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공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 [문화 전반]

퀴어 종합 예술의 현장
글 입력 2022.11.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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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상을 알게 되면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네 잎 클로버를 처음 알게 된 아이가 무심코 지나쳤던 들판 앞에 멈춰 감추어진 행운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에게 네 잎 클로버는 갑자기 나타난 새삼스러운 존재겠지만 사실 훨씬 이전부터 그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야 발견한 아이의 시선이 새삼스러운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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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 잎 클로버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이다. 퀴어라는 개념에 매력을 느낀 이후 올해 열렸던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이미 상상도 못 했던 분야와 갈래의 퀴어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웠던 경험이 있는데 하물며 영화제라니. 심지어 영화제는 올해로 12회를 맞이한 꽤 역사 있는(?) 축제였다.


비록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지는 않더라도, 국내외 단체와 협업하여 퀴어를 중심으로 동물, 난민·이주민, 탈핵, 장애인 등 주제를 계속 확장하면서 프라이드가 필요한 이들에게 제법 만족스러운 축제의 장을 선사하고 있다.


프라이드 영화제 안에는 프라이드 엑스포라는 또 하나의 축제가 진행되었다. 영화제 보다는 다소 기간이 짧아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프라이드를 주제로 한 액세서리, 그림, 서적 등의 다양한 굿즈 판매와 더불어 사진, 회화, 조소 등의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더불어 북토크, 낭독회, 강연도 진행되며 다채로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단순히 영화만 관람하고 오는 영화관에서 그 외 다양한 종합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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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일주일 동안 50여 개가 훌쩍 넘는 작품들이 상영되었는데, 나는 국내 단편 퀴어 영화 네 편을 묶은 <색, 동, 영, 화>를 관람하고 GV도 함께 했다. 특히 <색, 동, 영, 화>가 의미 깊었던 이유는 전문 감독이 아닌 ‘평범한’ 한국 게이 네 명이 공통의 관심사로 모여 협업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세대의 네 감독이 영화를 매개로 소통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는 사실은 성 소수자의 미래를 다양하고 폭넓게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했다.


특히 김상백 감독의 <럭키 나이트>는 전문 배우가 아닌 평범한 게이들을 섭외했는데, 완성도의 관점에선 조금은 어설플 수도 있으나, 프라이드의 주인공이 평범한 ‘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무엇보다 잘 전달해주었다. 또한 트랜스 젠더의 삶을 다룬 박재현 감독의 < D.O.V >, 학창 시절의 아름답고도 마음 저린 첫사랑을 다룬 정겨울 감독의 <해피 엔딩>, 샤머니즘과 퀴어의 삶을 연결하여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 라한 감독의 <라텍스>까지, 초보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다양한 서사와 퀄리티 높은 영화가 감각을 즐겁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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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상영 후 진행한 GV가 영화의 백미를 완성했다고 느꼈다.

 

프라이드 영화제의 GV는 단순히 감독과 관객이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었다. 퀴어를 비롯한 소수자가 서로의 존재를 실감하고, 눈앞의 당신은 어떤 생각과 삶을 그리고 있는지를 나누고,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있던 여러 소수자는 아무런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온전히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인 것이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긍심을 느꼈다면 그것이 정말 프라이드 영화제가 선사하고자 했던 경험이 아닌가. 

 

언젠가 현재의 위기는 좋은 콘텐츠가 부족한 것에 있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깊이 공감하는 메시지다. 우리 모두에겐 연대와 상생을 바라는 공통된 마음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워 서로를 외면해 온 세월이 두텁게 쌓였고, 그것이 더 큰 오해를 쌓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벽을 깨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나 분명히 극복해야 할 대상임은 자명하다.


비단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비성소수자도 같은 자리에 함께하며 즐겼던 프라이드 영화제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는 무엇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한 얼굴을 마주했을 때야 비로소 구체적인 한 존재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얼굴이 켜켜이 쌓여야만 굳은 행동 하나가 겨우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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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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