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잿빛 일상을 휩쓴 강렬한 컬러의 파도, 프랑코 폰타나 : 컬러 인 라이프 [전시]

글 입력 2022.11.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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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일상에서 전시장까지


 

빛 파장의 길이와 반사의 차이가 서로 다른 색의 탄생과 존재의 이유가 되듯이

 

모든 사람의 삶은 다채로운 무지갯빛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색을 강렬히 인식하는 때는 그리 많지 않다.

 

고작해야 증명사진을 찍거나 옷, 가방 같은 걸 구매할 때에만 색을 인지하곤 한다. 그것들차도 늘상 검은색, 흰색, 가끔 회색. 마치 선택지가 3개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무채색의 범위 내를 빙글빙글 돈다.

 

지금까지 나의 삶 속에서 ‘색’은 어떤 물체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색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어딘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토 같았다. 그렇기에 프랑코 폰타나의 전시가 그 어떤 전시보다 기다려졌다.

 

 

[포맷변환][크기변환]프랑코 1.jpg

 

 

전시장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대하게 솟은 잿빛의 건물들 사이에 유일하게 다채로운 빛깔을 품고 있었으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Intro. 프랑코 폰타나, 컬러 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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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미묘하고, 흥미롭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순간에 살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전시

 

전시는 프랑코 폰타나가 담아낸 삶의 풍경 122점으로, 총 4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자연, 도심, 인물, 도로가 각 섹션의 중심 피사체가 되어 [랜드스케이프], [어반스케이프],[휴먼스케이프],[아스팔토]의 중심축을 이룬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단순히 같은 피사체를 담은 작품을 한 섹션으로 묶어놓은 것이 아니라, 프랑코 폰타나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 피사체가 변화함을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공간 속에 담긴 프랑코 폰타나의 시선을 따라간다면,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전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하고 싶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랜드스케이프 landscape


 

흰 종이 위 검은 점 하나, 여백을 바라보는 시각

 


[포맷변환][크기변환]폰타나 랜드 1.jpg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랜드스케이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그림같은 풍경 사진’이란 점이다. 어딘지 모르게 빈티지한 멋을 뿜어내는 화질, 두드러지는 입체성이 없는 오묘한 평면성이 풍경사진이 아니라, 풍경을 그린 유화 작품처럼 보이게 만든다.

 

폰타나가 고심하여 담아낸 구도와 그린 듯 번듯한 곡선과 직선의 조화, 그리고 꿈에서 보듯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은 마치 공생가설 속 류드밀라의 행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가본 적도 없고, 아직도 저 상태로 남아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딘가 그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을 담고 있다.

 

이런 작품의 감상을 고취시키는 것은 쨍한 원색으로 칠해진 컬러 벽이다. 작품 속 풍경은 흔히 말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처럼 정적이고 평화롭지만, 작품을 담은 벽은 강렬한 주황색으로 어딘지 역동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이처럼 폰타나의 전시는 작품이 주는 감상과 컬러벽이 주는 색의 역동성을 대조시켜 모순적인 마력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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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 길을 내듯 인도하는 컬러 벽을 따라 랜드스케이프 섹션을 감상하다 보면 순간 와, 하고 감탄을 내뱉게 되는 작품이 있다.

 

바로 “풍경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풍경이 되어야 하고, 풍경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는 문구 아래 걸린 사막 빛의 바다 사진이다. 무엇보다 가장 바다 같은 짙푸른 벽 위에 걸린 모래사장 같은 바다 사진이라니.

 

나는 이 오묘한 모순에 빠져들어 랜드스케이프 섹션에 들어선 이래로 가장 많은 시간을 이 작품 앞에서 보냈다. 폰타나가 전하는 “풍경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풍경이 되어야 하고, 풍경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와 삼등분하듯 정갈하게 늘어선 사막같은 바다.

 

당신이 어떤 의미를 상상하였듯, 모든 게 정답일 것 같은 마법같은 공간. 첫 번째 섹션 랜드스케이프였다.

