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정을 이해하면 친구가 된다, 낮과 달 [영화]

글 입력 2022.10.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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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대한 단상


 

가족 친구 연인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들이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야 더 깊은 속내를 이야기하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말로 맺어진 관계들은 대부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지만 몇 개의 소중한 밀알들은 조용히 남아 서로를 지켜주기도 한다.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반적인 언어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관계가 느끼게 해준 놀랍도록 따뜻한 인간 사이의 정. 


*


KC ♥ MH


남편과 남편의 첫사랑이 목하 열애 중이었던 곳으로, 나 홀로 뚝 떨어지게 된다면?

 

남편과 사별 후 평소 남편이 살고 싶어 했던 제주도로 이사 온 민희는 성격 좋은 동네 이웃 목하와 그의 음악하는 아들 태경을 만나 친분을 다지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한 순간, 목하가 남편의 첫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본의 아니게 상실의 아픔을 분노 게이지로 다스리게 되는 민희, 평온했던 일상 속 잊고 지냈던 오만년 전 ‘구 남친’의 기억을 강제 소환당한 목하.

 

두 여자의 예측 불가, 밀고 밀리는 관계가 시작된다.


 

 

민희의 사(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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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애매모호하고 어색한 관계가 또 있을까. 사별한 남편의 첫사랑, 심지어 그의 아들을 마주하게 되다니.

 

남편 경치가 떠난 것이 그의 등뒤에 뱉은 나가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말 없는 그를 너무 다그친 자신의 성격 탓이었을까 한참을 고민했던 민희. 적잖이 마음이 답답했던 그녀가 남편의 고향 제주에 오며 마주하길 예상한 장면은 전혀 아니었다.

 

이제는 옆에 없는 배우자이지만 한번쯤 그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려보고, 살아도 괜찮겠다 싶으면 정착할 셈이었다. 슬픔에 이미 지쳐버린 마음은 목하와 그 아들을 보면 불쑥불쑥 화와 억울함으로 불타올랐다.


그이의 아들이라면 나에게도 권리가 있어. 목하를 제외한 우리 셋이 가족이 될 순 없는 걸까. 종잡을 수 없는 외로운 말괄량이는 한없이 귀엽지만 그만큼 포악해져갔다.




목하의 정(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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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없다. 아들 태경만 있다면 태어나 떠나본 적 없는 제주에서 지금까지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사랑의 그녀, 민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이 아빠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이제 아들까지 자기 몫이라 우기는 민희가 우습지만, 한편으로 가엾기도 하다.


반 뚝 잘라 나를 닮은 아들을 키우며 당연히 경치의 모습도 보였다. 마음에 묻고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라며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경치가 죽었다고 했을 때도 무척 슬펐지만, 오래 전 이미 나를 떠난 그가 좋은 곳에 갔기를 바랄 뿐이었다. 목하에게 경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니 목하에게 이제 와 민희가 대신 태경의 엄마 노릇을 하려 들고 경치의 아내임을 거듭 주장하는 것은 소음과 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알았으니까, 날 좀 내버려둬, 제발.


 

 

인간 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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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힐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민희와 목하의 관계는 그러나, 어느 날 기나긴 팔씨름 한 번으로 달콤한 케잌과 쌉싸래한 아메리카노처럼 맛있게 조화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모든 인간 사는 정으로 통한다는 걸 서로를 향한 지난한 다툼과 호소로 깨달아버린 것. 여전히 둘의 마음에 경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남아있고 태경에 대한 애틋함과 모성애라는 공통점도 새롭게 자리잡았음을 안 것이다. 소리내어 외치니 밖으로 드러났을 뿐, 말과 몸짓으로 첫 만남 수 어쩔 수 없이 알아채왔던 같은 마음들을 서로 보듬어야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마침내 이루어졌다.


관객 입장에서 둘의 화해는 다소 갑작스러운 화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울고 화내며 감정들을 쏟아내면 남은 것은 결국 '정'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으로 나지막히 둘의 이야기에 안녕과 응원을 보냈다.


저승의 달, 경치가 이승의 낮에 사는 민희와 목하를 비추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무대인사 중 배우들이 전한 말처럼, 자극적인 볼거리 사이 겨우내 잔잔히 남는 마음의 손난로가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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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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