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화 부흥기 조선 미술의 두 가지 맛 - 조선 미술관

글 입력 2023.03.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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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의 평화로운 얼굴을 회복하기


 

책 <조선 미술관>은 조선화가 걸린 미술관을 가볍게 산책하려는 이들에게 적절한 책이다.

 

한국인이면서 한국 미술에 무지하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게 하였다. 솔직히 한국의 미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서양을 중심으로 창작되고 소비되는 문화예술계의 영향으로 만날 환경적 요건이 부족했다는 것만은 아니다. 90년대에 태어난 소비자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한국의 미를 아무런 비판 없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의 미를 강조하는 문화는 일종의 국가주의의 공모처럼 느껴 지기기도 했고, 서양예술에 대한 지나친 숭배의 반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 미술의 순수한 향유 문제'를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 요건을 덜어내고 바라보면 좀 더 뚜렷해진다. 인간은 제 생각을 태어난 땅에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고, 그러한 맥락에서 태어난 모든 사유의 결과물들은 조금씩 어떤 진실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이 한국에서 한국의 작품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요건들을 덜어내고,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시대정신과 문화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의무는 아니지만, 이 땅에 흐르는 우리 정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 뿌리는 우리 전부, 심지어 일부조차 닮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 땅에 흘렀던 생생한 피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책 <조선 미술관>은 적절한 시작이 될 수 있다. <조선 미술관>은 한국학 대학원에서 박사를 하고 간송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한 적 있는 저자가 가볍게 풀어쓴 책이다. 저자는 한국 미술의 코드를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고, 책을 읽다 보면 그만치의 애정이 잘 녹아들어 있다. 책이 겨냥한 독자는 조선 미술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책은 대중교양서라는 목적에 맞게, 조선 미술의 기법이나 흐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림에서 드러나는 생활상을 독자들에게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책은 17~18세기 문화 절정기에 그려진 풍속화와 기록화를 다루고 있다. 조선 17~18세기는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대로 이 시대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시기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흥도와 신윤복의 작품들이 이때 제작되었다. 책은 들어가는 글에서 이 시기의 작품들을 다룬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기울어져 가는 시대로 인해 남아있는 기록들의 쇠한 기운들이 진짜 우리 한국인의 정신을 담고 있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적 아픔으로 남아있는 비참한 얼굴이 아니라 편안한 시대의 얼굴들을 회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고, 독자들에게 전하는 가치다. 책은 평민과 귀족들의 평온한 생활상을 그림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전달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이 우리 역사의 어떤 회복의 시도처럼 보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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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풍속화와 기록화, 두 가지 맛


 

그러한 포인트를 잡고, 작품의 구성으로 돌아가 보자. 책은 그 이름처럼 미술관처럼 책의 섹션을 구분하였다. 1관,2관을 들어가기 전에는 도슨트처럼 각 관의 기획의도도 저자가 직접 설명해준다. 1관은 풍속도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작품의 주인공이 양반이냐, 여인들이나, 평민들이냐에 따라 세 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다.

 

2관에서는 기록화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숙종과 영조 임금은 기로소(70세 이상, 정2품 이상의 직책을 가진 노년의 문관을 우대하던 기관)에 들어가는 경사가 일어났었는데, 이때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간 사건을 그린 기사첩들이 2관의 주 콘텐츠가 된다. 그래서 2관은 숙종 때 제작된 기사첩, 2전시실에는 영조 때 제작된 기로첩으로 구성하였다. 마지막으로 궁궐 밖의 경로잔치를 다룬다.

 

독자 입장에서는 1관과 2관이 다르게 읽힌다. 우선 1관은 좀 더 재밌게 읽힌다. 조선의 평화로운 시기라는 말에 맞게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은 인물들의 생활을 잡아내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서로 질투하고, 먹고살기 위해 어려운 일을 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해 짝 있는 생물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조선의 풍속화는 2관에서 표현될 기록화에 비하여 대체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연출을 사용한다. 어떤 형식이 있다기보다는 화가의 철학과 기법과 메시지가 자유롭게 표현되는 편이다. 저자는 그림에서 재현되는 인간사의 미묘한 부분을 부분부분 잘라서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1관은 그래서 아주 즐겁게 읽힌다.

 

그에 비하면 2관은 좀 더 학술적인 초점이 맞춰진다. 2관의 주요 컨셉 중 하나는 숙종과 영조의 기로첩간 문화적, 시대적 변화다. 각 개인의 표정과 행동으로 자유롭게 연출했던 풍속화와 달리 프로젝트의 구성안처럼 인물이 축소되고 제례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도 각 인물의 포지션과 의복에 초점을 맞추고 기로소의 진행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두 왕의 기로소 잔치, 나아가 궁궐 밖 노인잔치를 비교하는 것도 이 책의 숨은 재미다.

 

하지만 2관은 좀 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기록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쉽게 읽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각 신하의 품계나 단어들은 이 책이 지정한 독자들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 책은 기로소라는 단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독자 입장에서는 문맥을 통해 유추하거나 따로 찾아봐야 한다. 책은 충실하고 최대한 쉬운 언어로 이에 대해 표현하려고 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1관과 너무 다른 경험에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었다.

 

2관의 다른 읽기 경험과 더해 좀 더 아쉬운 부분을 표현하자면, 책의 그림 배치가 다소 불친절하다는 것도 놓칠 수 없다. 책은 깨지지 않고 해상도도 적절한 그림 이미지를 삽입하고, 이해를 위해 부분부분 잘라서 넣어서 읽기의 가독성을 높였다. 하지만 처음 그림이 제시되는 부분에서 두 페이지 가득 채운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중간책이 접히는 부분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이런 부분이 잘 읽다가도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쉬웠다.

 

 

 

3. 나가며


 

<조선 미술관>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좋은 책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의 방향은 가난하고 힘겨운 조상의 얼굴을 회복하는 데 맞춰져 있다. 책이 생각한 독자들은 2관에서 다소 당혹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천천히 저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읽기 경험을 준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고, 두 가지 읽기 경험을 동시에 준다는 점에 있다. 저자가 어떤 것을 의도하였건, 나에게는 꽤 즐거운 산책이었고, 각 전시실의 경험은 다양한 맛을 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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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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