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전무결하지 않아도 기적 같은 '진정한 우정' [도서/문학]

진정한 우정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래서 기적에 가깝다.
글 입력 2022.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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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도 하나의 로망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드라마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로망을 품고 자라난 친구들이 여럿 등장한다.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 주인공의 곁을 지켜주는 친구, 호탕하고 패기 넘치는 태도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친구, 모든 일과 삶을 비밀 없이 공유하는 친구,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꿰뚫고 있는 친구까지. 이런 친구 딱 하나만 있어도 참 좋겠다며 가볍게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사실 알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주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와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 가장 오래된 친구부터 최근에 마음이 맞게 된 친구까지 천천히 돌아본다. 무엇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걸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완벽하게 이상적인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서로가 너무 소중하고, 종종 밉고, 자주 용서한다.


『진정한 우정』은 프랑스 대표 삽화가인 장 자크 상페와 저널리스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와의 대담집이다. 우정은 하나의 얼굴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른이며 예술가인 장 자크 상페의 우정에 대한 깊이 있고도 유쾌한 통찰을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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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우정



10대 시절의 우정과 지금의 우정을 떠올려 보자.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이런 질문을 하다보면 사소한 것부터 많은 차이가 생겨났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매일 같이 만나 일상을 나누던 친구의 부재가 익숙해졌고, 오랜만에 만나서도 말을 고르고 고른다. 상대가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는 일상의 틈을 키워간다.


너에겐 나를 감당해야 할 몫이 없고 나 또한, 너의 몫을 온전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 졸업을 하고 나니 다들 만나는 사람도, 마주치는 환경도, 경험도 달라져갔다. 오랜만에 본 친구는 자주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내 앞에 앉아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주저 없이 꺼내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나도 그랬을 텐데,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나 상대만이 아는 간극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그게 이따금씩 속상했다. 이런 모든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친구와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아서. 지속 가능한 우정은 어떤 자세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향해 책 속의 상페는 말한다.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상대에게 귀 기울이는 역량과 명석한 통찰, 그리고 현명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언제나 모든 말을 나누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그러고보니 매일 같이 잡담을 나누던 때와 비교해 현재 우리의 대화가 더 풍성해져 있음을 왜 그냥 지나쳤을까? 적당한 거리두기는 친구와 나 사이에 많은 일화과 감정과 시간을 쌓게 만든다. 그럴수록 우리는 조금 씩 더 비밀스러워지고, 동시에 상대방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 비밀스러움과 그 호기심이 지속가능한 관계 발전의 초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야만 애정인 것은 아니다. 한발자국 물러나 고요히 우리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 역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진정한 우정



우정은 사랑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상페는 말했다. 설명하고, 사과하고, 고백하는 사랑보다 우정을 다루는 일이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아주 깊은 마음을 나누고 있으면서도 현명한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우정은 ‘적당히’의 범위를 꽁꽁 가려두는 것만 같다.


나 역시 상대방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싶지만, 종종 느끼는 경쟁심, 질투심은 나를 한참이나 작아지게 만든다. 마음이 넓지 못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페와 마르크의 대화 속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성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완전무결한 우정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오히려 우정이 기적에 가깝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엉킨 마음들이 존재함에도 지속될 수 있는 길고 느슨한 끈. 그것이 진정한 ‘진정’이 아닌가 이제서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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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취해야 하는 것은 사랑 만이 아니다. 무심히 앉아 환상 속 완벽하고, 다정다감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헌신적인 우정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장 자크 상페는 우정의 기적 같은 면모를 믿고,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단호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완전무결하지 않은 우정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한다.


책을 읽으며 지난 시간동안 내 삶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할 것이 자명한,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오래 곱씹었다.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아 자꾸만 감추고 감췄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책을 덮으면서는 친구 관계에서도 '거리두기'의 미학이 필요하다고 말한 상페처럼 앞으로는 나를 위해, 그리고 친구를위해 지나치게 애쓰며 관계에 매달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도 여전히 확언할 수 없는 이 기묘한 애정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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