 

 

 

도심을 담아내는 손길,어반스케이프 urbanscape


 

지워진 시간을 붙잡아두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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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섹션, 어반스케이프로 들어오면 더욱 오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현수막과 공장, 주택 같은 일상적인 풍경이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의 풍경을 더듬어 떠올리듯이 익숙한 듯 낯선 도심의 풍경이 프레임 안에 예술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같은 일상의 공간임에도, 심지어 도시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맷변환][크기변환]폰타나 어반 1_1.jpg

 

 

그것은 폰타나가 도시의 ‘모든’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아닌, 일부만을 정제하여 녹여냈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만 보더라도 중심 피사체인 ’건물’들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구름이나 해, 빛을 걷어냈다. 바로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폰타나의 도시를 예술로 만든 것이다.

 

피사체가 도심이라서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반스케이프]에서는 폰타나의 예술적인 ‘황금비율’이 무엇인지 절로 실감하게 되었다. 번듯한 벽에 걸린 작품도 수평을 맞춰 찍는 것조차 무척 힘든데, 도시를 작품으로 정제하는 과정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이런 [어반스케이프]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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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빈티지한 벽화와 앤틱한 그 시절의 건물을 콜라주 하듯 한 컷에 담아낸 사진. 배경에서 풍기는 선명한 분홍색의 색감이 더욱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을 연이어 감상하다가 순간 “어? 그림 아니야?”라고 놀랐던 경험 때문인지, 전시장을 벗어나서도 잔상처럼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특히 이 작품 앞에서 지인과 나눴던 대화가 인상 깊은데, “지금은 저 건물이나 벽화는 없어졌을 텐데, 이렇게 사진으로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고 이야기했었다. 우리는 정작 너무 일상적이어서 지나치는 풍경을 누군가는 잘 모아, 시간을 기억해두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니.

 

이처럼 폰타나가 가장 친숙한 도심을 붙잡아두는 방법, 어반스케이프였다.

 

 

 

존재와 부재, 휴먼스케이프 & 아스팔토


 

내게 사진은 하나의 핑계일 뿐이다.

풍경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스스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프랑코 휴먼 1.jpg

 

 

폰타나의 휴먼스케이프, 그중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시리즈는 <달 알토>다.

 

<달 알토>는 마치 열기구 위에서 찍은 듯, 높은 곳에서 시선을 내려찍은 시리즈다. 감상하다 보면 ‘내가 새가 되어 인간을 내려다보면 이와 같은 풍경일까?’ 같은 비현실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높은 곳에서 인간을 피사체로 담아낸 만큼, 인간 개개인의 모습은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패턴의 한 음각처럼 거대한 흐름 속에 편입된 것 같은 모양이다. 저 사진 안에서는 개개인의 생김도, 옷차림도, 인종도 모두 중요한 요소로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요소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습게도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인간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더니”라는 말을 떠올렸다. 고작 비행기 높이만큼만 떠올라도 세세한 것은 흐려질 뿐인데, 그리 집착할 필요가 있겠냐는 깨달음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크기변환]프랑코 아스팔토1.jpg

 

 

반면에, 아스팔토 섹션의 작품은 우리의 발밑, 무척이나 작은 포인트를 조명한다. 늘 밟아 지나치는 아스팔트 위에 번진 붉은 물감처럼 정말 ‘찰나’에 불과한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거대한 의미도 숭고한 아름다움도 없다. 그 대신 도시의 ‘찰나’, 일상의 순간이 담겨있을 뿐이다.

 

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아주 작은 사진의 요소로, 도시의 요소에 불과한 아스팔트는 거대한 찰나로 담아내는 시각.

 

휴먼스케이프의 <달 알토>와 아스팔토 시리즈에 담긴 시각의 대비가 무척 흥미로워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보았다. 만약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프랑코 폰타나의 전시를 보러 간다면, 휴먼스케이프와 아스팔토의 섹션을 오가며 감상해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End. 일상으로 복귀하며


 

여담이지만, 전시의 첫 초입인 랜드스케이프에서부터 나를 휩쓴 생각은 ‘색채의 감각’이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색이 살아 숨쉰다'는 생각을 반복해서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선명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원색의 벽들과 작품의 조화가 정교한 설계를 거친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살면서 '색'에 휩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야 말로 색에 빠져들고 색이 이끄는 전시였다고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코 폰타나 : 컬러 인 라이프 전시는 마치 색채감각을 새롭게 열어주는 듯한 구조로 짜여져있어서 우울이나 슬픔을 푸른 감정이라고 칭하거나 새빨갛게 타오르는 분노, 녹음같은 사람 같은 색채 표현들을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줬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잿빛 일상을 휩쓸 강렬한 컬러의 파도 속에 빠져보라고 기꺼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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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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