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에서 오산까지, 궐리사 기행문 :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

글 입력 2022.11.05 17: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정지] 화성궐리사_포스터-01.png

 

 

정조, 화성궐리사를 세우다

 

2022년 10월 29일 (토) 오후 2시

오산 궐리사 경내

 

 

SYNOPSIS

 

1500년경, 공자의 후손 공서린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화성에 강당을 짓는다.

 

면학을 독려하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어 그 그늘에서 가르침을 베풀기도 하는 등 은행나무는 공서린의 후학 양성에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공서린이 운명을 달리하며 은행나무 또한 생을 다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250년이 지나, 화성에 공서린의 강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정조는 공자의 사상을 잇기 위해, 백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당을 새로 건립한다. 은행나무 또한 정조의 뜻을 전달받고 기적적으로 소생하기에 이른다.


이후 궐리사는 화성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며 은행나무는 현재까지 오산시궐리사의 대표 명물로 궐리사를 지키게 된다.

 

*

 

거리가 빨갛고 노랗게 물든 10월의 끝자락. 마지막 토요일에 특별한 자리에 초대받았다. 도착지는 경기도 오산. 서울을 벗어나는 일 거의 없이 지내온 토박이에겐 낯선 행선지였다. 게다가 '오산'이라는 지명은 꼬마 시절에 친구와 말장난하던 때에나 입에 담아본 곳 아니던가. 어린 날의 기억이 문득 떠올라서였을까. 무척이나 익숙한 파란 버스를 타고, 빨간 버스의 무지 막대한 배차를 기다리며 어딘가로 여행 가는 느낌이 들었다.

 

 

IMG_0343.JPG

 

 

버스를 오래 기다리다가 올라탔을 땐 '여행'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구체화됐다. 런던! 4년 전에 가봤던 그곳이 단박에 머리를 스쳤다. 아마 대중교통을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타는 일을 유럽에서 처음 해보아서인 것 같다. 게다가 빨간 버스라니. 서울 끝자락에서 경기도를 넘어가는 고속버스의 바깥 광경은 도시 간 이동을 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과 나무, 하늘이 전부인.


이때부터 조금 설렜던 것 같다. 편도 2시간 20분 거리를 온전히 즐길 준비가 된 거다. 기쁨의 문장 바로 뒤에 붙이긴 애석하게도, 모든 경험이 여행자다웠다. 초행길에 길을 헤매는 것은 물론, 핸드폰 속 맵만 믿고 올라갔다가 웬 산길을 타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궐리사를 목전에 두고 시간은 2시가 되었고, 극이 시작되었다.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첼로의 선율이 어찌나 구슬프던지. 야트막한 연두색 철제 담 사이로 콩알만 한 사람들을 보며 몇 분을 서있었다.

 

 

IMG_0344.jpg

 

 

순간 그런 생각도 들었다. 끝까지 이렇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소리가 메아리치긴 했지만 충분히 잘 들렸고, 무용수의 움직임도 선명히 보였으니. 공연 시간이 약 30분 정도라고 했으므로 이 또한 여행의 색다른 경험으로 남겨도 좋으리라. 해가 그토록 강렬하게 내리쬐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랬을 거다. 겨우 일주일 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태양이 이글대던 날이었다. 야외 공연을 보기 좋은 날이긴 했지만, 산길에 우두커니 서서 햇볕을 감내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슬픔이 잔뜩 묻어난 노랫소리를 따라가며 이번엔 입구를 제대로 찾았다. 공자의 후손 공서린의 죽음을 슬퍼하던 상황은 지나가고, 사도세자와 영조, 그리고 정조가 나왔다. 수능이 끝난 후 조선시대의 내용 대부분을 잊었다지만, 이건 익히 들어본 내용이었으므로 익숙했다. 영화 <사도> 등 충분한 창작물이 나오기도 했고.

 

기억 남는 건 사도세자가 고통에 몸서리치는 동작을 정조가 이후 그대로 따라 한 대목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조는 잊지 않았음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그가 본 고통, 공포, 슬픔을 지금도 모조리 기억한다고.


