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책 맨 뒷부분에 삽입되어 있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었을 때 소설을 수정하였다고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내부인의 외부와 외부인의 내부 사이를 자주 오갔다. 어디에나 있는 다른 나라, 그리고 한 사람 안의 외부인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한다.

 

‘내부인의 외부와 외부인의 내부’라는 말이 아직까지도 모호하게 느껴지지만, 황선호가 주체성의 혼돈을 겪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 사이를 ‘공명하는 울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내일 자기가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는 타인이기 때문이다. 타인은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상상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허전한 일이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아무 권리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황선호는 다만 오늘을 사는 사람이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 안의 외부인’이 아닐까 싶다.

 

꼭 내일의 나 뿐만 아니라 오늘의 나 속에도 수많은 외부인 혹은 내부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모순될 수도 있고, 때로는 분열된 생각속에서 좌절할 수도 있다. 또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신의 모습 속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


황선호 역시 한순간에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외부인’이 되어버렸다. 실은 외부인도 아닌, ‘없어져버린 내부인’정도가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한순간에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차마 상상하기가 힘들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찾아간 ‘외부’인 보보공화국에서 비로소 그는 ‘내부인’이 된다. 그의 아버지가 몸을 두었던 곳도 바로 그곳이다. 내부와 절대 연결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그곳에서야 자신의 진정한 내부를 찾은 셈이다.

 

그리고 황선호는 그곳에 몸 담기로 결정하게 된다. 어쩌면 내부에서 외부인이 되어 버린 느낌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내부가 더 이상 내부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내부는 비로소 외부가 되어버리고 외부였던 곳이 다시 내부가 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 도시에 없는 사람이에요. 벌써부터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그래요. 여기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앞으로도 여기 있는 사람이기를 원해요.]


[모두들 사연이 있어요. 대를 이어 살아온 자기 나라를 그냥 떠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살 수 없어 떠났지만 이 친구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당신처럼. 다시 돌아가려면 그곳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겠지요. 그래서 떠도는 거예요. 그곳에 아직 못 가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곳에 기어이 이르려고, 어떤 사람은 죽기 전에 이르지 못하고, 그 아들이나 딸, 그 아들이나 딸의 아들이나 딸을 통해 겨우 이르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이르려고, 어쨌든 지금은 다른 데로 가려고 하는 겁니다.]

 

‘머무르거나 떠돌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 ‘내부인의 외부와 외부인의 내부를 공명하는 울림’ 여전히 모호하고 여전히 어렵다.


필자의 경우 내년에 외부라고 할 수 있는 독일로 가게 된다. 어쩌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로, 외부인으로써 방문하는 셈이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그곳을 나의 내부로 만들 수 있을까? 외부가 내부가 되고, 내부가 외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나의 생활 역시 더더욱 흥미로워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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