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치유는 식칼을 동반한다 - 드라마 '더 베어' [드라마/예능]

치유는 마냥 긍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글 입력 2022.12.1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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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 베어', 그리고 드라마 '테드 래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형 마이클의 죽음 이후 카르멘은 마이클이 경영하던 가족 식당 '더 비프'를 이어받는다. 자신이 일류 셰프가 되고 나서도 절대 가게에 발조차 못 들이게 했던 형이, 막상 가게를 자신에게 넘기겠다는 유언을 남긴 이유를 카르멘은 좀처럼 알 수 없다.


'더 비프'는 카르멘이 그동안 일해온 그 어떤 식당보다 난장판이다. 모든 스탭이 카르멘에게 비협조적이고, 체계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으며, 5년간 세금을 낸 적도 없다. 수익 구조마저 적자에 적자를 더한 적자라 빚이 산더미다.

 

카르멘은 이제까지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비프'를 하나하나 고쳐나가면서 마이클이 남긴 흔적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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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의 드라마 '더 베어'는 회당 30분 내외, 총 8회 분량의 빠른 호흡으로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영업 시작 20분 전부터의 주방의 이야기를 롱 테이크로 담아낸 7회는 이 드라마의 정수다. '더 비프'가 포장 주문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날, 일련의 사건으로 가게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영업 준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포장 주문 전표가 1초에 하나씩 출력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8분 안에 가게의 식재료란 식재료는 다 써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등장인물끼리도 다급한 나머지 미친 듯이 폭언을 쏟아내고, 그걸 보는 나도 정신없이 이 가관이자 장관을 지켜보게 된다.


앞서 분위기를 대강 짐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거친 분위기의 드라마다. 매 대사마다 비속어가 적어도 하나는 있고,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총도 쏘고 칼도 서로를 향해 겨눈다.

 

드라마의 흐름을 타다 보면 어느새 폭력은 예삿일이고, 욕설은 귀여운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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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에서 맞닿아 있어서 그런지, '더 베어'는 영화 <위플래쉬>의 닮은 꼴로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를 보며 <위플래쉬>보다는 애플tv 드라마 '테드 래소'를 떠올렸다. '테드 래소'의 주인공 테드를 보고 '더 베어'의 포스터를 다시 보면, 가운데에서 이마를 짚은 카르멘이 유독 더 피곤해 보일 정도로 두 드라마는 전반적인 톤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드라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긴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삐걱대고 무너져 있던 팀이 점차 하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들은 누구보다 속이 문드러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으로 인해 아픔을 겪으면서도, 되려 사람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맞이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테드는 자신이 속한 구단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카르멘은 '더 비프'의 스탭들과 죽은 형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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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나는 과감하게 '더 베어'를 '힐링'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치유는 마냥 긍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고, 가지각색의 상처가 있다. 그러니 치유도 당연히 가지각색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카르멘은 사랑하는 형을 잃었고, '더 비프'의 스탭들은 믿고 따르던 자신들의 동료를 잃었다. 그들은 결코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애정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상실의 슬픔을 나눈다. 극단적으로 날선 태도를 보이며 투닥거리는 등장인물을 지켜볼 때면 한숨이 나오다가도, 결국은 그들을 응원하면서 계속 드라마를 보게 된다.


'더 베어'는 거칠고 불친절한 '힐링' 드라마다. '식칼을 동반하는 치유'라는 모순되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드라마. 이 표현이 너무나도 와닿는다면, 아니면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꼭 직접 이 어딘가 이상한 힐링 드라마를 보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용뿐만 아니라 연출, 음악, 연기 모든 면에서 올해의 드라마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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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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