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다, ‘감각의 박물학’

글 입력 2023.03.1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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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0페이지가 넘는 과학 논픽션을 끝까지 읽어 본 경험이 없기에 절반만 읽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학 논픽션은 나에게 이해와 끈기를 요구한다. 내용을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니 책을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항상 책의 3분의 1의 내용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읽으며 어느 순간 내용에 질리게 되어 책을 접게 된다. 이번에는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자 <감각의 박물학>을 읽고자 다짐하였지만,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지 계속 불안에 휩싸였다.


하지만 <감각의 박물학>은 인간의 감각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보다는 인문학적으로 설명하는 비중이 더 크다. 감각이 발생하면서 우리가 이에 대해 반응하기까지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뿐만 아니라 감각과 관련된 본인 경험, 영화와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과 물건의 감각적 의미, 사람들의 문화와 풍습이 어떤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것인지 등을 이야기한다.


<감각의 박물학>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자연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라고 불린다. 자연에 대한 그의 문학적 표현은 ‘감각의 박물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인간과 인간의 감각에 대한 그의 비유적 표현은 몇 페이지에 이르는 설명을 한 단어에 압축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따라서 생물학 관련 지식이 적은 나도 충분히 내용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고, 과학적인 내용에 문학적 표현이 있어 색다르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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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제시하고 있는데, 나는 그중 인간을 바다로 비유한 것이 가장 신선하다고 느꼈다. 인간의 몸을 하나의 우주로 비유한 표현은 많이 들어보았으나, 바다로 비유한 것은 처음 보는 표현이었다.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인간의 다양한 감각과 기능은 ‘인류 조상이 초기 바다에 살던 시절의 유물’이라고 표현하며 ‘우리의 피는 바다와 같이 소금물이고, 눈을 씻거나 콘택트렌즈를 끼울 때 소금물인 생리 식염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머리는 성장, 죽음, 재생의 순환에서 서로 다른 단계에 있는 수많은 머리카락이다. 그중 15퍼센트는 휴식 중이고, 나머지 85퍼센트는 성장하고 있다. 내일 죽을 운명인 수십 개의 머리카락의 모낭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머리카락이 싹트고 있다.


인간과 같이 성장과 죽음, 새로운 탄생(재생)의 사이클을 함께 하고 있기에 머리카락은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진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손톱, 발톱, 속눈썹 등은 이러한 사이클로 진행된다. 이는 바닷속에서 다양한 수생 생물이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몸에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은 바다를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공부하거나 일에 집중해야 할 때 백색소음으로 파도 소리를 듣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핸드폰 배경 화면이 바다 풍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름철이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휴양지로 바다를 선택하고, 겨울철이어도 겨울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바다 풍경을 보기 위해, 겨울 바다 냄새를 맡기 위해 바닷가로 떠난다. 최근 흥행한 ‘아바타: 물의 길’의 주요 배경도 바닷속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촉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우리에게 안정을 주고,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바다에 열광하는 이유는 인간의 감각이 바다에서 탄생한 것이 많고, 또 인간의 몸이 바다와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감각의 세계에서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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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보다 감각을 많이 느끼는 사람을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복잡한 틀린 그림 찾기에서 틀린 부분을 빨리 찾는 사람들, 눈을 가린 채 라면을 먹고 라면 브랜드를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유용한 능력은 아니라는 생각이 따라오곤 했다.


하지만 내가 둔감한 사람이어서 이러한 생각을 한 듯하다. 사람들은 계절이 바뀌면 바뀐 계절의 냄새가 설렌다고 하지만 나는 여름 냄새, 겨울 냄새가 무엇인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감각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세상을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각이 무딘 나는 기쁨, 믿음직한 친구, 연인은 모두 ‘달콤한’ 것이고, 후회, 고통, 실망은 모두 ‘쓰디쓴’ 것이라 표현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감각을 풍부하게 느끼는 사람은 믿음직한 친구는 여름밤의 시골집 냄새와 같이 계속 함께하고 싶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찬란’, 빛이 번쩍거리거나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 그 빛이 매우 밝고 강렬하다는 뜻이다. 요즘 ‘찬란’이라는 단어에 빠져있다. 하지만 어휘사전의 뜻이 아닌, 내 입으로 ‘찬란’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에는 아직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화려하고 밝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것 같은데, 적합한 표현이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일상생활에서 모른 채 지나가는 감각을 좀 더 깊게 느끼며 언젠가 이 단어와 어울리는 문장, 혹은 풍경을 표현해보고 싶다.


감각을 풍부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감각의 더 깊은 세계에 빠지고 있는 지금, 책 <감각의 박물학>을 통해 나도 그 세계에 잠깐 빠져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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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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