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이 되어버린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3.0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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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에 수영복, 물안경과 헤어 캡을 쓴 노년의 남성이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젊을 적 ‘이런 행위’를 보여줄 수 없었던 것에 한탄을 하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 플라스틱들을 둥글게 잇는다. 그렇게 완성한 훌라후프를 굴리면서 허리는 바삐 돌아가는데 또 그 와중에 새총으로 탁구공을 날리니, 관객은 그럴 줄 몰랐다는 듯 “어우!” 하며 놀라거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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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영문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흠칫할 만한 행위를 하는 이 사람은 우리나라 전위 예술가 성능경(1944~)이다.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대표 작가로서 ‘Space & Time 조형미술학회(이하 ST)’의 일원이었다. 지금껏 퍼포먼스를 놓지 않고 몸으로 충실히 예술을 행한다. 앞서 기묘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2월 22일 종로구 백아트 갤러리에서 벌인 이벤트였다.

 

작년에 전공 수업으로 한국의 1세대 실험미술 단체와 작가를 배웠다. 가령 ‘ST’,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단체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전위적이고 괴짜 같은 행보를 보였다. 기존 체제를 전복하고 반복해서 지워내려는 이들의 태도가 ‘예술가답다’라는 생각을 왠지 모르게 했던 듯싶다.

 

그 가운데 성능경의 대표 퍼포먼스로 <신문읽기>를 꼽는다. 70년대에 전시장에서 신문을 읽은 후, 오려낸 부분은 푸른 아크릴 통에 넣고, 군데군데 구멍 난 신문지는 벽에 붙인다.

 

다음날이 되면 신문을 폐기하고 다시 반복하는 이 행위는 당시 유신체제의 언론 검열을 은유하면서도, 소장할 수 없는 개념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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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가 어지럽게 지나간 전시장은 이러했다.

 

쨍한 원색의 우산, 캐리어, 덧신, 훌라후프, 헤어 캡이 발광하듯 갤러리 입구에서 방문자들을 반긴다. 그가 갤러리 입구에서 사용한 물건들이 그 자리에 놓여있어, 당시 그곳에 없었거나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이질감이 들기도 할 것이다.

 

뭉친 은박지와 작가의 행위를 담은 초창기 사진 작업(<끽연>, <수축과 팽창> 등)을 지나면, ST회원으로 작가와 활동을 같이 한 윤진섭 미술평론가의 글이 구김이 진 커다란 갈색 종이에 적혀있다.

 

‘아뿔사’의 ‘사’에 X를 표시하고 ‘싸’라고 수기로 적은 것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하얀 공간에서의 긴장감이 탁 풀렸다. 성능경이라는 작가, 그의 작업을 온전히 마주할 마음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방의 한편에는 빈 ‘백두산’ 페트병이 쌓여있고, 그가 퍼포먼스 할 때 사용하던 낡은 부채, 탁구공들과 망치가 벽에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사방에 수십 년 전의 흑백사진들, 맨몸으로 목욕탕에서 수영하는 작가의 모습이 찍힌 영상, 대변 닦은 휴지를 촬영해 앱으로 색을 칠한 연작 등이 은박지 뭉치들과 함께 자리한다.

 

예술을 떼고 보면 입장 곤란할 것 같은 행위들로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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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그를 감히 ‘꼴통’이라 불렀다. 미적인 것으로 한 겹 덮었음에도 예술이 예술이 아니며, 반복하는 행위 안에 인간의 본 모습을 발견하길 바라는 것 같다.

 

퍼포먼스는 일시적이고 허무한 특성이 있어 그 자체로 예술을 부정한다. ‘예술은 비싼 싸구려, 예술은 소통의 불통, 예술은 푸지게 퍼져있다’를 외친 것처럼,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반증하는 성능경에게 더없이 꼭 맞는 표현 수단이었을 것이다.

 

팔순을 앞둔 성능경에게 예술 행각은 무얼 의미할까. 여태 5번의 개인전이 전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올해 예정된 전시들에 대해 작가 자신도 신기해하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괜히, 작가를 알아보지 못한 갤러리와 미술관을 탓하고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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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성능경의 퍼포먼스를 목격했고, 또 국립현대미술관을 가던 길에 백아트 갤러리 입간판을 발견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옆길로 새서, 공간에 당도했을 땐 당혹스러움이 먼저였지만 그곳에서 벗어날 땐 아, 재밌었다 하는 기분을 안은 채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성능경이 벌인 모든 행각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이 되어버려 직접 그 현장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졌다.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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