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편한 불쾌함 - WE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 [전시]

글 입력 2023.03.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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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jpg

 

 

테이프로 벽에 붙여진 바나나를 작품으로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바나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떼어먹은 누군가도 잘못이 없는가?

 

오히려 이 사건으로 유명해져 스타 화가가 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이를 미리 알고 의도한 것 아닐까? 바나나를 새로 공수해 다시 붙인다면 바로 만들어지는 이 작품이 과연 12만 달러의 값을 하는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예술가 중 한 명이다. 한국에선 그의 단독 전시회 오픈 이래 매진 행렬을 일으키며 더욱 더 유명해지고 있다. 전시회를 보기 전부터, 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마음의 안정보다는 혼란함을 가져다주는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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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자마자 고개를 올리면 축 늘어진 말과 저 높이 앉아서 북을 치는 소년이 보인다. 천천히 둘러보면 어느 하나 마음을 둘 작품이 아니다.


뜬 눈의 얼굴과 몸으로 실제 사람을 묘사한 것으로부터 오는 께름칙함이 덮친다. 그런 작품 앞에서 함께 인증사진을 찍어대는 전시 관람객들에게도 솔직히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꿈에서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나를 향해 달려올 것 같은 인물들과 현실에서 외면받는 대상이다 보니 아이러 니를 느꼈다.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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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비둘기 수십 마리가 전시장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지나다니는 길에 벌렁 누워있는 노숙인, 삶보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동물과 사람들은 사회에서 모두 외면당하고 때로는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여긴 미술관이므로 함께 브이 하며 사진 찍히는 비싼 미술품이 된다. 바나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몇천 원이면 한 바구니 사 먹는 바나나를 회색 테이프로 벽에 붙이면, 1억 원이 넘는 고급 명작으로 재탄생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한 걸까?

 

인생에 모순이 많다지만, 나는 이 미술관, 그의 전시에서 가장 많은 모순과 그에 따르는 불편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박제된 동물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혐오의 감정이 올라왔고, 혹시 이런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회장에 방문한 사실 자체가 누군가에겐 혐오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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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도 공통으로 지키는 선이 존재한다면, 그 선을 이미 넘어버린 작가 마우리치오는 자기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대부분의 아티스트와는 다른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하고, 껴버린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속해있는 공간과 소속된 분야에 온전히 담겨있지 않고 살짝 팔만 걸친 채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그런 상태로 포기하고 걸쳐져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다수에 속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느껴져 서글프면서 오히려 이 작가는 자신의 선 넘은 길을 좋아해 달려가는 듯싶다.

 

그렇게 인정하고 앞으로 갈 수 있기까지 그 과정에서 무기력해지기도 했던 마우리치오의 감정들이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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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 작품을 한참 바라보았다. 제대로 유심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 저 과거의 영광을 나타내듯 빛바랜 별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했다. 작품 설명 오디오를 들으면서야 미국 국기에 새겨진 총알 자국임을 깨달았다.

 

미국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총기 난사 사건들은 셀 수 없이 많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미국을 빛바래게 만드는 총기 사용에 대한 비판을 너무나 간단한 표현으로 강렬하게 나타낸 것에 충격을 받고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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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반대 편엔 머리로 서 있는 두 명의 쌍둥이처럼 보이는 경찰이 있었다. 미국의 아픈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표현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노련한 가치를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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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품보다 어둡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숨 쉬고 있는 화강암 기념비에는 다름이 아닌 잉글 랜드 축구 국가대표가 패배한 경기가 새겨져 있다. 미국 워싱턴 소재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닮았다. 축구 경기의 패배를 전쟁의 비극과 비교한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한 나라를 대표해 승리만을 향해 돌진하는 냉혹한 경쟁과 국가적 정체성으로 단결된 모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이 직품을 보면 축구를 좋아하는 팬이든, 전쟁에 관련한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이든, 제 3자도 모두 조금이라도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예의보다 도발처럼 다가오는 이 작품이 전시 통틀어 마우리치오 카텔란만의 특징이 가장 극대화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전 용사 기념비와 축구 경기의 패배를 연결 지은 그의 아이디어를 실행한 결과물이 하늘에 매달린 말이나 냉장고 속 들어가 있는 여인보다 인상 깊다.

 

 


불편한 불쾌함


 

모두가 불편한 불쾌함을 느끼지만, 미술관에서 그 감정을 곧바로 직면하기란 더 어렵다. 오히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불쾌함이 나에게 묻어있다. 전시회를 갔다 온 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나는 예술 작품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불쾌함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세계엔 우리 현실이 꾸겨져 있다.

 

비꼬아진 현실을 마주하는 공간에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의 태도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올바른 것일까?

 

섬뜩하기도 하고 표현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당당히 작품으로써 표현해나가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생각해보면, 가만히 작품을 바라보면서 예술을 논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 관람객 또한 자신처럼 발칙한 상상을 하고 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벽에 붙여진 바나나로만 알고 있던 마우리치오 카텔란에 대해 조금은 더 알아갈 수 있던 전시회로, 불편한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예술을 처음 접하면서 나의 예술 세계관을 조금은 더 넓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과감하게, 때로는 도발적으로 행동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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