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 함께 춤추기 [운동]

발레를 시작하고 생긴 변화
글 입력 2023.03.0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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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보세요.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습관적으로 취하는 포즈가 있다. 배에 힘을 주고, 팔뚝을 다른 손으로 감싸거나 손으로 뺨을 가린다. ‘이 순간의 나’를 남기려고 사진을 찍지만, 필사적으로 ‘나’를 가린다. 그렇게 ‘나’이지만 ‘나’ 같지는 않은 사진을 건지려고 한다. 나는 누구를 남기려고 하는 걸까?


거울 앞에 서면 습관적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숨을 내뱉듯이 자연스럽게 툭, 입 밖으로 한 마디가 나온다. “아, 살 빼야 하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체육이었다. 체육 시간만 되면 비척비척 일어나 교복 셔츠 위에 체육복을 입고 체육관 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체력 측정을 위해 50미터 달리기를 하는 날에는 항상 긴장했다. 뛰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뛰었다.

 

속도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느려졌다. 항상 여기저기 부딪치고, 넘어지고, 오른쪽 왼쪽도 가끔 헷갈리는 나는 동작을 따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몸을 잘 움직이지 않으니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요령을 몰랐고, 내 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잘 모르니 움직이지 않았다. 못하니까 하기 싫었고, 하기 싫어서 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 운동이 어려웠고 체력이 좋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춤추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춤은 질색하는 것이 되었다. 즐거움보다 잘함과 못함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춤은 우스워짐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 몸과 함께하는 모든 일이 싫었다. 내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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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와의 인연은 참 얕았다. 발레 공연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발표회를 위해 배운 짤막한 발레 동작이 내가 할 줄 아는 발레의 전부였다. 내가 발레에 대해 아는 건 토슈즈와 튀튀, 그리고 드가의 그림뿐이었다. 단지 발레용품이 띠는 복숭아색이 좋았다.

 

발레복에 관심이 생겨 영상을 찾아보다가, 발레 무용수들의 연습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유연하고 생각보다 더 강했다. 마른 몸이 주는 연약한 느낌은 편견이었다. 실제로 발레 무용수의 몸은 마른 근육으로 덮여있다. 한쪽 발끝으로 땅을 디디고 몸을 세워서 오랜 시간을 버티는 모습. 어느 순간 나에게 강함은 유연함이 되어있었다.

 

쉽게 지치고 아프던 나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강하다는 게 부러지지 않는다는 거라면, 유연함이야말로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발레가 하고 싶었다. 견디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 허공을 향해 날아오를 듯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견디는 그 힘을 배우고 싶었다.

 

 


내 몸 마주하기



발레를 시작하자마자 마주한 난관은 의외로 복장이었다. 내가 그토록 탐을 낸 복숭앗빛을 띤 발레복장. 발레복을 착용하는 게 필수는 아니지만 효과적인 운동을 위해서는 입는 편이 좋았다. 딱 붙는 레오타드를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마주하는 일은 부끄러웠다. 펑퍼짐한 옷으로 가리기에 급급했던 도톰한 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발레 수업 전, 나는 발레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수강생들이 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문득, 새삼스럽게 나는 세상에는 다양한 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몸이 있었다. 당연한 건데 그 사실이 낯설었다.


우리는 체형에 대해 상당히 경직된 시선을 가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자란 나에게 내 몸은 항상 사회 속 바람직한 ‘미’의 기준에 맞지 않는, 다시 말해 항상 ‘A가 아닌’ 몸이었다. 세상에는 ㄱ, ㄴ, ㄷ 부터 ㅎ 그 이상의 다양한 몸이 있지만, 우리는 항상 'A'와 'A가 아닌' 몸으로 사람들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몸은, 역사와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소이다. 몸의 굴곡도 몸에 생긴 흉터도 자국도 점도 그 모든 것들은 ‘나’의 특징이자, 내가 살아가면서 생긴 것들이다. 나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내 궤적을 부정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긍정하지 못했다.


발레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다양한 몸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 있는 내 몸이 그저 자연스럽게 보였다. 나는 그저 나고 이건 내 몸일 뿐이었다. A도 A-도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이었다.

 

 

 

단단해지는 일



발레는 생각보다 더 견디고, 견디고 견디는 일이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갓 태어난 동물처럼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동작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동작의 순서를 외우기 힘들었다. 발레 용어는 낯설었다. 발레는 유연성과 근력이 모두 필요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즐거웠다.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는 것마저 달가웠다. 흠뻑 땀을 흘리고 나니 내가 이만큼 열심히 했구나 싶어 뿌듯했다. 처음엔 나의 미숙함을 견디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그마저도 마치 발레처럼 느껴졌다. 포기하려는 마음에, 안 될 거라는 편견에, 시선에, 관성에 저항하고 중력에 맞서서 나를 높이 세우고, 높이 뛰기 위해 잠시 굽혔다가 다시 뛸 준비를 하는 그런 발레. 나에게 견디는 일이란 항상 괴롭기만 한 일이었는데 발레에서 참는 일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일 같았다. 


나는 또 어떤 내가 될 수 있을까.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나를 똑바로 마주해본다. 하나, 둘, 셋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펴본다. 발꿈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다. 내 몸이 한껏 위로 높아졌다 낮아진다. 근육이 수축했다가 이완하는 걸 느낀다. 나는 얼마나 더 유연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 속 발레복을 입고 있는 내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는 나와 춤을 춘다.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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