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처가 과거가 되었을 때 - 흉터 쿠키 [도서]

글 입력 2022.11.13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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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쿠키』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의 마흔두 번째 시집으로, 채지민 화가와 함께 표지를 작업하여 만들어졌다.

 

현대문학에서는 2017년부터 [현대문학 핀 시리즈]를 시작하여, 문학작품의 표지를 오늘날 우리 미술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장식하고 있다. 문학과 미술은 감상자가 감상의 속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자유롭게 주어진 감상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이 문학 내에서만 소비되지 않고 시각 예술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협업은 반갑게 느껴진다.

 

 

핀 시 042 이혜미_평면.jpg

 

 

이혜미 시인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세계를 꾸려놓고, 독자들을 이 낯선 시공간으로 불러온다.

 

시의 첫 장면은 이불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는 장면(「침대에서 후렌치파이」)이나 어디선가 전해 들은 미신(「달사람」)처럼 일상적인 지점에서 시작하지만, 시가 진행되다 보면 시인의 상상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미지와 관념들을 소환한다. 독자의 눈앞에는 어느덧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신비한 세계가 펼쳐지고, 새롭고 낯선 감각들을 만끽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감각의 수준에만 머물지 않고 관념적이고 심오한 세계로 연장된다. 『흉터 쿠키』에서 시인이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평소에 겉으로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는 것들이다. 시인은 자꾸만 독자들을 밤으로, 꿈속으로 끌고 오고, 그곳에서 마음과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표제작인 「흉터 쿠키」에서 “쿠키를 찍어내고 남은 반죽”을 조명하듯이, 이혜미의 시는 낮의 시간 혹은 일상에서는 조명하지 못한, 우리의 마음속 깊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다. 시의 첫 문장에 자리한 일상적인 모습들은 이내 외부에 드러내지 못하는 잔해와 흔적들이 흩어져있는 은밀한 영역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시를 추동하는 시인의 발상과 이미지에 엉뚱하고 귀여운 면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시인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순록의 뿔을 떠올리고(「우리에겐 아직 약간의 날개가 있으니까요」), 밖에선 들리지 않는 풍선 내부의 소리를 포착한다(「여름 자두 깨물면서」).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는 대상을 포착하고 그곳에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덕분에 시집을 읽는 동안 마음이 무장해제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뒤에 다가오는 관념들을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이혜미 시인은 “시는 상처보다 흉터에 가깝다”라는 말을 남겼다.

 

외부에 아픔에 반응하여 즉시 생기는 상처와 달리, 시는 아무래도 상처가 과거가 되었을 때 남겨진 흉터처럼 현장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시시각각 우리에게 밀려오는 즉각적인 사건들, 감정들과 사투하면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시간에 매몰된 일상은 문학적 감수성을 받아들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나의 현실을 바라보지 못할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상처뿐이다. 그 상처들이 아물어 흉터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인 것 같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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