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사회의 흉터 [문화 전반]

소설 <카지노 베이비>와 영화 <벨파스트>
글 입력 2022.11.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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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품을 통해 이전에 감상한 다른 작품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경험은 소중하다. 잊고 있던 작품을 다시 꺼내 볼 기회는 항상 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 그러니까 두 작품의 닮은 점이 여러 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는 우연에 우연이 겹친 듯해 참 신기하다. 하지만 그 닮은 점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연이 야기한 여러 공통점의 중첩이라기보다는, 시발점이 되는 공통적인 특징 하나가 나머지 유사점들을 줄줄이 불러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함을 알 수 있다.


소설 <카지노 베이비>와 영화 <벨파스트>의 경우도 그렇다. 이 두 작품은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공통점에서부터 시작해 더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흉터, 소설 <카지노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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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지노 베이비>는 어린 ‘하늘’이가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하늘이가 사는 동네 ‘지음’은 과거에는 탄광촌이었고 지금은 카지노 산업으로 굴러가는 작은 마을이다. 갓난아기일 적 전당포에 맡겨져 전당포 주인 밑에서 큰 하늘이는 친자식처럼 예뻐해 주시는 주인 할머니와 그 가족 덕에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란다. 당차게만 보이는 하늘이에게도 숨기고 싶은 치부가 있는데, 바로 친아빠가 누군지 몰라 할머니의 성을 쓰는 것, 그리고 행정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바람에 열 살이 되도록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황당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이 소설은 주인공 하늘이의 순수한, 그리고 순수한 만큼 신랄한 입담으로 또 다른 주제를 전한다. 바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그 시절을 살아온 어른들에게 남아있는 흉터다.


책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단지 소설 속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탄광촌이 있던 시절, 하늘이의 할아버지를 희생시켰던 소동은 1980년, 우리나라 강원도 광부들의 노동 항쟁, 사북사태를 닮았으며, 탄광이 문을 닫은 뒤 들어선 카지노에서 일어난 재난은 삼풍백화점 붕괴와 태안 기름 유출, 세월호 참사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하늘이의 할머니가 일하시던 다방과 전당포의 이름이 ‘올림픽’이라는 점도 시대상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아이의 시선이 갖는 힘



소설 <카지노 베이비>는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서영인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은 탄광촌에서 카지노 특구로, 그러니까 개발 자본에서 투기 자본으로 전화해온 자본주의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열 살짜리 아이가 그런 사회에 대해 무얼 알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소설을 읽은 이라면 알겠지만, 하늘이는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준다.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은 적지 않다. 당장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예시만으로도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니, 내가 모르는 작품들은 더 많을 것이다. 어른들은 왜 아이들의 시선을 탐내는 걸까? 어린 주인공은 행동에도, 시야에도 제한이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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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그 제한이 아이들의 시선이 갖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 사이에 끼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구도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아이들의 상황. 이런 어려움을 토로해도 어른들은 귀엽다며 웃기만 하지만 실제로 이때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에 가깝다. 그리고 이 감정은 사회적 문제에 끼인 개인의 무력감과 닮았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어른은 어린아이만큼이나 무력하다. 어린아이 같은 처지가 된 어른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큰 혼란을 안기고, 그 혼란은 아이 화자를 통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이 점 때문에 아이들의 시선으로 사회를 비추는 작품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솔직하고 예민해서 어른들의 연약해진 모습,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까지도 모조리 표현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소설 <카지노 베이비>와 영화 <벨파스트>의 두 번째 공통점이 나온다. <카지노 베이비>가 우리나라의 아픈 기억이라면, <벨파스트>는 아일랜드의 아픈 기억이다.

 

 

 

아일랜드의 흉터, 영화 <벨파스트>(Belfast,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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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벨파스트>는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나고 자란 ‘주디’가 주인공이다. 평화롭던 주디의 마을은 종교 갈등으로 인해 점점 위험해지는데, 영국에 오가며 일하시는 아빠가 집을 비우는 상황이 길어지자 주디네 가족은 고향을 떠날 것을 고민하게 된다. 


엄마 아빠가 돈과 안전을 걱정하고 있을 때, 아홉 살이나 먹은 어엿한 어린이 주디는 정말이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좋아하는 친구와 더 친해질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사촌 누나와 비밀 클럽 활동도 해야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병원에도 가야 하고, 누가 개신교인지 누가 천주교인지도 맞혀야 하는데, 그 와중에 교회 목사님의 무서운 설교가 매일 밤 떠올라 잠을 설치기도 한다. 


부모님이 골머리를 앓아도 자기의 삶을 부지런히 사는 주디의 모습은 어린 주인공의 또 다른 장점, 넓은 시야를 표현한다. 어른들만큼 높이 보지 못하는 아이들은 높은 시야 대신 이 넓은 시야를 가졌다. 어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자기네들의 낮고 넓은 세계에서 중요한 것을 찾을 줄 안다. 아이들만이 갖는 이러한 힘은 어른들이 포착하지 못한 장면을 담아내고, 무겁게만 보였던 상황 속에서도 재밌는 모험과 즐거운 일상을 만들어낸다. 


이들이 자신만의 사건을 만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한다. 아니, 현실의 무게가 그리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마치 주디가 좋아하는 친구의 옆에 앉기 위해 수학 시험에 써먹을 꼼수를 배우는 것처럼. 그리고 하늘이가 자신의 친아빠에 대한 가설을 세워나가고 진실을 확인할 기회를 카드 게임으로 얻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소설 <카지노 베이비>와 영화 <벨파스트>의 또 다른 공통점은 조부모와의 관계다. 두 작품에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하늘이와 주디를 예뻐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 어르신들은 주인공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 전체에 소중한 존재이고, 또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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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다. <카지노 베이비>에서 하늘이의 할머니는 정신이 없으신 와중에도 하늘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 후 세상을 떠나시고, <벨파스트>에서 수학 시험의 꼼수를 알려주시던 주디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한 고생으로 병을 얻어 돌아가신다. 주디의 할머니조차 주디 가족과 함께 이사하는 대신 벨파스트에 남기를 선택하며 하늘이와 주디 가족은 더 이상 조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이별은 가족들을 무너뜨리거나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정비하고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된다. 주디의 가족은 고향 벨파스트를 떠나 영국으로 향하고, 하늘이의 가족은 카지노가 없는 지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세대의 고통도 어느 순간 지난 일이 된다. 그 시절에 얽매여 그때의 아픔을 곱씹기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그 아픔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작별 인사는 과거를 향한 작별 인사다. 아픈 기억은 마음속에 넣어두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러 간다. 


과거에 작별 인사를 한다고 해도 과거는 항상 기억 속에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도 그들은 항상 가슴 속에 있다. 그들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변화를 맞이할 힘이 되고, 시대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존재했던 따뜻하고 예쁜 추억으로 남아 전해진다. 소설 <카지노 베이비>와 영화 <벨파스트>, 그리고 또 다른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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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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