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색깔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 컬러의 방 [도서]

글 입력 2022.11.06 14:3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부지는 얼굴도 몸도 뻘건 디는 하나또 읎는디, 워째 사람들은 아부지 보고 빨갱이라고 할까?

 

한국의 분단문학 대표작,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3권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아버지 몸은 뻘건 데가 없는데, 왜 빨갱이라고 하냐?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아버지를 손가락질할 때, 아이가 묻는 꽤 근본적인 질문이다. 사회주의자는 왜 빨갱이이고, 북한을 떠올리면 왜빨강’이 자연스럽게 떠오를까?

 

내가 어릴 적 ‘보수당’을 의미하는 색깔은 파랑이었고 ‘진보당’은 빨강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수, 진보를 의미하는 색깔이 반대이다. 어린 나도 이런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왜 어른들은 자기들을 대표하는 색깔을 자꾸 바꾸는 걸까? 그러면 더 혼란만 주지 않을까? 색깔에 무슨 의미가 있길래 (실상 중요한 것은 바꾸지 않고) 맨날 색깔만 바꾸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이 있다.

 

 

 

색에 관련된 문화적 코드를 해독한 : <컬러의 방, 내가 사랑하는 그 색의 비밀>



컬러의 방_표1.jpg

 

 

색에 얽힌 문화적 코드를 해독한 <컬러의 방>이다. 출판사 윌북은 그동안 <컬러의 말>, <컬러의 힘>, <컬러의 일> 등 ‘컬러 시리즈’를 펴내 왔고,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컬러의 방>을 이어 출판했다. 

 

색의 역사 및 정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서문과 열한 가지 색에 관한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시대순이나 분야 별로 소개하지 않고 ‘컬러의 방’이라는 콘셉트에 따라 색깔별로 큐레이션 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순의 무지개 순은 아니고, 인간사적으로 좀 더 중요하게 여겨왔던 주류의 색깔 순서대로 나열되어있다. 

 

챕터 안에서는 한 문단 안에 색의 의미나 이야기가 하나씩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의미들이 어떤 기준 없이 나열만 되어 있어, 유용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따라가기 다소 어렵다. 하지만 흩어져있던 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한데 모아놓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유용하다. 또한 관심 없던 분야에 대한 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책에서 열한 가지 색에 관련되어 주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제제는, 미술작품(주로 서양미술), 정당의 색깔, 음악가 혹은 예술가들의 기호, 종교, 색의 기원 (이름 및 알료), 스포츠 유니폼 등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틀어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사적으로 통용되는 색의 의미일 것이다. 물론 문화적 배경에 따라 색의 의미가 다를 수도 있지만, ‘한국’이라는 문화적 배경을 가진 우리들도 크게 수긍 가능한 범위이다. 그렇지만 자료의 예시로 든 출처가 주로 특정 국가에서만 나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색깔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 색이 가지고 있는 모순, 주관성 그리고 위계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색이 담고 있는 모순된 의미였다. 예를 들어, 빨강은 위험, 경계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사랑, 애정, 욕구를 뜻하기도 한다. 은 황제의 색처럼 종교적 의미의 고귀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약함, 소심함, 광기 등을 뜻한다. 초록도 자연의 색깔이라 하여 치유, 평온함 등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서양사적으로는) 부패, 불운, 질투 등의 부정적 의미를 더욱 많이 지닌다. 다른 색깔도 극과 극에 해당할 만큼 모순되는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은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색을 해석하는 데 (모순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헷갈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신호등의 초록색을 보고 '저것은 불운, 부패를 뜻하는 부정적 의미야!' 하면서 길을 건너지 말라는 신호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색의 의미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직관적으로 우선 파악한다. 

 

 

[크기변환]robert-katzki-jbtfM0XBeRc-unsplash.jpg

 

 

한편 그만큼 색깔은, 인간의 언어만큼이나 규칙과 규범에 의거하는 듯하다. 실제로 인간이 보는 색깔이 실제의 색이 아닐 수도 있다. 책 서문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색을 본다’는 것은 인간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색’도, 인간이 ‘말’로 내뱉으면서 의미의 형태가 생기듯,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의미의 형태가 규정되는 것일까?  

 

색은 그렇다면 주관적이다. 

 

주관적이니까. 주류적으로 통용되는 색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 않다. 따라서 주로 쓰지 않는 색깔을 사용하면 주변의 큰 관심을 받는다. 주황, 분홍, 보라 등의 애매하다고 여겨지는 색깔들이 이에 해당한다. 책에 따르면, 분홍과 보라는 여성,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할 때 대표되는 색깔이고 주황은 진보적이지만 너무 좌파스럽지 않은 색깔로 과거엔 혁명의 색으로 선택되곤 했다. 반면, 빨강과 파랑은 주류의 색깔로 국기나 국가의 각 정당을 대표하는 색깔로 많이 쓰였다. 

 

즉, 색에도 위계가 있는 셈이다. 

 

이를 잘 이용하면 아름다움뿐 아니라, 가치나 의미를 전달하는 한 수단으로서 색깔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한 브랜드가 자신을 대표하는 색깔을 독점하기 위해 법적 공방을 벌였던 이유도, 바로 이 색의 힘 때문일 것이다.

 

색의 의미나 역할, 이름에 대해서 더 궁금해졌다. 색에 대해 종합적으로 탐독하고 싶다면, 윌북에서 펴낸 <컬러 시리즈>의 전작을 함께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색에 대한 궁금증이 일 때마다 가볍게 꺼내 읽기 좋은 책이다. 색의 문화적 해석을 혹은 이야기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정보의 바다를 헤매지 말고 방 한켠에 <컬러의 방>을 두고 가끔씩 꺼내 읽어보자. 의외로 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으니. 

 

 

 

민지연.jpg

 

 

[민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