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은 불꽃이 모여 썩어버린 외양간을 태우다 [영화]

영화 <에놀라 홈즈 2>
글 입력 2022.11.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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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거나 너무 늦음을 비판하는 속담이지만, 삶을 돌이켜보면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난 10월, SPL 그룹 계열사 SPL 빵 반죽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을 거두는 사고가 발생했다. 끼임 사고는 기본 안전 수칙을 준수하였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다. 하지만 SPC 그룹은 사고 직후에도 공장 일부를 가동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828명. 전년보다 54명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떨어짐·끼임 등 재래형 사고가 절반을 넘겼다.

 

그런데도, 기본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장들은 아직도 우리 곳곳에 존재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에놀라 홈즈 2>


 

해당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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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에놀라 홈즈>가 2편으로 돌아왔다. 영화 <에놀라 홈즈 2>는 모두가 아는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가 탐정으로서 첫 번째 사건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모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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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편에서 튜크스베리 자작 사건을 해결했던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 그녀는 런던에서 탐정으로서 살기 위해 정식으로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지만,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라는 꼬리표만 붙을 뿐. 정작 에놀라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파리만 날리는 사무소를 정리하려는데, 그때 에놀라 앞에 어린 소녀 베시가 나타난다. 성냥 공장에서 일하는 베시는 자신의 언니 세라 채프먼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는데, 에놀라는 이 사건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세라 채프먼의 실종 사건은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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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라와 그녀의 숨겨진 연인 윌리엄. 그리고 세라의 행적에 대한 단서를 찾을수록 이 사건이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에놀라. 심지어 그녀의 오빠 셜록 홈즈(헨리 카빌)이 수사 중인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세라 채프먼의 실종과 국가기관을 드나드는 미확인 송금.

 

두 사건의 연결고리들을 단서로 에놀라와 셜록은 사건의 내막을 파헤친다. 적자였던 성냥공장을 부당한 방법으로 흑자로 만들어낸 사장 라이언. 그리고 라이언과 결탁해 비밀리에 부당 이익을 취한 재무부 장관 매킨타이어. 실종된 세라는 성냥공장의 여성 노동자 명부를, 그녀의 연인 윌리엄은 성냥 제조 원료 교체 건에 대한 계약서를, 각각 훔쳐서 성냥공장에 관련된 모든 비리를 고발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세라 채플먼, 그리고 성냥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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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재밌는 점은 영화에 나오는 세라 채플먼이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며, 해당 사건 또한 1888년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성냥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소재로 하였다는 사실이다.

 

성냥은 나무를 깎은 막대에 인을 포함한 화학 물질을 묻혀 제조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하얀색 인은 인중독성 괴사를 유발하고, 빨간색 인은 상대적으로 유해성이 낮았다. 그러나 하얀색 인이 빨간색 인보다 제조 단가가 저렴하였고, 세라 채플먼이 다니던 Bryant & May 성냥 공장은 돈을 벌겠다는 이유 하나로 노동자들에게 유해한 하얀색 인을 다루도록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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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라이언은 빨간색 인 대신 하얀색 인으로 성냥을 제조하라고 노동자들에게 지시하였고, 하얀색 인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라 채플먼은 베시, 그리고 에놀라와 함께 성냥공장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밝힌다. 우리들의 동료이자 자매였던 이들은 티푸스가 아닌, 부패한 성냥 공장에 의해 숨을 거둔 것이라고.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위험해질 거라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세라가 에놀라와 함께 피워낸 불꽃은 성냥공장 전체에 번졌고,

 

끝내 여성 노동자들은 당당히 성냥공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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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기까지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 또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나쁜 짓인가?

 

낡아버린 외양간을 방치해 한 마리의 소를 잃은 건, 분명히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양간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외양간을 고쳐야 남은 소들을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주인이 외양간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외양간은 낡다 못해 썩어버릴 것이고, 남은 소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부패의 대물림을 막기 위하여, 스스로가 불꽃이 되어 썩어버린 성냥공장을 불태운 에놀라와 여성 노동자들.

 

그들처럼 우리도 불꽃이 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영화 <에놀라 홈즈 2>는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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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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