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제의 미래, 현재를 되새기며. 마리아 스바르보바 展

글 입력 2023.01.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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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시를 보러 다닐 때 회화 작품을 보러 다니긴 해도 사진 작품을 보러 다닌 건 확연히 빈도수가 적다. 왜 회화보다 사진을 덜 찾는 걸까. 스스로 생각해보면 내가 사진을 잘 찍지 못하고, 그래서 사진은 어렵다는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항상 누군가의 사진을 찍어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원하는 구도를 잡아놓고 카메라를 나에게 넘기기를 부탁하곤 한다.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사람을 최대한 길어보이게 찍는 법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진에 자신이 없어서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나에게도, 간만에 정말 가보고 싶은 사진전이 생겼다. 바로 마리아 스바르보바 전이었다. 자연스러운 사진이라기보다는 연출된 사진 작품들이지만,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보이는 색감이 너무나 감각적이게 느껴졌다.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작업을 주로 해왔는지를 알기도 전부터 그가 선보인 색감에 매료되어 그냥 무작정 전시를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 전시 소개 >


마리아 스바르보바 작품의 특징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신구(新舊)의 적절한 결합을 통한 놀라운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스바르보바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능력으로 관람자로 하여금 그녀의 작품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신구(新舊)의 상호작용은 전시 타이틀인 '어제의 미래(FUTURO RETRO)'를 짓는 참고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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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섹션, Nostalgia에서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향수를 담아낸다. 현대의 공간에서, 과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복장이나 소품들을 활용하여 사진을 연출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녹아난 색감은 더더욱 레트로 감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굉장히 역설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인물들을 철저하게 피사체로만 활용하면서 피사체에게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도록 무표정하게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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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된 표정은 무표정하고, 연출된 행동들은 대개 직선적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자세보다 훨씬 곧게 뻗어있다. 그 누구도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서거나 앉지 않는다는 걸, 보는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바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경직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무의식 중에 공산주의적인 질서가 연상되고 만다. 통제되는 사회상이 무엇인지를, 레트로한 분위기의 소품과 감정이 배제된 채로 마치 부품마냥 프레임에 포착된 사람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수술> 작품은 여기서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의도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묘한 익살스러움이 있었다. 모든 것이 각이 잡혀 있고 직선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각이 맞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책상의 세 번째 서랍이다. 다른 서랍들은 모두 네모 반듯하게 잘 닫혀 있는데 이 서랍만 삐딱하게 닫히다 말았다. 의도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대목인데, 아마 명백하게 의도된 장면일 것이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 속 그 어느 한 구석도 연출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느낌이 지배적이게 들기 때문에 이 역시도 그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이 비뚤어진 책상 서랍이 마치 이스터에그처럼,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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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한 작품 속에서도 너무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사진의 왼쪽에 위치한 남자는 분명, 사진마냥 선명하게 잘 찍힌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중반부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묘하게 그림 같아진 커튼의 옆으로, 간이침대 위에 걸터 앉은 여자 한 명이 보인다. 그런데 이 여자는 사진이 아니라 정말 그림처럼 보인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명한 남자와 달리 뿌옇게 표현된 여자의 모습은 다소 섬뜩하기까지 하다.


