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100년을 사이에 두고 만난 여성들 - 부채를 꼭 쥔 손

글 입력 2022.12.1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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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2 _.jpg

 

 

 

보이지 않는 여성 이주노동자


 

빨래, 진정한 공간.jpg

빨래 / 영상(빔프로젝터) / 00:10:34:10 / 2022

진정한 장소 / 프린트물 위에 목탄, 콘테 / 29✕21cm✕50장 / 2022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병원에서 간병인을 구할 때 우리는 여성 이주노동자와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그들이 없다면 일상은 금세 마비될 것이다. 이처럼 큰 비중이 무색하게도 이주노동자는 주로 남성으로 대표되고, 이주 여성은 노동자보다는 ‘외국인 신부’로 더 익숙하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이주 여성은 대상화될 뿐, 그들이 안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추유선 작가의 개인전 <부채를 꼭 쥔 손>은 지워지기 쉬운 존재, 여성 이주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전시다. 여성, 노동자, 이주민이라는 여러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을 추적하던 추유선 작가는 뜻밖의 지점에 다다른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하와이로 떠난 소녀들, 이른바 ‘사진 신부’들을 담은 사진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알지 못한 채 긴장 반 설렘 반의 표정으로 부채를 꼭 쥔 앳된 얼굴의 여성에게서 작가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이주 여성들을 겹쳐 봤다. ‘부채를 꼭 쥔 손’이라는 전시 제목은 그렇게 정해졌다. 작가는 100여 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놀랍도록 닮은 이 여성들의 삶을 살피고자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왼쪽 벽면에 부착된 ‘진정한 장소’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갔던 천연희 씨의 회고록 중 일부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중 일부를 발췌해 인쇄한 후 그 위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이 여성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낯선 땅으로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그것을 순수하게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이들에게 강제되는 상황이 존재했다. 많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내몰린 상태에서 외국행을 택했으며, 미래를 함께할 남편을 사진으로만 보거나 통화로만 만났을 뿐인 상태로 결혼을 해야 했다. 발췌된 글에서 그려지는 여러 여성의 삶은 앞으로 볼 전시 작품들의 모습을 예고한다.

 

 

 

손이 된 사람들


 

일곱번째 아이, 울게하소서.jpg

울게 하소서 / 캔버스 천 위에 유화, 연필, 목탄 / 116.7✕91cm / 2021

일곱 번째 아이 / 캔버스 천 위에 유화, 스프레이 페인트, 연필, 목탄 / 40✕40cm✕7 / 2022

 

 

여느 노동자들이 그렇듯 이주노동자도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일정량의 노동력으로 인식되곤 한다. 전시장 왼편의 ‘일곱 번째 아이’라는 제목의 유화 작품 7점은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각 그림에는 손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 서로 구별하기 힘든 일곱 개의 손은 1부터 7까지 번호가 적힌 모습이다. 얼굴 없이 손만 나열된 그림은 쉽게 대체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연상시킨다. 옷에 가려지지 않고 일할 때 많이 사용하는 신체 부위인 손은 가장 직접적으로 노동의 흔적이 드러나는 부위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이들의 손에서는 고단함이 읽힌다.


그 옆에 있는 ‘사탕수수와 깻잎’은 초록색이 도드라지는 여러 점의 유화를 지지대에 설치해 마치 나무처럼 세워둔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사탕수수와 깻잎에서 영감을 받았다. 두 작물 모두 재배되기까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 노동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100여 년 전 적은 임금을 받으며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한국 여성들은 오늘날 한국의 깻잎밭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과 겹쳐진다. 작품 앞에 놓인 작업 방석이 막연히 전시장 소품이라고만 생각하다가 실제로 밭일을 할 때 쓰이는 도구로 전시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작품은 좀 더 현실에 가깝게 다가온다.


영상 작품인 ‘빨래’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초등학교 조회시간이나 체육시간에 들었던 국민체조 음악이다. 학교에 다닐 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는 ‘국민체조’라는 단어에 작가는 의문을 제기한다. ‘국민’이 들어가는 단어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쉽고 익숙하며 대중적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국민’이라는 단어에서 배제되는 존재가 있다. 작품은 분명 이곳에 살고 있지만 국민은 아닌 이들, 또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해서


 

사탕수수와 깻잎.jpg

사탕수수와 깻잎 / 캔버스 천 위에 유화, 스프레이 페인트, 연필, 목탄 / 26✕18cm✕20 / 2022

 

 

희망보다는 절망이, 잔잔한 이야기보다는 비극이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여성 이주노동자도 그런 식으로 소비될 때가 많다. 우리가 이주 여성을 ‘외국인 신부’로만 여긴다면 그들은 자극적인 뉴스 속 ‘순진무구한 피해자’일 때만 우리 눈에 보이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현실의 외국인 신부들은 결혼으로 한국에 도착했지만 가정의 안팎에서 재생산 노동을 비롯해 다양한 일에 종사한다. 즉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신부는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761700000 그리고 3199e+8’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의 761700000는 인천 항구부터 하와이 항구까지의 거리가 7617킬로미터라는 것을, 3199은 한국에서 베트남까지의 거리가 3199킬로미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속 여성은 시야 끝에 걸린 낯선 땅을 담담하고도 비장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그림에서 여자는 당당히 삶의 주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외국으로 사람들을 보내던 나라는 이제 어느 때보다도 사람을 많이 받는 미래를 맞이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가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라는 단어 자체가 퍼지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주민 비하 발언을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다. 미디어가 이들을 그려내는 방식 역시 아직은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힘 없는 피해자’와 ‘이기적인 외국인’ 사이에서, 현실을 사는 한 사람의 삶은 쉽게 지워지곤 한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 전시가 편견을 깨고 누군가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도 죽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즉 죽은 다음에야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어지는 추유선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해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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