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후회 없는 삶이란 없다 [영화]

그러니 다정해지자.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글 입력 2023.03.1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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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후회의 반복



누군가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말대로다. 내 인생은 잦은 회한과 미련으로 점철되어가는 중이다. 당시에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결정이 나중에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숱하게 지켜봐 오며,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 한탄하면서 새벽에 이불을 걷어찬 적이 수십, 수백 번은 되던가. 그리고 이것은 아마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아니 현재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경험했을 것이고, 하고 있을 것이고, 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삶이 후회투성이라면. 인생에서 주어졌던 모든 선택의 결과가 이것밖에 안 된다면. 그럼, 지금 좀 많이 보잘것없는데? 진짜 이것밖에 안 되나? 남들과 똑같이 살아온 인생에 이루어낸 게 고작 이거라고? 주변 지인들은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이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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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던 내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를 보게 된 건, 다행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관심 있는 영화도 아니었다.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갔다. 단지 공강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기 싫은 마음에, 새벽 3시에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어느새 3월 중반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과 함께 타인과 비교할 수밖에 없어지는 이 시기를 견뎌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뜬금없고 허무맹랑한 생각도 떠오르는 순간이다.

 

 

 

정신 사납고 난해하지만 명확한



각설하고,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자. 영화의 주인공 ‘에블린’은 미국 이민자이다.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 딸 ‘조이’와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부양하며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해나간다. 평범하고 무의미하며, 숨 막히는 나날의 연속이다. 세무 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웨이먼드의 이혼 요구와 조이와의 마찰로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 ‘조부 투바키’와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줄거리만 봐도 대략적인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다. 멀티버스야 그간 마블 영화를 봤다면 한 번쯤은 접했을 소재라 넘어간다 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야 수많은 우주 속 자신과 정신과 능력을 공유할 수 있는 ‘버스 점프’부터 소시지 손이 된 미래의 인류, 영화 ‘라따뚜이’의 오마주 등등, 러닝타임 내내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연출과 오마주를 이용해, 터무니없이 관객을 웃게 만드는 신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신선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다소 B급 영화 같은 요소들.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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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분은 이 영화에 매력을 가일층 부각한다. 전반적으로 코믹하게 이끌어가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게 하는 것. 보통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는 영화 중, 판타지적 소재와 보는 사람에 따라 실없고 저질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코미디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스스로 허무의 블랙홀인 ‘에브리씽 베이글’ 속으로 들어가려는 조이를 구할 때의 가족의 협력과 에블린의 “I am your mother!”는 관중들로부터 웃음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눈물을 자아낸다. 이러한 요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다.

 

 

 

후회는 늘 존재한다, 그러나



에블린은 멀티버스 속 또 다른 자신들과 마주하면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한다. 유명 액션 배우, 요리사, 경극 가수 등등. 뭐가 되었건 지금의 자신과 다르게 찬란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자기 모습들.


그러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안정되어 보이는 모습들도 저마다의 후회와 불안은 존재한다. 더 많은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실수 없이 무대를 완성해야 한다는 긴장과 압박. 아무리 최상의 선택지라 해도 그에 따른 리스크와 선택에 대한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은 여타 다른 선택지들과 다를 바 없다. 저마다의 후회를 할 것이고, 어떤 에블린은 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을 것이다. 주인공 에블린이 다른 에블린을 부러워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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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또다시 내게 상처를 준대도 이 말은 하고 싶어.

다른 생에선…

당신과 함께 빨래방도 하고 세금도 내며 살고 싶어.

 

- 사업가 웨이먼드

 


선택함으로써 좌절하고, 후회하고 우울해한다고 해도 인생은 끝난 것은 아니다. 인생은 마치 우주와 같아서, 궤도를 이탈했다고 해서 파괴되지 않는다. 처음 다른 가능성의 자신을 봤을 때의 에블린은 ‘어떻게 하면 되돌아가지?’라고 생각하며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지만, 결말에 다다라서는 현재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결단을 한다. 모든 후회와 결과를 끌어안고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지금의 상황을 다시 만회할 최선의 선택.

