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애의 마음', 경애하는 마음의 위로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3.08 10: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경애의 마음, 김금희 장편 소설 



소설은 여러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고 있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반도미싱'과 파업투쟁, 베트남 공장의 노동 문제, 인터넷 SNS 익명성과 소통의 문제,등의 폭넓은 이야기를 화두에 올린다.

 

이렇게 본다면 <경애의 마음>은 후일담 소설의 일종이기도 볼 수 있겠다. 다만 단순한 회고 형식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모든 이야기는 현재적인 관점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데, 어쩌면 앞서 나열했던 모든 사건들이 여전히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문제가 현대 사회에까지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며 읽어 갈 때 더욱 촘촘히 읽히는 소설이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점을 살리고자 '공간'에 주목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우선 ‘인천’이라는 지역을 특정하며 장소성을 부여한 것이 가장 특징적이다. 공간성이라는 개념은 곧 주체와 공간이 한데 모여 관계하며 힘을 가지게 된다. 인천으로 형성되는 장소성은 경애와 상수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그들이 그곳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flame-gef7d62db7_640.jpg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에 대하여


 

<경애의 마음> 1999년 10월 30일에 50여 명의 사망자와 70여 명의 부상자가 난 '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를 겪은 두 남녀 ‘경애’와 ‘상수’의 이야기이다. 인천 호프집 화재,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린 청춘들의 순수한 삶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폭력적인 어른들의 세계에 어린아이들이 피를 보게 되는 사건, 누구나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의 문제는 다시 한번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희생자들의 문제들을 고발하고 있다. 화재 당시에는 모두가 분노했으나 사람들은 곧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갔다. 읽는 내내 생각할 지점이 정말 많아지는 부분이었다. 큰 사고를 겪고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상처 극복 서사를 통해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나날이 견디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떠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것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경애하는 마음’의 일면이기도 하다.

 

 

startup-g63d03fc39_640.jpg

 

 

 

노동 윤리에 대하여



상수는 완전히 무능력한 아웃사이더이다. 노조 파업 내 성추행에 들고 일어서다 회사와 노조 양쪽에게 비난을 받게 되고, 좌천에 또 좌천을 거치게 된다. 사연 있는 사람들이 모인 베트남의 상수 팀은 또 그곳에서도 여전히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고 만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한 노동 윤리란 무엇일까?

 

상수와 경애가 끝내 지키려 하는 노동의 가치는 '상품은 팔되 인격은 팔지 않는다'는 선언과 맞닿아 있다. 그저 비겁하지 않게 다만 온 마음을 다하여 일을 할 뿐인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하여 계산적이게 행동하지 않을 뿐이다. 부패로써 인정받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들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런데 그 결과는 왜 처참하기만 할까?

 

이 모든 과정들을 통해 소설은 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그들의 투쟁과 노동자들의 존엄성에 주목하며 그들에게 경애하는 시선과 위로를 보낸다. 모든 상황에서 뚝심 있게 자신의 노동 윤리를 지키는 경애와 상수를 통해 노동자들의 정직함과 선함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낡아 빠진 미싱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이 연약해 보이나 절대로 망가지지 않고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balloons-ge947f338f_640.jpg

 

 

 

익명성의 문제에 대하여


 

 

파업투쟁과 베트남 공장에서의 문제들을 통해 노동과 삶의 관계를 다루며, 상수의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익명에 숨어 활동한다. 생물학적 남성인 상수가 언니가 된다는 것은 소설 내에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하며 상수라는 인물을 매우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언니’가 된 상수라는 점이 매우 폭력적이게 다가올 수도 있다. 요즘처럼 페미니즘 문제가 더욱 예민할 때라면 더욱 심각하게 문제될 사안이기도 하다. 한편 이것이 현실이 아닌 소설에서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이 ‘언니’의 가면을 취한 상수의 행위가 어떤 측면에서는 아주 조금 인정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상수가 언니라는 가면을 취하는 행위는 곧 가부장적 가족관계에 억압받는 상수의 내면의 일부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정체성을 SNS에서나 실현시킬 수 있는 것,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fantasy-gfd19af9b5_640.jpg

 

 

 

그리고 마지막, 마음에 대하여


 

청소년기에 소중한 이를 잃은 인물들은 이제 타인과 무언가를 터놓고 나눈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음을 나눈다는 과정 자체가 경애와 상수에게는 더욱 조심스러워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경애하는 마음,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마지막에는 서로 따뜻함을 교류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상처는 반드시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라는 용기가 가슴속으로 깊이 전달되는 것 같기도 했다. 형체가 없는 마음은 그려낼 수 있을까?책을 읽은 뒤에는 왜인지 꼭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겼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도시가 부쩍 회색빛이 되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다. 사람들은 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이제 더는 상처받지 않는 내 모습이 한편으로 씁쓸해지기도 하였다. 그럴 때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마음’은 무엇인지, 내가 사랑하고 있는 ‘마음’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깊어지고는 했다. 그러다 곧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자며 모든 잡생각들을 덮어 버리며 ‘마음’을 고민하는 일을 회피해 왔다.

 

하지만 소설을 통해 조금이나마 정답을 찾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사랑 앞에 온몸으로 공감해주고 솔직했던 상수의 진심이 사기꾼이라는 이름 아래 매도되고 말 때, 경애가 그것을 이해하고 어루어 만져 줬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류는 비유하자면 마음속에 나무를 심는 것과도 같았다. 누군가의 마음에 나무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소설은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촘촘하게 맺어져 있는지, 그들의 작은 마음들이 타인에게 작은 묘목으로 자리 잡아 또 어떠한 나무를 키워내고 있는지 보여 주며, 우리는 결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 왔던 인연임을 깨닫게 한다.

 

생일 케이크 앞에서, 새해가 시작할 때마다, 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내가 빌고 있는 소원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올해는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나는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상처받아 마땅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온전히 성장하는 판타지는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경애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경애의 마음>을 살아 가는 모든 인물들의 시간은 그저 흐르는 듯하다. 어쩌면 그저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상은 마치 우리들이 묵묵히 버텨 내고 있는 삶의 일부와도 매우 닮아 있다. 그런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단단한 심지는 바로 경애하는 마음을 통해 경애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신채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