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끼니와 관련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모음 에세이 '끼니'

글 입력 2022.10.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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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_표1.jpg

 

 

어렸을 때 나는 식탐이 많은 아이였다. 식욕보다 식탐이 많은 아이.

 

먹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닌데, 그저 배부르게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보통은 이를 어른이 되어간다고 표현한다), 식탐도 줄어들어서 이제는 말 그대로 배가 고프니까, 에너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먹는 경우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먹는 행위를 신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무슨 재미로 살아가느냐고 말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고 흥분하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나도 안다. 나도 사람인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흥미가 없을 뿐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까, 굳이 1시간이나 기다리면서 뭔가를 먹고 싶지 않을 뿐인 것이다.

 

내가 별종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당장에 내 주변에만 봐도, 먹는 일이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에세이 <끼니>의 저자에게도 한 '끼니'를 온전하게 즐기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시작하게 된 혼자 외식하기도 그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제 끼니를 못 챙기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일인 것 같다.

 

끼니를 열심히 챙기다 보니,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혹은 저자 본인이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의 끼니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얽혀 있었다. 그 사연은 마치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뭇사람의 이야기 같아서, 부담 없이 재미있게 글을 읽어내려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사이즈와 무게도 무겁지 않아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막상,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을 공유해 보고자 하니, 알차게 배어있는 에피소드보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한 장짜리 웃긴 에피소드들이 먼저 떠올랐다. 과거에 콩트집을 출간한 적이 있는 저자의 이력과 솜씨가 빛을 발한 페이지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겼던 내용은 <<소고기 특가 세일>>이라는 제목의 사연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한 번 소개해 본다.

 

 

소고기 특가 세일

 

마트에서 소고기 특가 행사를 하고 있었다

미국산이어서 싸게 판다고 했다

하지만 한우여서 맛이 부드럽다고 했다

 

그래서 샀다

미국산 한우를

 

p.52

 


지하철에 앉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혼자서 얼마나 킥킥거렸던지. 이러한 일상의 유머, 소소한 웃음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미국산 한우라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이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이러한 일상의 재미있는 사건들을 한두 개씩은 겪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전달할 수 있느냐인 것 같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거 대박이다! 나중에 꼭 써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잘 기록하고 간직해 두는 것. 에세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쓰인 책을 옮기는 작업. 좋은 에세이는 사연 그 자체가 진한 농도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자체가 한 편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때 탄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억지로 만들어 낸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한계가 있으니까. 자연히 우러나온 이야기들을 얼마나 잘 수집할 수 있는가가 핵심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에세이 작가는 작가 이전에 수집가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굉장히 익숙한 소재였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어찌 되었든 끼니는 챙기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기 때문에 더 어렵고 더 많은 고심을 해야 한다 믿는다. 아예 새롭고 참신한 소재라면, 그것을 소개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둘 수 있지만 익숙한 소재는 모두에게 기본적인 평균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평균치를 넘기는 창작물을 만들고자 한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에세이 <끼니>의 저자는 훌륭하게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지루하지 않았고 읽을수록 궁금했다.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재치 있는 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에세이를 만난 덕분에, 지하철 안에서도 나만의 시간을 기쁘게 누렸던 것 같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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