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한동력의 슬픔에 대하여 [도서]

김예진, 『상실이라는 동력』(북다마스, 2023)
글 입력 2023.01.2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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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말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대단한/성공한/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실패한/부족한 사람의 말. 그러니까 나와 같은 사람의 말. 그런 사람의 말은 위로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고, 응원하지 않아도 응원이 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인 당신이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도 우리는 힘을 얻곤 한다.


대단한 사람이 자랑스레 노하우(know-how)를 늘어놓은 자기계발서는 자주 외면하면서, 평범한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노하우(no-how)를 외치는 에세이를 종종 찾게 되는 것은 일종의 자격지심이자 동질감의 확실한 표현이다. 독서는 (나처럼) 그렇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그처럼)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 담백하게 전하는 소통의 한 방식일 테다.


김예진의 산문집, 『상실이라는 동력』(북다마스, 2023)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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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처럼 산문집 제목 『상실이라는 동력』은 “누가 먼저 할까 봐 불안할 정도”(161쪽)로 매력적이지만, 내게 그보다 먼저 매력을 뿜어낸 것은 왠지 친숙한 단어 다마스.

 

덩치에 비해 유난히 작고 앙증맞은 바퀴로 움직이는 네모반듯한 차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그 차에 한가득 책을 싣고 달린다고 했을 때, 바퀴가 멈춘 곳에서 차 그 자체가 책방이 된다고 했을 때, 나의 마음은 꽤나 오래 머물렀다. 책방 북다마스가 정확히 의도한 방식대로 판매에 성공했다고, 도서 결제 완료 안내 메시지를 받고서야 나는 깨닫는다.


조금 웃기게 생긴 네모난 차가 좋은 책을 가득 싣고 여러 도로와 골목 곳곳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움직이는 책방이라는 소박한 판타지가 냉혹한 자본주의와의 영리한 결합을 통해 내게 도달했으니, 이런 책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움직이는 책방 ‘북다마스’의 운영자이자 “카페 아르바이트생, 강사, 기획자”이며, “작가라고 말하기는 어쩐지 아직 쑥스”러워하는 사람 김예진은 스스로 움직일 힘을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다마스를 닮아 네모반듯하고 자그마한 책 속에는 김예진의 삶이 녹아있다.

 

무거워진 다마스를 움직이는 것들을, 김예진의 미세한 동력들을, 그녀는 담담하게 적어둔다. 예컨대 이런 것들.


 
망각의 장점이 있다면, 읽었던 책을 또 읽어도 새로운 부분을 계속 발견하고 같은 문장도 이전과는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 <망각> 중에서

 


망각이라는, 인간의 한계에서 기인한 결과마저도 “영혼의 일”(52쪽)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배짱이 우선은 김예진을 시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 제주에서 “언제까지 더 살 거냐”(110쪽)는 사람들의 우려에도 “그저 점처럼” 혹은 “섬처럼”(같은 쪽) 지내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지그시 엑셀을 밟기도 한다. 때론 ‘바퀴벌레’에 이입하여 한탄을 늘어놓으면서도(“바퀴벌레를 변호할 존재는 하나도 없이, 바퀴벌레들은 꿋꿋이도 살아가고 있다”(97쪽)), 결코 브레이크를 밟아 급정거하지 않는다.


김예진의 책을 한 차례 읽은 후 그녀를 움직이는 힘에 대해 조금 궁금해졌고, 다시 한 번 읽은 후에 비로소 어설프게 생각해본다. 그녀의 첫걸음이 빚진 에너지가 ‘상실’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이미 무엇을 잃”어버리고 “정말이지 잃을 게 없”(119쪽)었기에 그녀는 움직일 수 있었으며, 그 상실은 아직까지 상실된 채로 남아 여전한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 이러한 고백은 비참하지 않을 정도로만 슬픈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상실의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그녀는 이제 탄성도(“기분이 영 안 좋다가도 모든 게 내가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렇다면 내가 그만두면 될 일인데, 싶어서 또 괜찮아진다”(41쪽)), 관성도(“내가 무엇도 안 하고 나태해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 상태인 거면”(169쪽)),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삶과 글은 담백하게 말한다. 살아가면서 슬프고 절망적인 상실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고, 때론 잃은 것을 되찾거나 혹은 결코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영원한 그것의 힘으로 언제나 움직여볼 수는 있다는 것.

 

다마스를 운전하는 김예진은 슬픈 무한동력형 인간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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