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워할 수 없어서 사랑하게 된 양미숙 양을 소개합니다 [영화]

영화 <미쓰 홍당무>, 내가 뭐 어때서?
글 입력 2022.10.1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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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홍당무 포스터.jpg

 

 

 

‘도대체 왜 저렇게 살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스크린 속에서 만나면 나는 묘하게 기쁘다. 만약 현실에서 만난다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그들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와 관객이라는 애매한 거리에서, 나는 보기 힘든 인물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특이하고, 비호감이다.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탁월한 소질이 있다. (가끔 사랑하기 실패할 때도 있다.)


영화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도 그렇다. 쉽게 호감을 주기에는 이상한 사람이다. 자기 혼자 망상에 빠지고 (진짜) 삽질하고 후회하고 돌이킬 수 없는 (고의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열등감도 심하고 자격지심도 있고 염치는 없다. 누가 봐도 별로인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질투와 시기 덩어리인 양미숙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누구나 양미숙 같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믿지 않으면 삶이 퍽퍽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적절한 자기객관화도 더해야 하는데, 양미숙은 자기 객관화를 전혀 못 하는 인물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지 않고 운동장에서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는 것처럼 집요하게 파낸다. 나는 좋은 사람인데 세상이 이상하다.

 

 

 

"원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양미숙은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만약 내가 양미숙이었다면, 삽질은커녕 무기력하게 집에 가만히 누워서 자기연민에 빠져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양미숙을 그러지 않는다.


양미숙은 원래 러시아어 선생님인데 이유리 선생님에게 밀려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하지만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아침마다 영어학원에 간다. 가끔 ‘열심히’의 방향 설정이 오류범벅이라 고생을 많이 한다. 혼자 짝사랑하는데 쌍방향이라고 오해한다. 집이 없어서 동료 선생님 집에서 당당하게 노숙하고, 이유리를 떼어내기 위해 종희와 19금 메신저를 연구하고, 벨리댄스도 다니고, 축제 무대도 열심히 준비한다.

 

 

미쓰홍당무 종희와 미숙.jpg
영화 <미쓰 홍당무> 스틸사진

 

 

 

"내가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한테 이러지 않았을 거면서

내가 나니까 나한테 다들 이러고....“



양미숙은 너무 자신에게만 빠져있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내 입장과 상대방 입장 동시에 생각할 수 있어야 공동체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양미숙은 학생일 때도 교사일 때도 여전히 겉도는 사람이다. 친구가 없어서 피부과 의사에게 고민 상담을 할 정도다.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낄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었을 때, 그녀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빼곡하게 서 있는 아이들로부터 뒤로 물러나 힘차게 뛰어야 얼굴이 찍혔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보이기 위해는 심하게 과장해야만 했다.


그녀가 처음 마주한 틈은 ‘찐따와 찐따 애인’이다. 국어 선생님의 딸인 중학생 종희와 함께 하는 이상한 연대다. 처음 연대의 목적은 불륜 파괴였지만, 어느새 서로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두 사람은 닮았다. 종희도 양미숙처럼 자기애가 넘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면서도 둘 다 자기가 (찐따 아닌) 찐따 애인이라고 주장한다.

 

공동체, 소속감, 유대감의 부재가 이상한 우정으로 채워진다.

 

 

미쓰홍당무 머리.jpg
영화 <미쓰 홍당무> 스틸사진

 

 

 

"너 착하게 살지 마라, 그럼 사람들이 너한테 못되게 군다?
근데 니가 못되게 굴잖아? 그럼 너한테 사람들이 착하게 굴어."



그녀가 선택한 생존방식은 못되게 구는 거였다. 모난 모습을 보여줘서 사람들이 자신을 만만하게 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도라이는 건들지 않으니까요) 그녀의 이상한 선택 덕분에 세상의 일부 면에서 맞닿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섞일 수는 없었다.


양미숙이 벌인 끔찍한 사건으로, 이상한 5자회담이 시작된다.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고 양미숙은 선택해야 했다. 끝까지 발뺌하거나 구린 나를 인정하는 것. 그때 양미숙은 가린 귀가 보이게 어수선한 머리카락을 질끈 묶었다. 머리카락으로 만든 벽을 스스로 거두는 용기를 낸다. 고요하고 편안한 내 마음을 바라본다. 구린 나를 인정하고 새 출발을 선택한다.


종희와 손을 잡고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공연을 꿋꿋이 해낸다. ‘찐따와 찐따 애인’은 여전히 서툴고 이상하지만,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을 본 나는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양미숙 양이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아트인사이트_에디터.jpg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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