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우울을 훔쳐보는 건 힘든 일이다 [사람]

글 입력 2022.12.28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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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우울을 훔쳐보는 건 힘겨운 일이다.

 

유튜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매일, 매 순간을 쏟아지는 빛 무리 아래에서 보내는 것 같은 사람도. 우울함이 타르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침몰해가는 사람들도. 그리고 영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완벽히 다른 타인을 연기하는 사람도.


대부분의 시간을 비슷한 주제, 비슷한 채널로 이루어진 거대한 알고리즘의 파도에 휩쓸리다가도, 이따금 툭 튀어나온 영상을 마주할 때면 새삼스러운 감상이 든다. 그래,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이질적인 영상 말이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사소했다.


멍하니 유튜브 화면을 스크롤 하다가 독특한 영상을 발견한 것뿐이었다. 요즘엔 기본 중 기본이라는 흔한 썸네일도 없는 모습이 어딘지 시선을 끌었다. 가볍게 영상을 클릭했다. 그 흔한 오프닝 멘트도 없이 바로 영상이 시작됐다.


영상은 좋게 말하면 솔직했고,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투박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배경음악조차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영상에는 자막만이 유일한 소통이었다. 돋움체로 내용만 꾹꾹 눌러담은 그것은 유튜브에 올라온 콘텐츠라기보단 누군가의 일기 같았다. 도저히 홀로 품고 있기엔 벅차서 던져버리듯 터트려버린 무언가 말이다. 매분 매초 숨길 수 없는 우울의 향기가 묻어났다. 그리고 그걸 영상의 주인공도 잘 알고있는 듯 보였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감상을 나열하자면 무기력했고, 우울해 보였으며, 외로워 보였다. 영상 속 주인공은 진득한 우울의 늪에 잠겨 들면서도 벗어날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투박하고 적나라한 영상에,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교차했다. 그렇게 첫 번째 영상이 끝났다.


무언가에 홀린 듯 같은 채널의 다른 영상을 누르면서 깨달은 것은 한 가지였다. 이 영상은 절대 보는 이를 고려하고 만든 영상이 아니었단 점이다. 유튜브 속 주인공은 내내 우울했고 버거워 보였지만, 버거운 감정을 품고 있기에 무신경했다. 그렇게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인 영상이 업로드 된 것이다. 그리고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 무신경한 낯섦에 매료되어 다른 영상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달콤한 향에 벌과 나비가 꼬이듯이, 짙푸른 우울의 향에는 사람들이 꼬였다.

 

댓글창에는 이미 먼저 영상을 접한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 뒤엉켜있었다. 지금껏 유튜브를 이용하면서 본 사람 중 가장 따스한 사람들과 가장 질낮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하나의 화면에 위로의 말과 조롱이 무질서하게 나열됐다. 누군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유튜버를 위로하기 위해 수천 자의 댓글을 써내려갔지만, 다른 누군가는 단어 몇 자로 영혼을 찔렀다. 너무 극과 극을 달려 외려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매 영상마다 이와 같은 모습이 반복됐다. 기이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 유튜브 채널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나도 포함됐다. 나는 아무 댓글도 달지 않는 관찰자였지만, 착실하게 모든 영상을 읽어나갔다. 어딘지 염증이 났다.


그 채널에 올라온 몇 안 되는 영상을 단숨에 몰아보면서 난 특이하게도, 감정의 전이를 경험했다.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우습게도 내가 영상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도 일어, 잠시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아마도 댓글 창의 그 수많은 사람 또한 이러한 전이를 경험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댓글을 남겼던 것일 테다. 자신 같아 보여서, 혹은 잣대로 비교해보니 자신이 더 나아 보여서.


고작해야 한 사람의 인생, 하나의 채널, 십분 남짓의 영상임에도 이 모든 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특정 누군가의 감정과 너무 쉽게 연결되는 현재, 그리고 그걸 판단하고 향유하는 사람들, 수많은 말,말,말.


영상 속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모두 헤아릴 수도 없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우울을 훔쳐보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이건 비단 그 채널에 대한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축적된 피로의 호소였다. 모든 것이 너무 지나치게 연결되어있었다. 클릭 몇 번에 타인의 삶에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예전엔 유튜브로 세상을 배운다는 말을 불신했었는데, 이젠 조금 신뢰가 가기도 한다. 이미 유튜브는 단순 미디어 플랫폼이라 칭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버렸다. 잘 만들어진 스타부터 정보, 콘텐츠, 누군가의 감정까지도 말이다.


너무 쉽게 타인에게 다다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좋은 의미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작용에는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것뿐이다.

 

 

[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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