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쌍둥이 J에게

글 입력 2022.12.3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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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J에게 -

 

 

도통 연락 한번 주고받지 않던 내가 네게 전화를 걸었지.

 

아빠가 많이 아프다고.


'잘 지내?' '일은 힘들지 않고?' 따위의 안부를 물을 수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아빠가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담담히 건넸고, 너는 예상한 대로 눈물 대신 한숨을 뱉었어.

 

이런 일을 예감한 걸까. 바로 몇 달 전에 아빠와 능이백숙을 먹으며 하나뿐인 동생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 네 전화번호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싸운 적도 없고 잘 살고 있어. 진짜야, 우린 괜찮으니까 걱정 마. 변명처럼 대답했지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사실 알고 있어. 집에 큰일이 있으면 서로 걱정하고 기대기도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평범하고 우애 깊은 남매 사이를 원하는 거겠지. 명절에나 겨우 마주한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볼 새도 없이 묵묵히 수저를 움직였잖아. 너무 오랫동안 서먹한 관계를 방치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반가운 마음이 깃들었는데 다정한 말 한마디 나오지 않더라.


그런 네가 당장 보호자로서 병원에 함께 동행하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고마웠어. 혼자서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마 힘이 들고 외로웠나 봐. 그래, 이게 형제였지. 아빠가 늘 말했던 힘들 때 기대고 찾을 수 있는 형제의 의미가 부모의 깊어진 병환으로부터 끈끈해진다는 것이 다만 슬프기도 해.


어렸을 때부터 너와 난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비교대상이었어. 그게 널 힘들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욕심이 많았던 나와 조용하고 착했던 너, 우린 쌍둥이지만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으니까. 부모님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6년 내내 같은 반에 배정시키기도 했지. 지금은 함께 나이를 먹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엄마에게 너는 여전히 아픈손가락이더구나.

 

그런 네게 맹목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어. 평생을 누군가의 비교 대상으로 살아온 너를 오직 '너'로 바라보고 싶었지.


나는 말없이 너를 응원하는 존재이고 싶었는지도 몰라. 네가 입대하던 날에는 먹먹했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한 달이 지나 수척해진 얼굴을 마주했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손이 떨리더라. 군대에서 보내온 편지는 단 한 통뿐이었는데 네 글을 읽고 어찌나 통곡을 했는지. 평소 말이 없던 너였기에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탓에 편지지에 꾹꾹 눌러 담은 너의 진심들이 가슴 깊이 와닿았어.


우리는 쌍둥이여서 특별했을까. 엄마 뱃속에 열 달을 부둥켜안고 있다가 함께 눈떴지만 1분의 차이로 누나, 동생이 되었잖아. 아무리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라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누가 먼저 태어났냐며 궁금해했어. 부모님은 네게 밖에선 꼬박 누나라고 부르라며 가르쳤지만 정작 네게 누나 노릇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뱃속에 거꾸로 서 있던 아기를 먼저 꺼낸 것으로 첫째를 결정한다는 것이 미덥지 않은 일처럼 느껴져. 나는 동생이라고 부르는 너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고 오직 나 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였어. 네가 철봉에 매달리면 그 위에 앉아야 직성이 풀렸고 모두를 등 뒤에 지고 달려야 성취감을 느끼는 아이였지.

 

그런 나보다 배려심이 넘쳤던 너는 불만 한 번 크게 낸 적 없었어. 어쩌면 거꾸로 서 있던 나를 받쳐주고 먼저 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네가 첫째의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봐.


너의 침착하고 다정한 성품말이야.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더 어렸을 땐 내가 너무 철이 없었잖아. 우리의 관계를 가능케 했던 동력은 나 혼자만이 아닌 너의 다정함과 배려심으로 나아갔음을, 나는 이제야 깨달아. 언젠가 나의 진심을 들려줄 날이 왔으면 좋겠다.


너에게 울먹거리며 아빠의 병환을 고했던 통화가 벌써 한 달이 지났네. 덕분에 아빠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야. 너의 무관심과 관심 모두를 이해하기에 나는 그저 네가 써준 마음들에 고마워하기로 했어. 이런 얘기를 하면 잔소리 같을까, 고민되어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다.

 

부디 잔소리가 아닌 관심과 다정한 메시지로 남기를. 우리는 각자의 고단한 길 위로 들어섰지만 뱃속에서 밀어주고 기다려주었던 처음처럼 언제나 서로를 응원하는 끈끈한 형제가 되자.

 

오늘도 내일도 잘 지내. 나도 잘 지낼게.

 

 

- 너의 가장 든든한 벗, 쌍둥이 B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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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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