래된, 필수 불가결한 감각이다."

 

외부적인 여러 자극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피부는 촉각을 가지고 있다. 촉각으로 우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위험을 감지하기도 하며 고통을 느끼고,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촉각도 그 이상의 것을 발휘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촉각 편에서 자신이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조산아들을 쓰다듬어주는 봉사활동에 관해 서술한다. 안마를 받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체중도 빠르게 증가하고 더 사회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사람 간의 신체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서술하며 저자는 말한다. 신체접촉은 햇볕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혀에 감도는 맛은 저 험한 도덕의 땅을 건너게 해주고, 공포를 입맛에 맞는 것으로 만들며, 

이성으로는 합리화할 수 없는 모순을 달콤한 유혹의 정글 속으로 녹아들게 한다."


저자는 미각을 다른 감각에 비해 매우 사회적인 특성을 있다고 언급한다. 최근 들어 홀로 먹는 밥, 혼자 즐기는 식사가 점점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음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사회적, 종교적 구성원으로 맺어지고 그 관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요소였다는 것이다.


코와 달리 우리 몸에서 입은 "육체라는 감옥을 단단히 봉하고 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굼벵이 같은 하등 동물에게도 입은 있고 진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는 신체 구조가 입이라고 한다. 우리 신체의 문의 역할을 하면서 세상과 마주하는 입이라는 지점 안에는 혀가 자리해 미각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마다 다른 취향의, 관능적인 음식의 역사를, 초콜렛과 바닐라 같은 식재료를 향한 열망이 담긴 감각이 자리한 곳이다. 

 

"귀에 들리는 멜로디는 달콤하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더욱 달콤하여라"


우리가 소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공기 분자의 파동으로 발생한다. 그 파동의 크기와 상관없이, 무언가의 움직임으로 공기 분자의 진동이 시작되면, 이 진동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우리의 고막을 울리고 귀속의 뼈들을 움직이게 한다. 이런 원리는 사실 세상에 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는 점을 가리키기도 한다.


저자가 들려준 청력과 소리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들리지 않는다는 것" 파트이다. 청력을 잃은 사람들도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며, 법적으로 청력 장애인인 사람들도 오토바이 소리나 총 쏘는 소리 같은 소음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시각과 청력 두 감각을 상실했음에도 듣지 못한다는 것에 더 큰 안타까움을 표하는 헬렌 켈러의 말은 이 감각이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지독한 불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필수적인 자극, 즉 언어를 이끌어내고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지적인 인간 집단 속에 있게 해주는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만약 다시 살 수 있다면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해온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눈이 안 보이는 것보다 훨신 더 큰 장애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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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실제와 상상과 환상. 

본다는 것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가장 분명히 무언가를 알 수 있는 것은 눈을 통해서 가능하다. 아주 오래전에는 인간도 사냥을 해야 하는 포식자에 속해있어서 두 눈이 정면으로 향해 있었으나 사냥할 필요가 없는 현대에도 우리의 눈은 감각의 큰 영역을 독점하고 있다.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 거리를 좁혀야 하는 다른 감각에 비해 우리의 시선은 멀리 자리한 산꼭대기도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가본 적 없는 세계와 우주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넘쳐나는 정보와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


빛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새로운 것을 쫓는 천성으로 익숙한 것은 의외로 놓치곤 하는 눈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던 중에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화가의 눈”이다. 고흐와 르누아르와 같이 물감의 독성으로 인해 녹내장을 앓았던 대가라 불린 화가들, 자신의 독창성이 눈의 질환으로 인해 유래한 것이 아니었을까 걱정했던 세잔의 일화를 읽다 보면 무엇보다도 시각을 중요시하는 이들의 괴로움이 느껴진다.


“신생아들에게 빛, 소리, 촉감, 맛, 특히 냄새는 한데 뒤섞여 있다.”


시간이 흐르며 신생아들은 감각을 분류하게 되지만 저자의 말처럼 “감각의 혼합은 그치지 않는다”. 감각마다 일정한 공감각이 내재되어 있기에, 우리는 매 순간 감각의 뒤섞임을 경험하며 때로는 그런 찰나를 기분 좋은 자극으로 여기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긴 작가들은 이런 공감각을 작품을 저술하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글을 쓰기 전 고양이 몸에서 벼룩을 잡으며 촉각이 주는 자극을 느꼈다는 콜레트처럼 작가마다 글을 쓰기 전 자신만의 소소한 의식 또는 이행해야 하는 규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집중을 하기 위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감각이 주는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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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이며 박물학자라는 저자의 소개가 책을 읽다 보면 납득하게 된다. 책이 서술하는 우리 몸의 대표적인 감각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마치 잘 구성한 전시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든다. 각 감각이 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이와 관련된 인류의 사랑, 역사, 철학, 감각을 활용한 산업과 저자 자신의 경험까지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여러 방면의 지식이 담긴 미학 서적을 읽는 듯하다.

 

책에서는 사람의 감각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등의 기본적인 정의와 그 예시에서 그치지 않고 이와 연관된 방향으로 다채로이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조향사나 화가, 작가로서 그들은 다른 이들의 감각에 강렬하고 잊히지 않을 자극을 주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아울러,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공존하는 동식물이 가지는 감각의 힘에 관해서 서술하며 그 대상을 향해 존중을 넘어 경이로움을 표한다.


책을 마친 후, 나는 다시 존 덴버의 노래를 떠올린다. 노래의 주인공이었던 그의 전 부인은 노래가 자신을 향한 연가이면서 동시에 덴버에게는 기도문 같았다는 감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연이 부여하는 감상에 비할 만큼의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 힘이 압도적으로 다가오고 신비함과 경이로움으로 여겨질 것이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언제든지 어떠한 방식으로든 경험할 우리의 앞에도 자리할 오감이 건넬 “복잡한 경이로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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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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