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폭에 담긴 조선의 이야기를 따라서 - 조선 미술관 [도서]

글 입력 2023.03.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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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와 박물관에서만 보던 그림들

 

부끄럽지만 생각해 보면 서양 미술 작품은 종종 보러 다니기도 하고 접할 기회가 많았으나, 상대적으로 한국의 그림과 마주하고 있었던 시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풍속화와 기록화는 그저 기록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또한 찾아보지 않았던 것은 아무래도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이유였다. 자신의 근간이 되는 작품들인 줄 알면서도, 갖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는 좀처럼 재미있게 감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동양 미술과 담쌓고 지내던 중,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세상에 없던 전시회

조선 미술관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조선 미술관? 세상에 없던 전시회로 초대한다고..?'


필자의 관심을 유발한 문구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이건 운명이 아닐까하는 마음과 함께, 한국 미술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펼쳤다.

 

 

 

궁궐 안팎의 이야기를 두루 담다


 

조선의 구중궁궐 이야기는 사료나 드라마 등으로 익히 접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 사진과도 같은, 그림을 통해 궁 내부의 이야기 및 서민들의 삶을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미술관_표1.jpg

 

 

<조선 미술관>은 그런 당신께 조선의 새로운 면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소개해 줄 것이다. 본 책은 스타 도슨트 탁현규가 지은 책으로, 문화 절정기 조선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한 권에 담아냈다. 가장 '우리다운', 조선의 모습을 담기 위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선정하여 그들의 뛰어난 연출력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 신선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의 목차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미술관이라는 제목의 컨셉에 충실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관에서는 궁궐 밖의 일상적인 모습, 2관에서는 궁궐 안에서 열린 잔치를 소개하고 있으며 각 관은 3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다.

 

*

 

1관과 2관에서 필자가 인상 깊게 읽은 전시실 파트의 일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1관.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
제1전시실. 풍류로 통하던 조선 양반들
기방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기방 무사>, 신윤복

 

 

기방무사.jpg
출처 :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중략) 그렇다면 기방에서 벌어진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심리 상태를 완벽하게 옮긴 화가는 이런 생활에 또 얼마나 익숙했단 말인가. 따라서 신윤복 또한 한양 기방 출입을 무시로 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 기방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여 자신의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신윤복이 드라마 연출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나 다름없는 이유다. / p. 75

 

 

그림 속에는 남성 한 명과 여성 두 명, 총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옷차림이 가볍고 나무에 잎이 무성한 것으로 보아 계절은 여름일 것이다. 여성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시대 미인이라고 칭할 수 있을 법한 외모인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차림새 또한, '어우동'을 연상케 한다. 이로써 우리는 제목에 쓰여 있듯이, 그림 속 공간이 기방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시대를 불문하고, 남녀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궁금증의 대상이 되나 보다. 저자의 말처럼 기방에 흐르는 기운은 결코 건실하거나 유쾌하지 않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그림을 그려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 터. 그것이 당시 양반 생활을 고발하고자 하는 뜻이었다면 그럴 것이고, 설령 그 뜻이 아니었어도 작가는 이런 풍경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래 예술은 삶과 밀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목은 기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 명의 등장인물과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에서 알 수 있듯이 분명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자세한 내막은 그들만이 쥐고 있다. 그림을 통해, 당신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유추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그림에 각자가 만든 로맨스를 붙여주거나, 당시의 일상을 엿보면서 시대를 상상하고 또 그 시대에 양반이었다고 한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재밌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1관.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
제3전시실. 하루하루에 충실한 서민들

길 가운데서 만나다 - <노중상봉>, 신윤복

 

 

노중상봉.jpg
출처 :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신윤복의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한복의 주름을 참 어여쁘게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그림을 보았을 때에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치맛단과 두루마기의 멋진 주름이었기 때문이다. 한복에서 눈을 떼니, 그제서야 길에서 만난 이들이 정답게 인사를 주고받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정말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이렇게 그림으로 남겨 놓으니 하나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두 쌍의 커플은 아마도 부부인 듯하다. 한 여인은 모자를 벗고 인사를 올리고 있고, 나머지 여인은 모자를 벗지 않은 채로 있다. 옷차림으로 보아서는 신분의 격차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뒤돌아서있는 남성과 곰방대를 물고 있는 남성은 그렇다면 아마도 아는 사이가 아닐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그림 속 인물들이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이내 눈앞에 그려진다.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보따리를 들고 있으면서도 즐거워 보이는 표정. 생각해 보면,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정다운 마음을 나누는 일은 어째서 사치가 되었는지. 언젠가 반가운 얼굴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면, 신윤복의 그림을 떠올리며 다정한 안부를 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2관. 궁궐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

제2전시실. 영조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가다 《기사경회첩》

임금이 기로소에 잔치를 내려주다 - <본소사연도>

 

 

본소사연도(本所賜宴圖)_PS0100200100108149500000_0.jpeg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본소'는 기로소를 말하며 '사연'은 임금이 잔치를 내려주었다는 뜻이다. 잔치가 열린 기영관은 원래 기로소 서루라고 불렸던 'ㄱ'자 건물을 전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일자형으로 개축하여 기로소 본관으로 삼은 곳이다. / p.237

 

 

우선, 그림을 살펴보기 이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기로소가 무얼 의미하는 것인가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기로소란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라고 한다. 쉽게 말해, 당시 기준으로 장수한 고위 관료직을 위해 특별히 설치한 모임인 것이다.

 

조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왕 중에 하나가 '영조'다. 그가 세운 업적은 익히 알고 있듯이 상당하며, 장수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갈 무렵, 그의 나이 51세였다.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는 취지로 일련의 행사 기록을 담아낸 화첩이 바로 《기사경회첩》이다.

 

그런 기로소에 임금께서 잔치를 하사했다고 하니, 아니 남길 수 있겠는가. 그 광경을 담아낸 그림이 함께 보고자 하는 <본소사연도>다. 한눈에 봐도 많은 대신이 자리해 있고,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세히 보면 기녀가 춤을 추고 또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여인들이 술잔과 음식을 나르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당시 조정은 사치와 향락을 경계하던 분위기가 느슨해진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너른 공간에서 큰 규모의 잔치를, 그것도 전기가 없던 그 시절 밤에 열었다는 사실에서 당시 그의 힘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 외에도 그림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네모난 직사각형의 공간 안에서 행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마치 드론으로 촬영한 것처럼 그려낸 사실이다. 아마도 그림은 행사를 직접 보고 난 다음 완성되었을 것이고, 관찰했다고 해도 먼 발치서 지켜보고 그렸을 것인데 꼭 공중에서 목격한 것처럼 그렸다는 점이 재밌었던 지점이다. 상상력을 더해낸 한 폭의 기록화에게서 즐거움을 느낄 줄이야!

 

 

 

진짜 조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림을 통해 느낀 조선은 이제껏 줄글이나 영상으로 접해온 조선의 기록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도록처럼 그림과 작가만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이야기와 함께 있는 그림을 통해 새로운 그림의 매력과 조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상을 솔직하게 반영한 그림을 통해, 그때와 지금의 공통분모를 찾아보고 또 다른 시각으로 당시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 필자가 갖고 있었던 조선에 대한 편견과 풍속화 그리고 기록화가 갖고 있는 어렵다는 이미지를 깨부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또한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을 즐겁게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을 선사해 주는 책이다. 진짜 조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윤화 전문필진.PNG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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