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이 배고파야 하는 이유 [사람]

욕망과 희망 사이
글 입력 2023.02.19 13: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질적 공리주의를 주창한 영국의 저명한 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이 말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1. 포만감?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 사람들은 이 말을 보고 가장 먼저 포만감이 주는 행복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배 부르면 좋잖아? 무엇이든 맛있는 것을 양껏 먹고 배를 두드릴 때의 그 충만함은 이루 말할 데 없을 정도다. 인간의 3대 욕구 중에서도 단연코 식욕이 1순위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먹지 못하는 자, 행복하지 못하다는 명제는 언제나 참이다.

 

돼지는 먹고, 배설하고, 번식하는 행위를 반복하기만 해도 완성된 생을 보낸다. 누가 먹다 남긴 지 모를 음식물, 심지어는 누군가의 변이 섞인 식사일지라도 먹어 삼킬 수만 있으면 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나오는 식사를 얼마나 주든 다 먹어 치우면 된다. 그들은 배부른 순간 돼지 그 자체가 된다. 어찌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돼지의 삶을 살고 싶은가?'

 

우리는 안타깝게도 늘 배부를 수는 없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때에 맞춰 적당량의 식사를 하는 것이 삶을 영위하는 데 효율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식사를 너무 이르게 하거나 늦게 하면 공복 시간이 길어져 일정을 소화할 때 체력적으로 버거울 수 있으며, 식사를 너무 적게 하거나 많이 하게 되면 신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인간은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기 때문에, 때와 양을 적당히 계산한 식사를 해야만 원활히 생활할 수 있다.

 

식사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이란 계획 자체이다. 누군가의 출생도 부모의 계획과 결정이며,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선택도 사회의 계획과 결정 하에 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갈림길들이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한다. 지극히 당연하고도 옳다. 인간은 배고프기 때문에 결정하고 결정으로 인해 나아간 길에서 포만감을 얻을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낸다.

 

삶이란 결국 포만감을 위한 인간의 발버둥이다.

 

 

2. 생각하는 동물.. 무엇을?

 

“넌 나랑 왜 친구해?”

친구에게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친구는 답했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여러분은 어떤 이와 친구하고 싶은가?

 

누군가와 친구를 한다는 것은 곧 타인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의지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옆에 누군가를 두고 나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면, 어떤 이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혹자는 대화가 통하는 정도로 판단하겠다고 할 것이고, 혹자는 서로 간에 배려가 오고 가는 정도로 판단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하면 앞의 그 친구는 진저리를 칠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동반자가 되려면 그가 되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삶이 어떨지 궁금해하고, 그가 어떤 상황에 있든 그의 심정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이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되어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다. 공감할 수 없으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적절한 배려도 할 수 없다. 역지사지가 안 되면 그 어떤 제대로 된 위로도, 응원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나 이외의 또 다른 인간과 함께 할 때 비로소 나로서 충만할 수 있다. 이 말은, 반대로 했을 때 더 와닿는다. 충만하지 않다면, 내가 만나고 있는 그는 내 사람이 아니다. 굳이 충만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와 함께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문득, 나 자신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두 사람을 업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친구가 아닌, 그의 쓰레기통이 된 느낌이 든다면 그 관계는 비정상이다.

 

그건 그의 짐과 그의 무게까지도 다 짊어졌지만 정작 나의 고민과 걱정거리는 털어놓지 못한 채로 매달고 온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짊어짐’이 없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고, 쓰레기처럼 쌓인 짐들을 풀어놓을 수 있다. 누구 하나가 그 짐들을 짊어지지 않고, 그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상적 관계는 가지기 쉽지 않다. 서로가 완성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에게 완벽히 이입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렵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원래 삶이란 수많은 비정상 속에 남아있는 정상을 바라보고 영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서로를 풀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보다 더 먼저 세상을 헤쳐 나간 어른들이 말하듯이. 정상을 바라보고 달리는 인생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동반자를 찾아헤매는 것, 어려울 수 있지만,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계획과 실천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만약 인간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내 삶이 무거워지고 점점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또한 별 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털어낼 수 있길 바란다. 타인에 의해 고통받고, 그로 인해 배우며, 나부터 정상이 된다면 언젠가 좋은 동반자를 만나 길고 긴 인생을 아름답고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얼마간 심적으로 고통 받고 고뇌하며 얻어낸 교훈이며,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꼭 이렇게 '하고픈' 관계의 방식이다.

 


3.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행복한 이유

 

수많은 관계와 업무 속에서 버텨내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이다. 돼지는 안주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나아간다. 혹여 배고플지라도. 걸어가다 마지막을 마주했을지라도, 그 곳에서 만족감을 느꼈다면 그건 성공한 삶이다.



[크기변환]자크 루이 다비드_소크라테스의 죽음.jpg

_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고뇌에 배고프게 살며 얻어낸 교훈은 아직까지도 만인의 명언이다. 그만큼, 무언 가에 열중하고 부딪히며 살아간 인간들의 기록은 후인들에게 전해지는 위대함을 지닌다. 우리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하고 프다’라는 심리가 갖는 힘이다. 또한, 생각하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모든 이들이 지닌 힘이다.

 

 

[크기변환]걷자.jpg

 

 

‘인생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어떠한 일이 10이라면 운이 7이고 재주가 3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맥이 빠질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숨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재주의 비중은 30%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되는 상황에 좌절하는 이들이 많다. 아직 운 때가 오지 않은거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잘 풀리는 시기가 온다. 우리는 그 때까지 각자 본연의 재주를 갈고 닦아 놓으면 된다. 그 과정이 고되고 버티기 힘들지라도, 끝엔 좋은 것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 운이 찾아왔을 때 덥썩 낚아챌 수 있도록 실력을 길러 놓으면 된다.

 

미래를 계획하지 않으면, 하다못해 사색이라도 하지 않으면, 기회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바보가 된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배부른 돼지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배부른 돼지가 아니기에, 욕망을 넘어 희망을 갖기에 사유한다. 사유하기에 행동한다. 머무르지 않고 나아간다. 지구를 스쳐간 많은 지배자들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이 인류 뿐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두 머무르지 말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유자가 되자.

 

 

[유서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