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관 좀 빌리겠습니다 -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도슨트의 프랑스 미술관 안내서
글 입력 2023.01.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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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다시는 이 나라에 못 올 수도 있다는 마음에 최대한 많은 것을 눈에 담아가려고 하게 된다. 미술관에 갈 때도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미술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고 영어에 능하지 않은 상태로 관람을 가면 당황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점이다.

 

작품들은 충분히 주어졌는데 그중 단 10분의 1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짧은 영어로 작가와 작품명을 읽은 후 작품 설명 속 긴 문장에 숨이 막혀 해석을 포기하게 될 때, 시간이 갈수록 그림이 다 똑같아 보이고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때, 미리 공부하지 않고 온 자신을 원망하게 된다.


미술관을 빌려준다는 거창한 포부를 이야기하는 본 책은 앞선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미술관 일정을 계획하고 있는데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상태라 뭘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이 책 한 권이면 누가 누군지, 그리고 어떤 작품이 주요한 작품인지 감을 잡고 감상 계획까지 거뜬히 세울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 늦은 벼락치기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혹은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들의 전반적인 특징과 작품을 두루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아주 유용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네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안의 많은 작품 중 꼭 봐야 하는 주요한 작품을 소개하며 화가의 삶과 이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 모델 등 이해에 도움이 되는 전반적인 지식을 속성 제공한다.

 

 

 

재미있게 듣는 미술 이야기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어 작품과 배경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본 책은 큰 장점이 있다. 오르세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밀레와 루소’ 이야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두 화가는 바르비종 화파에 속해있으며 두터운 친구 관계였다. 바르비종 화파는 작은 시골 마을인 바르비종에서 사실주의에 따라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던 화가들의 무리를 칭한다.

 

실은 밀레가 바르비종을 찾은 건 극심한 가난 때문이었다. 밀레는 사후에 「만종」과 「이삭 줍는 여인들」로 유명해지지만, 생전에는 내내 가난했기에 테오도르 루소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으려고 시골 마을에 내려온다. 이후 보여지는 밀레와 루소의 우정은 친구의 범위를 넘어서 가족과도 같게 느껴졌다.

 

 

1855년 만국박람회 미술대회에 밀레는 「접목하는 농부」라는 작품을 출품하는데요, 이는 현장에서 3,000프랑에 거래가 되며 밀레 작품의 최고가를 기록합니다. 작품을 매입한 사람은 신원 밝히는 것을 거부한 한 사업가라고만 전해졌습니다. 밀레 입장에서는 자신의 그림에 최고가를 제시해준 컬렉터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지만, 마지막까지 누구에게 작품이 팔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밀레는 동료이자 친구인 테오도르 루소의 집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그의 침실에 걸린 자신의 작품을 목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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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 「접목하는 농부」

 

 

또, 루소는 웅장한 자연과 대비되는 작은 인간을 그리는데 몰두했는데 이러한 루소의 작품들은 밀레뿐 아니라 이후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으로 「라브뢰부아」라는 작품이 있다. 루소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밀레는 고마움에 남은 그의 가족들을 돌본다. 그 후 사랑하는 동료이자 친구였던 루소의 화풍으로 자신의 유작인 「봄」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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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라브뢰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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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봄」


 

우정과 존경과 배려로 찬 둘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아서 두 화가의 작품에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청소년기에 분명 다양한 화파와 흐름을 외웠는데도 생소한 ‘바르비종 화파’를 기억하게 된 것도 이러한 서사 덕분이다. 스토리가 있는 지식은 기억에 잘 남았다.

 

 

 

열린 해석을 통해 취향 발견하기


 

또한, 책 전반적으로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에 전반적인 지식은 얻어가되 자유롭고 열린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게 돕는다.

 

 

수많은 작품을 만나고 책을 덮기 직전, 우리가 작품을 하나씩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한 번 고민해보기 바랍니다. (중략)

 

좋은 작품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정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 나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작품이 진정 좋은 작품이지요.

 

 

책의 서문에서 말하듯, 작가는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한 점이라도 갖게 된다면 진정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말한다. 작품에 대한 호감과 그 이유는 전적으로 감상자의 몫이라는 말. 인기나 전문가의 말에서 벗어나 스스로 취향을 탐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를 따라, 책을 따라가며 마주친 여러 작품 중 가장 좋았던 그림을 생각해 보았다. 필자의 경우에는 마네의 「올랭피아」가 눈에 박혔다. 마네는 짱짱한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고 귀족적 교육을 받아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려야 대중에게 사랑받는지를 정확히 알았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금기시되었던 주제와 기존과 다른 채색법을 이용해 굉장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면서 초창기에는 많은 비판에 부딪힌다. 그러나 항상 선구자들은 큰 저항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마네는 산업혁명 이후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19세기 시대상에 맞춰 미술계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시하였으며, 훗날 인상주의의 시작을 이끌었다 평가받는다.


「올랭피아」는 마네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유독 화제작이었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작품을 패러디한 것인데, 원작은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화풍으로 아름다운 비너스의 모습을 그려냈지만, 마네의 올랭피아는 중간색을 사용하지 않아 원근감을 삭제하여 판판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다. 당시 프랑스인들에게 올랭피아는 매춘부를 의미했다고 한다. 보수적인 미술전에 이런 이름으로 출품하고 다양한 은유와 상징을 통해 작품의 공간에서 불륜이 일어남을 암시하기까지 한다.

 

전형성에 돌을 던지는 첫 흐름에 이 작품이 있었던 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기존의 작품을 아주 자기 맘대로 패러디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도 도발적이고 멋졌다. 기존의 유명세와 화풍에 정공법으로 맞서는 마네의 패기에 감탄했다. 또, 작품 속 올랭피아의 말간 얼굴과 분위기도 좋았다. 내리깐 눈과 미묘하게 각이 진 턱은 만만찮은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했고 더 많은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이끌었다.

 

*

 

이야기를 따라가며 네 개나 되는 미술관을 둘러보고 여러 작품과 작가의 세계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본 책이 수많은 이야기와 함께 작품을 소개한 덕분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화가와 화풍이 생겨 누가 ‘어떤 화가 좋아하냐?’ 물어볼 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취향이 한 겹 깊어진 기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예술을 감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재료가 쌓였다. 이러한 배경지식과 관심을 바탕으로 더 많은 문화예술을 다채롭게 향유할 자신감이 생겼다. 아무래도 미술관을 잘 빌린 것 같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_표1.jpg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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