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샘플링 유행의 시대 [음악]

글 입력 2022.11.0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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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 'Nxde'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아?”

“이 파트 그 노래 아니야?”

 

지난 10월 17일 발매한 ‘(여자)아이들’의 활동 곡 ‘Nxde’를 친구들과 듣다가 나눈 대화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 노래가 맞다. 코러스 파트의 강렬한 멜로디는 바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Carmen)’에 등장하는 아리아 ‘하바네라 (Habanera)’를 샘플링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샘플링’이란, 기존 음원의 일부분을 따와 작업하는 기법을 말한다. 음악의 전체적인 부분을 새롭게 편곡하는 ‘리메이크’와는 달리, 샘플링은 특정 부분을 하나의 요소로 활용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곡을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여자)아이들의 멤버 전소연은 이 곡을 작업하며 스토리텔링에 큰 힘을 쏟았다고 하는데, 가사부터 뮤직비디오 속 등장하는 오마주까지 ‘팜므 파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하바네라’를 샘플링한 것 또한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일환으로, 전혀 이유 없는 샘플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Carmen 'Habanera'

 

 

위의 곡처럼 특별한 의도를 갖고 샘플링하는 경우도 많지만, 샘플링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멜로디를 들려주며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지금의 K-POP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지 리스닝’이 흐름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최근 발매한 음원들을 들어보면 이처럼 샘플링을 활용한 곡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블랙핑크 'Shut Down'

 

 

지난 9월 발매한 ‘블랙핑크 (BLACKPINK)’의 정규 2집 타이틀곡 ‘Shut Down’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인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를 샘플링하였다. 기존의 클래식 명곡을 정제된 비트와 섞어 세련되게 표현한 이 곡은, 선공개 곡 ‘Pink Venom’과는 달리 ‘이지 리스닝’을 의식하면서도 기존에 보여주던 팀의 이미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블랙핑크와 함께 3세대 걸그룹 전성기를 이끈 ‘레드벨벳 (Red Velvet)’ 또한 지난 3월 발매한 타이틀곡 ‘Feel My Rhythm’에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프로모션 타임 테이블에도 ‘G 선상의 아리아’ 악보가 그려져 있고, 곡의 발매가 바흐의 생일날 이루어졌다는 점은 곡의 콘셉트 자체를 샘플링 곡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의도는 클래식 샘플링이 주는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큰 시너지를 일으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

 

 

레드벨벳 'Feel My Rhythm'

 

 

이처럼 클래식 명곡을 샘플링하는 시도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89년 발매한 변진섭의 2집 수록곡 ‘희망사항’에 조지 거슈윈의 ‘Rhapsody in Blue’가 삽입된 것이 국내 대중음악 최초의 클래식 샘플링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H.O.T가 ‘빛’에서 ‘환희의 송가’로 알려진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4악장을 샘플링하였고, 신화는 ’T.O.P (Twinkling Of Paradise)’에서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하며 댄스 음악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반면 기존의 대중음악을 샘플링한 경우는 클래식을 샘플링한 음악에 비해 드문 편이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사후 70년까지 보장되는 ‘저작권’의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기존 대중음악은 클래식 음악에 비해 곡이 가진 색채감이 뚜렷한 경우가 많아 시도하기 조심스러운 이유도 있다.

 

힙합에서 랩을 얹기 위해 사용하는 비트에는 샘플링이 자주 사용되지만, 힙합의 장르 특성상 그 어떤 장르보다 가사의 내용과 전달력, 그리고 래퍼 개인의 실력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샘플링에 대한 부담감은 덜한 편이다.

 

 

아이브 'After LIKE'

 

 

지난 8월 발매한 ‘아이브 (IVE)’의 ‘After LIKE’는 이러한 부담 요소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다.

 

코러스 후반부마다 등장하는 화려한 신스 리프는 로비 윌리엄스의 ‘Supreme’의 간주를 샘플링하였는데, 이 곡과 복고풍의 이미지는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로비 윌리엄스의 곡은 웅장하고, 아이브의 곡은 찬란하다.


사실 로비 윌리엄스의 ‘Supreme’도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를 샘플링한 곡이다. 즉, 세 곡이 모두 같은 리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 곡이 모두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곡에서 해당 리프를 사용하는 시점과 악기 톤의 질감 등 멜로디 진행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들이 각 곡에 맞게끔 적절히 편곡되었다는 것이다.

 

 

'After LIKE'에 사용된 샘플링 곡 소개 영상 (유튜브 'SoundT')

 

 

결국엔 샘플링을 활용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창작물 수준이 되어야만 지금의 대중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샘플링 유행 시대 속 등장한 위와 같은 히트곡들도 마찬가지로 샘플링한 요소들을 각자만의 개성을 담아 풀어나갔다.

 

지금의 샘플링 유행 시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지금의 과정을 통해 샘플링 활용법이 더욱 발전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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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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