조선의 사대부 중 노론의 입김이 왕권보다 강력하던 때. 사도세자를 몰아낸 세력이 왕위를 계승한 정조를 다르게 대할 리 없었다. 공자의 뜻을 직접 계승하는 건 자신들이라며 충청남도 논산에 궐리사를 지었다. 물론 정조의 허락 없이. 도발적인 작태에 정조는 똑같이 응했다. 그렇게 세워진 게 화성궐리사였다. '화성'이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왜 오산에 있을까. 의문스러운 점은 극이 끝난 후 이어진 교수님의 풀이로 밝혀졌다.

 

 

SE-1fcd4cb7-f847-4552-9946-c5bb950b0586.jpg

 

 

예전 화성은 지금의 화성과 달랐다. 1945년 8월까지 화성시-수원시-오산시를 합쳐 모두 '화성'이라 통칭했다고 한다. 빛날 화(華), 성곽 성(城). 찬란하고 빛나는 성이라는 말에 담겨있듯 그 위상도 높았다. 땅의 크기가 권력의 크기와 동일했던 시기이기에 조선에 있던 300개의 고을 중 '화성'의 관리자가 가장 높은 지위를 얻었다. 무예의 중심지로 선포한 곳이기도 하고, 정조가 학문 개혁에 힘쓰며 공자의 사당을 세웠으니 문·무예를 포괄한 지역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예부터 이름에는 무수한 의미가 담긴 듯하다. 궐리사의 '궐리'는 공자의 고향 지명을 그대로 따와 공자의 뜻을 잊지 않고 존경을 표하겠다는 표식처럼 보인다. 현장극이 펼쳐진 공간 근처에 강당으로 쓰인 행당이 있었는데, 이 또한 은행나무 행(杏, '살구나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을 품은 말이다. 이는 궐리사 내 커다란 은행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공자가 제자 양성을 할 때에 그 아래에서 교육했다고 한다. 사대부들도 이 교육법을 본받았고 말이다.


역사적 공간은 발길과 눈길이 닿는 곳곳마다 의미가 담겨있어서 알면 알수록 놀랍고 경이롭다. 이를 좀 더 오랫동안 깊이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위상을 다시금 되돌려주어야 한다. 궐리사 내에 공자의 진본 초상화를 보관하는 등 깨달음의 역사를 소중히 이어가는 것에서 더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을 화성궐리사까지 확장 등재하려는 노력도 그 일환이 아닐까 싶다.

 


IMG_0345.jpg

 

IMG_0346.jpg

 

 

다행인 건 생각보다 찾아온 손님이 많았다는 거다. 현장에 찾아온 사람들 대다수가 가족 단위이고, 초등학생 또래가 많았다. 역사와 관련된 창작물은 왠지 모를 선입견부터 내세우게 되거늘.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극과 해설은 한층 가볍고 쉬운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왠지 모르게 어렵고 복잡할 것 같았는데 무언가를 목표로 둔 어느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한층 받아들이기 쉬웠다. 역사 속 인물은 지금과 거리가 한참 머나먼 옛이야기가 아니고, 현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아서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이 원하는 건 행복과 안정, 단 두 가지이므로.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문득 고개를 들었다.

 

 

IMG_0354.jpg

 

 

가을마다 보이던 은행나무가 이제는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나무에 바람을 담고, 다른 누군가는 그 바람을 확장하고자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집대성하려는구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냥 괴롭지 않았다. 현실과 동떨어지고자 했던 마음으로 떠났기에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번잡하기만 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으로 얻은 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 살아가다 보면, 마음도 정신도 더더욱 크게 자라지 않을까. 몇 백 년간 무성히 자라난 은행나무처럼.


맹렬한 추위가 찾아오는 11월. 이 깨달음을 잘 기억해두어 찬란한 봄을 맞이해야지. 은행나무를 보며 그렇게 다짐해 본다.

 

 

[박윤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