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를 건져내는 어떤 손

회색빛 세상으로부터
글 입력 2023.03.0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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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이름처럼 하늘 위로 오로라가 펼쳐지는 풍경을 떠오르게 만드는 노르웨이 출신의 아티스트 오로라(AURORA). 청량하면서도 몽환적인 목소리에 반해 전 앨범을 돌려 듣다 내한 소식을 듣고 바로 티켓을 구했다. 이것이 작년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유별히 에너지가 넘쳤던 연말이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근자감에 휩싸여 있던, 내게 아주 드물고도 신선한 감각을 선사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어쩐지 매년 연초는 잔잔하다 못해 우중충하곤 했고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연에 갈지 말지 오랫동안 고민하다 결국 티켓 배송이 완료 되었다. 기다렸던 아티스트의 공연 방문기치곤 참 맥없고 시시하지만 정말 그랬다. 모든 게 다 지루하고, 어디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눈동자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었다.

 

서울로 향하는 텁텁한 길 위에서 무감한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았다. 회색, 온통 회색. 무뎌지는 건 언제나 가장 쉬웠다. 무딘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나의 꿈이자 목표인데 늘 어느 경계선 상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애먼 곳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스모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것 중 하나였는데 그것마저도 설레지 않는다는 게 나에겐 꽤나 충격이었다. 매번 좌석만을 고집하던 내가 스탠딩 구역에 우뚝 서서 나보다 두 뼘은 더 커보이는 누군가의 뒷통수만 뚫어지게 응시하게 된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게 꽉꽉 막한 도로처럼 매캐하고, 답답하고, 뚫어지지 못할 고성으로 가득 차 있던 내가 풀어진 것은 오로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Come on, and feel alive, lover

Come on, and feel the love like a sinner

Shout it louder 

 

- Blood In The Wine

 


오로라는 개성 있는 음색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음악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연, 초자연적인 힘과 사랑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아티스트다. 음악만 스트리밍하다 무대에서 직접 본 그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남달랐다.

 

자유분방한 몸짓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에너지가 느껴질 수 있는 것인지 너무 신기하면서도 경이로웠다. 파워풀한 동작과 섬세한 보컬이 만나 어딘지 야생적이고 본능적인 인상을 자아내며 내게도 자유로움을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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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cry, drinking your eyes

Do you miss the sadness when it is gone?

And you let the river run wild 

 

- The River

 


음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새로운 시간의 축을 선사하는 것이고, 그렇게 인간은 저마다의 시계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나는 믿는다. 어딘가에 걸려 넘어가지 못해 틱틱 거리던 초침이 다시 달려가는 것 같은 상쾌함이 들었다. 속도와는 관계없이 멈추지 않기만을 바라는 나의 시계.

 

쿵쿵 뛰는 심장 소리와 비트가, 아티스트의 숨소리와 나의 호흡이 일치하는 그 짜릿한 순간마다 묘하게 살아있다는 감각이 피어났다. 그럴 때 새삼스럽게 눈물이 나는 건, 어떤 묵직한 말들이 가득 차올라 내 안의 가장 가벼운 것부터 몸 밖으로 밀어내는 자정 작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안, 두려움, 자책, 초조함과 같이 너무나도 가벼워서 내 안에 고이는 순간 언제나 늘 가장 높은 자리에 머물며 그 아래 가라앉은 무겁고 의미있는 것들을 잊게 만드는 것들.

 

 

I walk alone I'm everything

My ears can hear and my mouth can speak

My spirit talks I know my soul believes 

 

- Running With The Wolves



한참 서 있느라 고된 다리를 움직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생각을 비우는 데 집중했다. 내게 필요한 건 내 안에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밀어내는 것이니까. 가볍고 의미 없는 것부터 하나 둘씩.

 

어떤 사람, 어떤 음악과 어떤 작은 순간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계기가 된다.

 

다시 내게 주어진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오로라의 음악이 말하는 것처럼 눈물을 마시며 밤 중 날아오르는 새가 될 수 있을까, 누가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를 꿈을 내심 가슴에 품으면서.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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