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영화 화양연화 [TV/드라마]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글 입력 2022.11.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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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시작


 

세상에 나오고, 역병이 터지고, 내 손으로 투표를 하고, 사회의 문제들을 직접 내 두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이 시작됐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원래 사회에는 문제가 이렇게도 많았던 것일까?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 같은 건 오지 않는 게 아닐까? 지금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다가올 미래가 너무 두려웠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눈을 감고 뜨는 나날들. 자연스럽게 시선은 '그 때'로 향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필름 카메라, 복잡해 보이지만 어딘지 정겹고 촌스러운 색이 가득한 도시의 모습, 독특한 사운드가 넘쳐나는 음악과 '시대를 앞서간' 가수들의 퍼포먼스와 의상, 아직 찌들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 촌스럽고 인위적이지만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광고와 그 광고화면을 가득 메운 각진 글자.

 

과거는 워낙 낭만화되기 쉬운 것이어서, 곧잘 '그 때가 좋았지' 함정에 빠지게 된다. 더군다나 한 번도 그 시대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누리지 못해본 것은 분명 좋은 것일 거다'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만큼 달달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나도 자연스럽게 '옛날 것들'을 따라 하고 마음껏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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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코리아?


 

내가 KBS 다큐인사이트의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시리즈를 보기 시작한 것도 '옛날 것들'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결핍을 만족하기 위해서였다. 옛날 화면 속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과 화면을 가득 채운 '시대유감, 三豊(삼풍)'이라는 글자. 그 글자가 주는 톡톡 튀는 레트로 느낌과 그러면서도 주제가 주는 엄숙하고 압도되는 느낌에 홀린 듯 썸네일을 클릭하게 되었다.

 

사실 '모던코리아 시리즈' 말고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제약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2018년도에는 김보라 감독이 <벌새>를 통해 성수대교 참사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회고했고, 2021년도에는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삼풍백화점 참사의 원인을 재구성해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해 그 웅장한 분홍색 건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는데도 충격을 받았다. 사건의 내용이 심각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가 또 있다. 시대의 엽기적이고 못생긴 면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유감, 삼풍' 편에서는 삼풍 건설이 서초구 일대의 아파트를 담당하며 성장한 배경을 보여주고, 부동산 개발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집을 잃어야 했던 재개발 지역 주민들의 대립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 장면들 속에서 득시글대는 재산에 대한 욕망이 마치 와글와글한 벌레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사건이 한둘이 아니었다. '수능의 탄생'에서의 지독한 교육열,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의 사이비 종교 문제, '짐승' 편에서 보여주는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의 이야기 까지. 매일 쉴 틈이 없었겠다 싶을 만큼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은 시기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한국영화 화양연화


 

2003년은 영화인과 시네필 사이에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지 오래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로 시작하는 당시 개봉한 한국영화 리스트를 나열하는 것은 이미 너무 언급되어 이야기하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한국의 작가주의'라는 것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봉준호, 박찬욱, 임상수, 김지운, 장준환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영화의 분위기와 주요 장면이 생각나는 '작가'들이 팝콘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감독이 배우와 비슷한 스타성을 가지고, 팬덤도 형성될 정도였다. 이런 개성 있는 작가들이 탄생하게 된 것은 한국영화가 검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온갖 다양성과 작품성을 갖춘 영화들이 쏟아졌다.

  

2003년은 한국의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53.5%에 달해 외화를 이겼던 시절. 현재는 코로나로 인한 극장 산업 축소와 외화 선호도 증가로 인해 2021년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30.1%로 감소했다. 2022년도에는 극장의 부활로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그 시기 한국영화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스크린 쿼터제 폐지 논의가 진행 중이던 시기였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영화계는 아직 지금처럼 거대한 자본을 투자받아 만들어진 '대작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구를 지켜라> 같은 독특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지금과는 다른 2003년의 한국영화계의 분위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 한국영화계의 기분 좋은 추억에 젖어 있다가도 그 시기에 관한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어 주는 시대적 분위기가 드러난다. 스태프 노동 문제이다.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영하 5도의 환경에서 이틀 동안을 깨어 있으며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당시 영화 스태프의 연봉은 600만 원 선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영화계에서는 겨우 2012년 무렵에야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관련 논의가 시작되었다. 고작 십 년 전이다. 그리고 2014년 <관능의 법칙>이 최초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 <국제시장>은 표준근로계약서 이행 이후 첫 대작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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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추억은 끝났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마치 백일몽을 꾸고 있던 것처럼 퍼뜩 깨어나는 듯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본 영화가 좋은 영화일수록, 현실과 다른 이상을 보여주다가 나를 다시 현실로 데려가 지금의 문제를 인식시켜줄 때마다 그 '깨어나는 느낌'은 강해진다.

 

이번 모던코리아 시리즈 '한국영화 화양연화' 편 역시 그런 다큐멘터리다. 한국영화는 지금 전 세계의 호명을 받으며 최정상을 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2003년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추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다양성의 부재라고 생각된다. 한국영화는 이제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아 할리우드 못지않은 만듦새를 보여주지만, 전략적으로 기존에 성공한 시리즈의 후속편을 제작하는 등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한국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 듯하다. 

 

'한국영화 화양연화' 편의 마지막에는 한국영화가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호명되어 수상 받는 장면과 함께, 2003년에 개봉한 한국영화의 리스트가 개봉일자순으로 마치 엔딩크레딧처럼 올라가도록 연출되어 있다. 장르와 규모가 다양한 영화를 하나하나 곱씹어 보며, 한국의 관객으로서 해야 할 것은 한국영화가 발전할 수 있도록 건설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끝났다. 현실로 돌아올 때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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