경직된 이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드라마가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만일 이 다음 장면이 있다면, 남자는 아마도 앉아있는 여자가 마치 없는 사람인양 지나쳐 버릴 것이고 그런 남자를 여자는 응시하지 않을까?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어떤 의도로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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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색감이 강조되는 미용실 속의 모녀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강렬한 빨간색-파란색의 대비가 이루어진 미용실 의자들 사이에서, 엄마는 흰색 옷과 가방, 스타킹과 신발로 마치 배경에 녹아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에 아이는 양말과 신발은 엄마처럼 흰색을 사용했을 지언정, 옷과 스카프는 미용실 의자처럼 빨간색과 파란색을 활용했다. 확연한 대비감 사이에서 인물들까지도 구별되면서 복고풍을 느끼는 동시에 이게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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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는 데에, 색감이 있는 커튼이 달려 있었다. 첫 번째 공간에서 의사 시리즈를 볼 때에 병원 장면에서 계속 커튼이 활용되었다는 것을 이렇게 관람객들에게 상기시키는 듯했다. 또한 이 색감이 주황색인 것도 상당히 의미 깊었다. 바로 다음 공간에서 나오는 정육점 시리즈를 볼 때에 이 주황빛 색감이 다시금 키워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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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시리즈 중에서 정말 긴장감을 높이는 작품은 <갈등>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여자는 정육점의 주인이겠지만 그를 바라보며 바로 옆에 서 있는 남자는 누가 봐도 정육점 주인의 가족이 아니다. 과거의 복식을 입은 채로, 과거의 저울 모양 앞에 서서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를, 좀 더 떨어진 곳에서 다른 남자가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오른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다. 긴장감이 고조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정육점치곤 상품이 별로 없다는 것 역시 두드러진다.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현재 전세계에 만연한 과소비주의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에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정육점의 상품을 이렇게 적게 배치했다고 한다. 이런 의도를 생각한다면, 다시금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모든 것들은 완벽하게 연출된 것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보아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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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어지는 <고객들> 작품은 보는 것이 다소 힘들었다. 이 작품 역시 정육점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작품은 정육점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보다 색감 보정이 강하게 들어갔다. 그래서 인물들의 피부톤이 거의 뒤에 매달린 고기나 햄처럼 보였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마치 사람들까지도 상품이 된 것처럼, 보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고기가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연 <고객들>이라는 제목 속의 고객들이 프레임 안에 있는 두 사람일까 아니면 프레임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일까. 잔혹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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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섹션, Futuro Retro로 넘어가서 소녀들 시리즈를 뒤이어 보면서 뒤숭숭해진 마음을 좀 다스릴 수 있었다. 소녀들 시리즈의 작품들은 이번 전시를 순서대로 보면 그 중 처음으로 외부에서 촬영한 사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색빛 콘크리트 벽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파란 하늘, 그 아래에 서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소녀들의 모습은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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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 시리즈 중에서 <홀로 II>는 어쩐지 자꾸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었다. 큰 벽을 마주하고 섰지만, 그 벽을 넘어서 빛나는 저 너머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듯한 소녀의 뒷모습을 응원하게 되는 사진이었다. 색감의 조화와 구도의 안정감,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까지 너무나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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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누구나 이 작품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향수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벽 너머의 미래를 지향하게 만든다. 어쩜 이렇게 프레임에 담아낼 수 있었을까. 특히 소녀들의 모습으로 이런 뭉클한 장면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사진이 주는 감동이 가슴 깊게 스며들었다. 후에 걸파워 시리즈를 낼 만큼, 그가 여성들을 독려하는 데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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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공간 속에서 경직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탁월하다. 그가 네 살 때 슬로바키아가 체코와 분리되었기 때문에 그 시절 공산주의 국가로서의 경직된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하지는 못할 텐데, 어떻게 그는 이렇게 그 시기를 연상케 하는 작품들을 잘 찍을까? 그 시기의 무엇이 마리아 스바르보바를 자극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공산주의를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국민들 모두가 한순간에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가 어린 시절에 일부 경험한 문화적인 요소들이야 있겠지만 새삼 궁금해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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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번째 섹션인 The Swimming Pool이 나왔다. 물 속에 들어가있는 사람을 찍으면서 물과 사람이 모두 프레임 속에 들어가지만, 수중촬영을 한 듯 물 속을 강조한 작품은 아주 강렬했다. 이 섹션에 들어서고 처음 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이 <초상화>인데 흰색 타일배경과 짙은 푸른색의 물색, 흰 배경과 대응되는 빨간 수모와 모델의 강렬한 눈빛으로 인해 마치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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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옆의 또 다른 <초상화>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게 연출되어 있다. 물 속에 들어간 사람을 찍었다는 점은 이전의 <초상화>와 같다. 그런데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다. 흰 타일 배경과 푸른색의 물빛은 똑같은데, 사람을 물 밖에서 찍은 듯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수면 아래에 원래 어렴풋하게 비칠 몸을 보정으로 아예 지워버리고 수면에는 물 위로 드러나있는 사람의 머리 부분만 비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 속의 사람을 같은 배경에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수중촬영한 장면으로 풀어내고, 다른 하나는 보정까지 더해서 확연히 다른 장면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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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연달아 펼쳐지기 때문에, 이 전시 공간에는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동시에 빛으로 마치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빛의 효과를 주면서 전시관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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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금지가 벽면에 쓰인 수영장에서, 두 명의 소녀가 당장에라도 수영장에 뛰어들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푸른색의 물빛과 흰색의 벽, 빨간색의 글씨와 더불어 빨갛고 노란 소녀들의 수영복과 수모에서 풍부한 색감의 대비가 느껴진다. 그런데 <1, 2, 3>의 묘미는 바로 수면에 있다. 수면에 비친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 이 순간 시간이 마치 멈춰버린 것처럼 색감이 옅어져 거의 회색 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수영장이라는 공간에서도 '다이빙 금지'처럼 금지하는 것들이 있기에 온전히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빛 바랜 수면의 이미지를 통해 환기시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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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수면을 확실히 재미있게 활용할 줄 안다. <여성들>이라는 이 작품을 보면, 수면을 아예 보정을 통해 수면의 느낌을 없애고 사실상 거울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그냥 흰 선을 기준으로 완전히 데칼코마니로 만들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아래에 비친 인영을 보면 가운데에 위치한 파란 머리 수모를 쓴 사람을 기준으로 양 옆을 대각선으로 교차시켜 수면에 반사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효과를 주는 듯하면서도 매번 다르게 풀어가는 재미를 찾을 수 있어서, 왜 스위밍 풀 시리즈가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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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새>였다. 사실 누가 보아도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지만,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마치 날아오를 것처럼 자세를 취한 이 사람의 모습은 새처럼 언제고 비상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의 형상을 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이 인물은 담벼락의 왼쪽 끝에 위치한 나무 같기도 하다. 콘크리트로 가득한 이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도, 사람은 자연을 닮은 존재라는 걸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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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stalgia, Futuro Retro와 The Swimming Pool뿐만 아니라 Couple, Lost in the valley까지 다양한 섹션이 준비되어 있어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유명작부터 최신작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는 전시여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사진전을 많이 안다녀봐서 그런지 이토록 연출된 사진전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모든 것 하나하나가 신기하게 와닿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연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조성된 프레임 속에 묘하게 불편함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불편해서 보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불편함조차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의도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점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았다.


맨 처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강렬한 색감에 이끌려 마리아 스바르보바 전을 보러 가도 좋다. 색감만을 즐겨도 충분히 즐거운 전시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어제의 미래라는, 전시 섹션명 중 하나이자 동시에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 제목에 대해 생각하며 감상하면 더욱 풍부한 전시가 될 것이다. 레트로한 어제의 것들의 미래로서, 우리는 현재에 발을 딛고 서 있는데 그 과거의 것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나게 될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은 지금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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