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인생이 연극이라면 폐막하고 싶을 때 [공연]

글 입력 2022.10.2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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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로 인해 삶이 매너리즘에 빠질 것만 같다. 내 인생도 나와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일상은 소중하고 봄은 따듯한데 어쩐지 침잠된 기분이 든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뮤지컬 두 작품을 꼽아보았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과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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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뮤지컬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인사이드 윌리엄>은 처음부터 끝까지 밝고 능청스러우며, 중간에 개그 요소를 넣어 재치 있게 분위기를 이끈다. 반면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비밀스럽고 스산하다. 첫 넘버에서부터 주인공을 ‘이 동네 미친X’로 수식하고, 그도 그렇게 보일만한 괴팍한 노파의 등장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둘 다 현실 소재를 바탕으로 했는데, <인사이드 윌리엄>은 동화 같다면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추리소설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뮤지컬을 보고 나면 같은 울림이 남는다. 어떤 메시지가, 어떻게?

 

 


나에게만 존재하는 내 인생의 조각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의 삶은 모두 하나하나 기록되어 우리에게 비춰진다. 평소와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도 우리에겐 다 하나의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과 다름없이 밥을 먹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어떨 때에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순간을 맞이하고 예능보다 더 예능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그래도 그것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만 기록되고 나에게만 기억 된다. 특히 내가 혼자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오롯이 나만 기억할 수 있다. 나에게만 존재한다. 하물며 드라마 주인공들도 중간 장면은 스킵이 되는데, 내 일상은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평생 기록될 일이 없는 것이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과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그런 부분들을 조명한다. 주인공들조차 장면에서는 스킵 되는 부분들.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지 않는 오로지 나만의 기억과 서사. 나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내 인생의 부분들.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편집’까지 된 부분들인데, 이 뮤지컬은 오히려 그 부분에 집중하고 면밀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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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연극이라면 새로운 장르이고 싶어.”


 

내가 처음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가 기억이 나는가? 내가 처음 한글을 배웠을 때. 처음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처음 농구 골대에 공을 넣었을 때. 처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겼을 때. 처음 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내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끼고,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기대가 피어오르고, 마치 내 눈 앞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른 거리는 것 같고, 미래에 대한 설렘에 가슴이 저릿한, 그런 경험. 분명 내게도 있었는데 왜인지 희미하다. 그 기분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고 그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고.

 

그런데 공연 안에는 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 우수에 젖어 진심을 열변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함께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식기도 한다. 현실은 저렇게 늘 빛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으니까. 나는 저런 설렘을 경험한지 너무 오래 되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빛나는 저 캐릭터들은 묘한 희열과 동시에 묘한 슬픔도 가져다준다. 내가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이렇게라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는 대리 설렘에 그치는 것 같다. 이 극에서도 그런 캐릭터가 등장한다. 묘하게 낯익고 묘하게 공감되지만 묘하게 거리감이 생긴다. 그 인물은 희망찬 미래를 꿈꾸고 밝은 전망을 암시한다. 감동적이다. 그렇게 끝날 것 같다.

 

그러나, 이 극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것을 깨달은 극 중 인물은 불안해한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이 것을 끝까지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또 다른 인물은 새롭게 바뀌는 것에 불안해한다. 사실 나는 부족한데,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노골적이다. 새로운 변화 앞에서 나는 찬란함을 맞을 만큼 용감하지만 동시에 처음 겪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내 안에서도 끊임없이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고, 이 모순된 두 감정 모두 우습게도 아주 진심이다. 그런 내 감정까지 헤아려주는 것 같다. 또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첫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에 주목한다. 남에게는 미약해보이지만, 나에게는 달의 착륙 순간과도 맞먹는 그 첫 걸음에 주목한다.


 

“근데 우리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다시 쓰면 되지.”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그럴 땐, 잠시 환상에 사로잡혀 꿈을 꾼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이야기는 앞으로 더욱더 좋아질 거라고.

그럼 마음이 편안해질 테니까.”

 

 

그리고 대놓고 위로해준다. 지금 네 이야기는 앞으로 좋아질 거야. 지금 네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든다면, 잠깐 선잠에 꿈꾼 거라고 생각해. 꿈에서 깨어 더 행복하게 살아가.

 

코로나로 인해 취업 걱정은 날로 커지고, 경제 불황에 어른들은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지금 힘든 우리네를 대놓고 위로해주는 말들.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극의 마지막에 직설적으로 해주는 위로는 우리의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당신이란 책을 제대로 읽어봐. 그 속엔 네가 잊었던 문장이 많아.”


 

‘나’라는 책은 어떤 책일까. 장르는 무엇이고, 명대사는 무엇이고, 기승전결이 있다면 난 지금 어디에 있나. 우리는 얼마나 ‘나’에 대해 제대로 읽고 있을까? 내가 이 책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잊은 문장이 너무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말한 것 같은 남들에게 는 편집해져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나만 알 수 있는 나를 사실은 나도 잊는 것은 아닌지.

 

이 극은 특히 내 인생과도 같이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학창 시절 때는 성적이, 학교 이름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회사 이름이, 나의 직함이. 반장이 되면 내 인생이 빛나는 것 같았고 시험에 합격하면 인생이 성공인 줄 알았던. 그것이 내 인생이 아닌데도 내 인생이라고 여겼던 크고 작은 것들이 있다.

 

수능을 망했을 때 나는 인생이 실패한 줄 알았다. 내 미래가 캄캄했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으며 나는 이미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한 때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렇게 지나간다. 결국 내 인생은 그런 것들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이 내 인생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그 때가 지나면 별 거 아닌 게 되지만, 그 때를 견디는 것이 너무나 힘들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예기치 못하게 언제든지 온다.


 

넌 수고했다

넌 충분하다

넌 살아냈다

늦지 않았다

 

 이 극도 위로는 아주 직설적으로 해준다. 평생을 혐오와 경멸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마리와 호프의 인생을 보다가 이러한 직설적 위로를 받으면 눈물이 왈칵, 하고 터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인생을 증명해내야만 했던 삶, 결국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삶. 그러나 그 잃어버린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도 자신 뿐. 고난과 역경 뒤 더 이상 ‘미친X’가 아닌 그냥 호프가 되어 자신의 삶을 되찾을 때는 내 인생의 잃어버렸던 한 조각도 함께 되찾은 기분이 든다.


내 인생이 연극이라면 폐막하고 싶고

내 인생이 책이라면 절필하고 싶을 때.

그러나 결국 당신의 인생은

당신만이 기억하고 있는 그 자체로 살아가는 예술이다.

 

 

[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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