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혼란스러운 날씨에는 더더욱 산을 올라야지 - 연극 '이백십일'

글 입력 2023.02.0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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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근대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소설가로서, 그가 활동한 시기는 전근대적 에도시대에서 근대 시민 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였다. 당시 일본은 서구화된 생활을 적극 받아들여 신분, 혈연, 지연으로 속박되던 개인을 해방하는 중요한 기점에 서 있었다. 일본 정부는 개혁의 일환으로 신분제도인 사농공상의 구별을 폐지하고 평민들에게도 성을 가지게 했다.

 

이러한 개인의 해방을 이끈 것은 고급 관료 양성 기관은 일본 제국대학의 건립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신분제를 폐지하는 대신 신분과 상관없이 제국대학 출신의 학력으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주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사상적으로는 봉건적이고 전통적인 생활과 습관이 폐지되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와 같은 근대사상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소세키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제국대학의 입학은 특권층으로의 진입을 의미하였으며, 소세키 역시 특권 계층으로서, 근대화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근대화가 낙관적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그의 예리한 감수성은 국가 주도적인 정책에 의해 이루어진 표면적인 근대화가 개개인의 가치나 개성이 묵살되어 가는 현상을 포착해냈다. 그는 일본의 주체적이지 못한 일본 근대화를 비판하면서,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을 지켜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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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시대에서 변하지 않는 정신


 

오늘 리뷰할 연극, 연극 '이백십일'은 1906년에 소세키가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 '이백십일'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집이지만, 근대화 시기의 혼란을 겪는 인물상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과 일본 고유의 감수성을 지켜내는 소세키 소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연극은 전반적으로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지만, 작가의 특성과 작품의 메시지를 더 뚜렷하게 전달하기 위해 몇몇 부분을 각색하였다.

 

우선 연극 '이백십일'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작품의 배경은 일본의 잡절기인 '이백십일' 구마모토의 아소산의 한 온천 여관이다. 2개의 방과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하나의 방에는 게이와 로쿠가 묵는다. 게이는 스모선수처럼 움직이고 큰 소리로 웃는다. 그는 두부가게의 아들로, 화족과 부자들을 경멸한다. 두부상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은 그는 이백십일의 나쁜 날씨에도 아소산을 정복하려 한다. 그와 동행하는 로쿠는 종종걸음으로 움직이고 조금 위축되어 보인다. 그는 현실의 이치에 밝은 인물로, 게이와의 우정이 아니었다면 아소산을 오를 일이 없을 인물이다.

 

다른 방에는 도련님이 지낸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동경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다. 그는 고구마와 밤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려다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는 도쿄로 돌아가는 대신 여관에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는 근대화된 시대에서 돈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지만 무언가 나라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이 요양을 핑계로 여관에 눌러앉는다. 그는 주변인에게 돈을 빌리지만, 그가 빌릴 수 있는 돈은 하루치 숙박비인 1엔뿐이다.

 

여관에는 할아버지와 하녀가 산다. 할아버지는 느긋하게 수염을 깎고 여관을 관리한다. 도련님은 가끔 그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걸지만 도통 대답하는 일이 없다. 하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소곳이 남성에게 내조하는 여성이지만, 돈을 내지 못하는 도련님과 이해할 수 없는 제안에 대해 막힘없이 대꾸하는 등 똑 부러진 성격이다. 하녀는 반숙이라는 조리 방식도, 맥주와 아사히를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도시의 상식에 밝지 않지만, 근대에서 지향하는 여성상의 모습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 게이와 로쿠는 아소산에서 죽을뻔한 고생을 하지만 다시 아소산을 오르고, 도련님은 방세를 내지 못해 이들을 시중드는 고용인으로 일한다는 것이 이 연극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내가 읽은 연극의 주제는 '혼란스러운 변화의 시기에서 지켜내는 고유성'이다. 연극은 만담식 대사 구성, 일본 악기의 사용, 스모 선수와 같은 움직임과 같은 연출을 통해 당대 어떤 일본 고유문화를 지켜내는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무분별한 서구화와 근대화에서 일본의 정신을 지켜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근대화 시기 일본이라는 표현을 걷어내면, 시대와는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자아의 힘, 어떤 충동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이러한 메시지는 장군 같은 게이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전근대적인 하녀 역시 스모 같은 걸음을 하는 연출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원작 소설과 비교해보면, 연극이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연극은 게이와 로쿠 캐릭터를 과장하여 표현한다. 원작 소설에서 이들의 성격과 겉모습을 대강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나오긴 하지만, 연극만큼이나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발성, 움직임, 대사 등을 수정하여 게이는 호탕하게, 로쿠는 위축된 것처럼 표현했다. 게이가 시대적 흐름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어떤 고유성, 상승을 위한 불굴의 정신-거친 날씨에도 산을 오르겠다는-을 가진 인물로 표현됨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연극은 '도련님'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연극은 전면에 두 개의 방을 세팅하고 후방에는 아소산과 아소산의 등산을 표현하기 위한 계단을 설치했다. 이 작품에서 도련님의 방은 전면의 반을 차지한다. 그만큼이나 연극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도련님이 등장하지 않는다.

 

도련님은 게이와 로쿠와 정반대 편에 서있는 인물이다. 게이와 로쿠는 반반씩 돈을 내고 똘똘한 하녀에게 돈을 챙겨주지만, 도련님은 항상 돈에 쪼들리다 고용인으로 써달라고 무릎을 꿇는다. 게이는 호탕한 두부가게 아들이지만, 도련님은 병약한 지식인이다. 로쿠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앓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는 데 비해, 도련님은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여관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게이와 로쿠는 산을 오른다는 목적을 위해 여관에 머무르고 다시 떠난다. 도련님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여관에 머무른다.

 

도련님은 게이와 로쿠와 다르게 구속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감기에 걸렸으면서 폐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1엔이라는 자본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미래와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그에게 조언하는 하인의 말에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다. 생각과 자본에 구속되어서 어떤 열정이나 동기도 없이 단순히 요양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도련님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두 청년과 꿋꿋하게 여관을 운영하는 하녀와 대조된다. '제국대학을 나온 병약한 도련님' 캐릭터는 소세키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면서 환상과 가상성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극단의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다.

 

*

 

산을 무작정 오르는 두 청년의 충동과 우정은 오늘날에도 울리는 면이 있다. 산울림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본 덕에, 어떤 뚜렷한 목적없이 산을 오르는 이 둘의 이야기가 고도의 두 청년들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들은 바보같은 만담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어떤 충동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도련님과 같은 현대인의 무기력한 초상보다 더 당당하게 느껴진다.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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