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안해요 스카팽, 내년에는 웃으러 갈게요. [공연]

다른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
글 입력 2023.01.0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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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은 어렵다


 

나의 연극하는 친구 림은 졸업연극으로 희극을 올릴 거라고 말했다. 림의 희극 선언에 당황스러웠던 건 그녀가 뼛속까지 진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려우니까 해보고 싶다고, 림은 말했다. 연극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감탄하게 하는 것, 그보다 진짜 어려운 것은 웃음을 주는 거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코미디 무대처럼 웃기겠다고 작정을 해서도 안 되고, 연극이라는 형식에서 오는 예술적이고 고상한 느낌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빵빵 웃겨야한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몇 년 전 ‘코미디캠프’ 무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인 안담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다. 그녀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자신이 유명인이면 사람들을 더 쉽게 웃길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나에 대해 다 잘 알고 있다면 제가 옆집 개 얘기를 해도 알아듣고 웃어줄 수 있겠죠.” 하지만 안담은 유명인이 아니었고, 그녀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잠깐 유명인이 되어 보기로 한다.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유명인이 된 안담의 이야기 앞에 비로소 헤프게 웃는다.

 

나의 경우에도 웃음이 헤퍼지는 순간이 있다. 그건 내가 아는 사람에 대해, 혹은 나에 대해 농담할 때. 블로그에 한 주 한 번 웃긴 글을 쓰는 내 친구의 글이 웃길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그가 내 친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보는 그것에 대해, 내가 아는 사람들에 대해, 나에 대해 농담할 때 나는 더 크게, 진심으로 웃을 수 있다.

 

그러니까 희극이란 이토록 어렵다.

 

나는 다짐하며 공연장에 들어갔다. 연극과 웃음이란 참 어려운 조합이니 웃음에 관용을!

 

하지만… 미안해요 스카팽. 나는 웃는 것이 어려웠고, 심지어 조금 졸고 말았다. 부끄러운 사실이다.

 

 

 

몰리에르와 한국의 <스카팽>, 그 위대함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 사진01.jpg

공연 사진: 국립극단 제공

 

 

이제는 스카팽 이야기를 조금 해볼 때이다. 내가 왜 스카팽을 욕하는 대신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이 연극의 알려진 위대함에 대하여.

 

몰리에르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고의 극작가라 평가 받는다. 그는 프랑스 ‘희극’의 시작이었다. 비극만이 예술이라 평가 받았던 17세기에 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풍자와 위트로 연극사를 바꾸고, 사회를 뒤흔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몰리에르의 작품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 게다가 그의 이름을 딴 ‘몰리에르상’은 세계 연극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몰리에르가 쓰고, 만든 <스카팽>, 그 이상의 스카팽이 2019년 국립극단에서 초연된 <스카팽>이었다. 2019 올해의 공연 베스트7에 오르기도 했고, 동아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석 매진 신화를 기록했던 스카팽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왔다.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 사진03.jpg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나는 경탄했다. 온갖 상황들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신기한 소리의 타악기 연주부터, 액자식 구성을 멋지게 표현해내는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도대체 저 많은 대사를, 저 완벽한 몸짓과 호흡을 어떻게 연습을 한 것인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배우들의 분장과 의상도 큰 몫을 했다.

 

방금 살짝 언급했던 액자식 구성은 개인적으로 <스카팽〉의 최고 관전 포인트였다. 몰리에르 역은 극에 수시로 개입하며 배우들과 소통한다. 첫 등장부터 대사를 잊은 배우에게 대사를 알려주는 식이다. 어수선한 상황이면 여지없이 등장해 '연결해~'라고 외치며 극을 이끌기도 한다. 프랑스인에겐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상을 가졌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몰리에르를 알리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몰리에르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데, 배우가 긴 대사를 무사히 쳐내거나 어려운 액션을 해내면 안도하곤 한다. 이동식 무대 위의 사건에서 잠시 눈을 돌려 책상에 앉은 몰리에르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소소한 재미를 가져다준다.

 

 

 

나는 왜 웃을 수 없었나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사진10.jpg

 

 

그렇다, 스카팽은 무대, 음악, 배우, 연출 모두 최고였다. 그렇지만 왜 나는 웃을 수는 없었을까. 연극에서 오간 뼈 있는 농담들이 나를 웃길 수 없었던 것 같다.

 

'땅콩 회항',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검찰 출신 인사의 정관계 진출' 등 사회 이슈를 넣어 현 세태를 꼬집는데 프랑스 희극 속에 담은 한국의 모습이 미묘하게 어울리지 않아 몰입을 깼다. 이해해야 하는 캐릭터들 개개인의 스토리를 쫓아갈 때는 17세기 프랑스에 있다가 특정 키워드가 내 귀에 꽂히면 나는 2022년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유퀴즈~', '깐부',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는 반가운 유행어였지만 마찬가지로 나를 현실로 자꾸만 돌려보냈다.

 

나는 다른 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공연장에 들어간다. 하지만 스카팽을 보면서 수많은 현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사실 진짜 문제는 풍자와 위트 앞에 풀어지지 못한 내 쪽에 있을지 모른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일을 하다 허겁지겁 극장으로 달려온 나, 남은 일에 대한 불안과 이 리뷰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내일 아침 출근에 대한 슬픔이 겹쳐 2시간동안 나를 괴롭혔고, 나는 마음 놓고 웃고 즐기지 못한 채로 2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최근에 읽은 책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통계에 따르면 공연을 보는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일, 1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연극을 보다 조는 것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일, 1위가 아닐까.

 

나는 기대했던 웃상 대신 울상이 되어 명동역으로 걸어갔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출퇴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살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스카팽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그 옛날 프랑스 사람들이 힘든 현실 속에서 희극 공연으로 위로 받고, 즐거웠듯이 2023년의 공연에서는 그럴 수 있기를.

 

이런 감상이라 미안해요 스카팽.

 

내년에 꼭 웃으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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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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