 

 


다정함은 최고의 무기



바로 다정해지는 것. 앞서 말했듯이, 에에올은 수많은 코미디와 오마주 장면 속에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다정함’.


이는 웨이먼드의 대사로부터 처음 드러난다. 평소 에블린의 시각에서 웨이먼드는 늘 멍청하고 한심한 사람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저렇게 무지하고 순진해서야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곁에 에블린이 있었기에 삶을 버텨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는 자신과 멀티버스 속 또 다른 자신을 통해 본인의 신념과 함께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달한다. 영화의 주제이자 삶의 태도를 관통하는 전언.

 

 

내가 나약하다 생각하지?

옛날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아버님은 내가 순진해 빠졌다고 하셨어.

그 말씀이 맞았는지도 몰라.

당신이 그랬지. 세상은 잔인하고 우린 쳇바퀴 돌리듯 살뿐이라고.

나도 알아. 당신만큼 이 세상에 오래 살았으니까.

내가 늘 세상을 밝게만 보는 건 순진해서가 아니야.

전략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았어.

 

- 사업가 웨이먼드

 


웨이먼드는 누군가에 의해 살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또 치밀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바로 ‘다정함’이라는 무기를 통해. 얼핏 보기에는 보잘것없고 사소한 순간들에도 마음을 다하는 그런 마음.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 웨이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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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을 에블린의 싸움 방식을 통해 시사한다. 작품 중반까지 신체적 우월감으로 갈등과 위험을 처리하려고 했다면, ‘다정함’이라는 소재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그녀도 이를 받아들이며 싸우지 않고 사랑의 방식으로 위기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 아내가 생전 즐겨 썼던 향수를 뿌려준다던가, 불편한 신체를 고쳐준다던가, 동료의 파트너를 구하러 간다던가. 경쟁과 파괴를 택하는 대신, 애정으로 자신과 타인의 세상을 치유해나간다.

 

 

어쩌면 네 말대로 그 뭔가가 있을지 모르지.

우릴 하찮은 쓰레기로 느끼게 해 줄 새로운 뭔가가.

네가 그 모든 소음을 뚫고 날 찾아다닌 이유를 설명해줄 무언가가.

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너랑 여기 있고 싶어.

 

- 에블린

 

 

무엇보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조이’와의 대화에서도 낯간지러울 수도 있지만, 이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고 따뜻한 말로 그녀를 허무주의 늪에서부터 구해낸다. ‘다정함’을 무기로 모든 상황을 해결한 것이다. 함부로 친절을 보였다가는 뒤통수 맞는다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다정과 사랑은, 모순되게도 우리의 삶을 후회의 낭떠러지로 떠밀리지 않는, 조금이나마 찬란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감정인 것이다.

 

세상의 평화를 찾은 이후에도 에블린은 계속해서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자책하고 한탄하겠지.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제 다정함이 있다. 사랑을 통해 세상과 가족을 구했고, 그 힘을 똑똑히 지켜본 에블린은 앞으로 수많은 좌절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헤쳐 나갈 것이다. 곁에는 애정으로 뭉친 소중한 가족과 지인들이 있으므로. 그것이 다정함의 무서운 힘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사는 게 각박한 세상이다. 값비싼 쳇바퀴를 굴리는 것을 강요받고, 또 대부분 그렇게 하기를 꿈꾸고 이를 위해 불필요한 감정을 거세한 채 스스로 채찍질하고 몰아붙이며, 좌절한다. 수많은 좌절 끝에는 모든 게 다 부질없다는 허무주의가 기다리고 있다. 허무주의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감히 전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에블린과 조이에게. 부디 다정하길. 스스로에게도, 다른 모두에게도.

 

다정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무기가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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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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